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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인수위 대신할 언론의 시간 [시민편집인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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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인수위 대신할 언론의 시간 [시민편집인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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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대통령선거를 하루 앞둔 2일 서울 한 아파트 장미 화단 아래에 대선후보 벽보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제21대 대통령선거를 하루 앞둔 2일 서울 한 아파트 장미 화단 아래에 대선후보 벽보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제정임 |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오늘(6월3일) 투표를 통해 탄생할 새 대통령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집권을 준비할 기간 없이 곧바로 임기를 시작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때문에 급하게 이어진 이번 선거에선 후보들이 정책을 고민하고 가다듬을 시간도, 공론장에서 검증받을 시간도 부족했다. 언론은 충분히 따져 묻지 못했고, 많은 유권자는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했다. 특히 청년 세대와 불안정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비수도권 지역 주민 가운데 ‘나의 삶을 개선해줄 적임자가 누구인지’ 확신하지 못한 채 투표 날을 맞은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새 대통령은 아마 임기 첫날부터 총리와 장관을 인선하느라 경황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언론이 인수위 부재의 공백을 메워줄 필요가 있다. 바로 ‘바람직한 정책 메뉴판’을 정돈하는 일이다.



이번 선거운동 기간 특히 아쉬웠던 것은 기후위기, 불평등, 인구소멸, 지방소멸, 자영업 붕괴, 차별혐오 증폭 등 시대적 난제와 관련해 제대로 된 토론과 대안 제시를 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여론조사에서 의미 있는 지지율을 보인 후보 중 누구도 ‘저 사람이 집권하면 문제가 풀리겠다’는 믿음을 주지 못했다. 선거 기간이 짧은 탓도 있지만, 대다수 언론은 후보를 둘러싼 정치적·사법적 논란에 집중할 뿐 정책 검증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한겨레는 ‘6·3 정책 다이브’ 등을 통해 쟁점별 분석을 순발력 있게 내놓았지만, 심층성에서는 부족함이 있었다. 많은 국민이 고통스러워하는 구조적 문제를 의제로 제시하고, 원인과 현황을 짚고, 다양한 정책 선택지를 토론한 뒤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해법(솔루션) 지향적’ 보도가 아쉬웠다.



언론도 시간이 부족했고, 인력과 자원에도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작업을 충실히 하지 않고는 정부가 바뀌어도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길 기대하기가 어렵다. 인수위 없이 시작하는 새 정부가 캠프 시절 미처 준비하지 못한 정책, 놓쳤던 세부 사항, 잘못 판단했던 방향 등을 바로잡고 보완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언론이 도와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긴박한 기후위기 앞에서 탄소중립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고, 에너지와 교통, 건물, 식량 등의 전방위적인 탈탄소 전환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정말 현실적인 대안을 정리해야 한다. 부동산을 포함한 부의 불평등과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의 이중구조 등으로 인한 소득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도록, 조세·재정·복지 등에 관한 사회적 토론을 이끌고 실효성 있는 해법을 조명해야 한다. 코로나19 충격에 이은 계엄 여파로 생사의 기로에 선 자영업자, 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젊은이, 가난한 노년층, 수도권 중심주의에 절망하는 지역 주민, 차별·혐오에 분노하는 여성·장애인·이주민·성소수자 등에게 희망을 주는 정책이 구체적으로 나와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현장의 목소리를 길어 올리는 일이다. 플랫폼 노동자의 불안은 무엇인지, 여성 청년은 무엇에 분노하는지, 맞벌이 부부가 아이 갖기를 포기하는 이유는 뭔지, 반지하 거주자와 산불 지역 주민의 재난 공포는 어느 정도인지 등 ‘당사자’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아내야 한다. 언론이 손쉽게 활용하는 ‘단골 전문가’ 대신 ‘재야의 고수’를 찾아내 참신한 관점을 더하는 시도도 필요하다. ‘지금 고통받는 당사자가 원하는 것’과 ‘실효성 있는 정책 대안’의 교집합을 찾아내야 한다. 낙선한 후보의 공약 가운데 좋은 정책을 찾아 집중 조명하는 일도 바람직하다. 그리고 새 정부의 실천을 압박하는 것이다.



산적한 난제들을 새 정부 임기 5년에 다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나아지고 있음’을 체감하게 하는 것, ‘더 좋아질 것’이란 희망을 품게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대중의 좌절과 분노를 파고드는 극우세력의 발호가 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민생은 또다시 백척간두(높고 위태로운 장대 꼭대기)에 설 것이다.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개인들이 공적 사안에 관해 자유롭고 이성적으로 토론함으로써 민주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간을 ‘공론장’이라고 정의하고, 그 핵심적인 매개체로 언론을 꼽았다. 한겨레를 포함한 책임 있는 언론이 이 결정적 시기에 건강한 공론장을 이끌어, 민주주의와 민생의 회복에 큰 몫을 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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