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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의  문화유산과 고양이 공존 [생명과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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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의  문화유산과 고양이 공존 [생명과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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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따뜻함을 주는 반려동물부터 지구의 생물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구체적 지식과 정보를 소개한다.


라르고 디 토레 아르헨티나 (Largo di Torre Argentina) 고양이 보호소의 고양이들 ⓒ 천명선

라르고 디 토레 아르헨티나 (Largo di Torre Argentina) 고양이 보호소의 고양이들 ⓒ 천명선


수천 년 시간이 공존하는 로마의 도심, 콜로세움과 성천사의 다리 사이 어디쯤에 라르고 디 토레 아르헨티나 유적지가 있다. 1920년대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기원전 4세기부터 설립된 4개의 신전과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극장인 쿠리아 폼페이의 일부가 이곳에서 발굴됐다.

지난 2,000년 동안 테베레강의 퇴적으로 높아진 현재 지표면보다는 훨씬 아래에 위치한 이 유적에 여전히 거주하는 존재들이 있다. 바로 고양이들이다. 해는 저물었지만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유적지 곳곳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는 이들은 관광객 시선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들 뒤로 "고양이를 부르거나 밥을 주지 말 것"이라는 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라르고 디 토레 아르헨티나 (Largo di Torre Argentina) 고양이 보호소의 고양이들 ⓒ천명선

라르고 디 토레 아르헨티나 (Largo di Torre Argentina) 고양이 보호소의 고양이들 ⓒ천명선


발굴 이후 사람 출입이 통제되자 유적지에 고양이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을 돌보던 사람들도 생겨났다. 동네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밥을 주거나 아픈 고양이를 돌보며 조용한 공존이 시작됐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고양이 중성화는 드문 일이었고 콜로세움이나 토레 아르헨티나 같은 유적지는 길고양이의 주거지이자 원하지 않는 반려묘를 유기하는 장소로 악명이 높았다. 고양이 수는 늘고 관리가 어려워지면서 실질적 해결책이 필요해졌다.

결국 1993년 리아 데켈과 실비아 비비아니라는 두 명의 활동가가 토레 아르헨티나 고양이 보호소를 세우고 고양이 중성화와 입양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현재 이 보호소는 질병이 있거나 장애가 있어 입양이 어려운 고양이 약 150마리가 상주하는 공간으로, 생추어리의 기능도 담당한다.

로마의 라르고 디 토레 아르헨티나 (Largo di Torre Argentina) 유적지 전경. ⓒ 천명선

로마의 라르고 디 토레 아르헨티나 (Largo di Torre Argentina) 유적지 전경. ⓒ 천명선


물론 유적지 보호와 보전 문제로 인해 이들이 늘 환영 받은 것은 아니다. 한때 유적지 내 불법 건축물로 철거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단체의 노력과 3만 명이 넘는 서명이 담긴 청원으로 결국 시 당국과 보호소는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았고 보호소는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로마시 의회는 2001년 길고양이를 "생물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로마시대 이전부터 로마에 살아왔던, 대리석 기둥보다 더 오래된 고양이들이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을 존중하겠다는 로마 고유의 문화적 태도를 반영한 결정이었다.


이곳의 신전 중 하나인 포르투나 후이우스케 디에이는 로마인들이 매일의 순간을 신성하게 여기고 삶에서의 행운과 번영을 기원하던 신이다. 유적의 기둥 사이를 거니는 고양이들에게 로마의 신들이 행운을 내리기를. 그것은 분명 아름답고, 그리 어려운 바람도 아닐 것이다.


천명선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