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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역대 최강 정권의 칼

조선일보 배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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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역대 최강 정권의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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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불위 힘 가진 이재명 정부
政敵 겨누면 민심 잃는 ‘무딘 칼’
국정 개혁에 쓰면 ‘벼린 칼’ 될 것
힘 낭비 文·尹 전철 밟지 말기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6·3 대선을 하루 앞둔 2일 서울 여의도 마지막 유세에서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려 승리 표시를 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6·3 대선을 하루 앞둔 2일 서울 여의도 마지막 유세에서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려 승리 표시를 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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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가 4일 출범했다. 그야말로 역대 최강이다. 대선 사상 최다 득표였고, 민주당 출신 대통령 중 득표율도 가장 높았다. 입법부는 이미 이 대통령 손안에 있다. 민주당 170석에 친여 정당을 다 합치면 190석에 이른다. 국회에서 못 할 일이 없다. 어떤 법도 만들 수 있다. 인사·예산도 프리 패스다.

내부 견제 세력 또한 없다. 대통령 한마디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오롯이 이재명당(黨)이다. 제왕적 총재 시절에도 없던 일이다. 헌법재판관 2명을 임명하면 헌법재판소도 진보 우위로 바뀐다. 법원은 이미 이 대통령의 각종 재판을 대선 후로 미뤘다. 대법관을 늘리면 대법원도 우호적으로 바뀔 것이다. 입법·사법·행정을 모두 장악하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어떤 정권도 가져보지 못한 무소불위 권력이다.

통상 정권의 성패는 임기 초반 6개월에 결판난다. 권력의 칼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엉뚱한 데 힘을 빼면 국정 성공은 기대하기 힘들다. 문재인 정권은 시작부터 ‘박근혜 적폐 청산’에 올인했다. 대통령·장관·비서실장·수석 등 200명 이상을 구속했다. 사실상 정치 보복이었다. 1년 넘게 이어진 적폐 몰이에 다른 국정 과제는 밀렸다. 국민 피로감도 컸다. 결국 경제를 망친 내로남불 정권으로 끝났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이준석 전 대표를 몰아내며 집안싸움에 몰두했다. 친윤을 앞세워 당 선거에 개입하고 우호 세력을 ‘적’으로 돌렸다. 남은 국정 동력도 김건희 여사 의혹을 막는 데 썼다. 각종 개혁은 제대로 추진도 못 한 채 3년 만에 탄핵을 맞았다.

이 대통령은 대선에서 “경제가 최우선 과제”라며 ‘먹사니즘’과 성장을 강조했다. 계엄·탄핵 사태로 인한 경제·안보 위기를 극복해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했다. 국민이 각종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을 뽑은 것은 먹고사는 문제에서 유능함을 보여줄 거라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그러려면 문·윤 정부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


이 대통령은 “정치 보복은 없다”고 했다. “분열을 치유하고 갈라진 나라를 통합하겠다”고도 했다. 그런데 선거 막판 “정부와 국민의힘에 계엄 동조 세력이 숨어 있다”며 “압도적 응징”을 얘기했다. “내란 세력 심판이 가장 중요하다”고도 했다. 무엇이 이 대통령의 진심인지 혼란스럽다.

임기 초부터 무차별 ‘내란 몰이’가 시작된다면 문 정부의 ‘적폐 청산’과 유사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정부 부처와 정치권뿐 아니라 기업들도 불안해한다. 이래선 ‘경제 우선’과 ‘국민 통합’은 허사가 될 것이다. 이 대통령을 찍지 않은 국민 절반은 등을 돌릴 수 있다.

민주당은 대법원장 청문회와 특검법에 이어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이 대통령과 관련된 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죄를 삭제하고 각종 재판을 중단시키는 법안도 강행하려 한다. 새 정부 시작부터 사법부 장악과 방탄 논란이 재연될 수밖에 없다.


권력은 칼과 같다. 쓰기에 따라 사람을 해칠 수도 있고 구할 수도 있다. 정적 제거에 쓰면 피가 묻고 무뎌진 칼이 된다. 자칫 자신을 찌를 수도 있다. 반면 국정 개혁에 쓰면 민생을 살리는 ‘잘 벼린 칼’로 남을 것이다. 문 정부는 적폐 청산에 칼을 썼고, 윤 정부는 내부 투쟁 도구와 김 여사 방패로 썼다.

이 대통령은 “고개를 쳐들면 진다”고 했다. 겸손하지 않으면 국민이 회초리를 든다는 뜻이다. 대통령에게 최고 갑옷은 방탄 법안이나 정적 제거가 아니라 국민 마음을 얻는 것이다. 상대를 치거나 자기 방탄을 위해 칼을 쓰면 민심은 흩어진다. 하지만 국정 개혁으로 지지를 얻으면 어떤 사법 리스크나 야당의 공세도 견딜 수 있다. 칼은 칼집에 있을 때 더 강하다. 역대 최강 정부가 가진 무소불위의 칼을 어디에 쓸 것인지는 이 대통령에게 달렸다.

[배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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