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갔다가 이민 당국에 추방”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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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전기 자전거가 도로를 달리는 모습./윤주헌 특파원 |
최근 미국 뉴욕에서 시작한 한 교통 정책이 논란이 되고 있다. 앞으로 전기 자전거 이용자가 교통 규칙을 위반하면 형사 법원에 반드시 나가야 한다. 그런데 사고가 났을 때 피해가 더 클 수 있는 자동차가 신호를 위반했을 경우엔 벌금만 내게 되어 있어 형평성 문제가 지적된다. 또 이 정책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주자 추방 정책과 맞닿아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뉴욕시는 지난 4월 28일부터 전기 자전거 이용자에 대한 교통 규칙을 강화했다. 예를 들어 전기 자전거 이용자가 적색 신호등을 위반하거나, 도로 위를 달리다가 적발되면 앞으로는 형사 법원에 가야 하는 분홍색 소환장을 손에 받아 들게 된다. 소환장에는 “체포 영장을 피하려면 법원에 적힌 날짜에 법원에 가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글귀도 적혀 있다. 판사 앞에 가서 당시 상황을 해명하고 선처를 구해야 한다. 만약 법원에 가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신호 위반에 한 번에 수갑을 찰 수도 있다.
뉴욕시가 칼을 뽑아든 이유는 전기 자전거가 더 이상 이동 수단이 아닌 ‘도로 위 무법자’가 됐다는 판단 때문이다. 현재 전기 자전거는 맨해튼 도로에서 자동차만큼 많이 다닌다. 그런데 뉴욕시에서는 전기 자전거를 시속 40km까지 탈 수 있게 하기 때문에 보통 위험한 게 아니다. 지난해 발생한 자전거 사망 사고 25건 중 17건이 전기 자전거였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전기 자전거 사용이 급격히 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전기 자전거 판매량은 2016년 2% 증가했지만 2023년 18% 증가로 훌쩍 뛰었다. 특히 배달 음식을 시키는 경우가 늘면서 한 건이라도 더 배달하려는 전기 자전거들이 번개처럼 지나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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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에서 운영 중인 전기 자전거. 맨해튼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윤주헌 특파원 |
이렇게만 보면 전기 자전거의 법 위반에 대해 엄격하게 처벌하는 게 맞지만 속사정은 조금 다르다. 뉴욕시에서 자동차 운전자가 신호 위반을 하면 벌금을 받는다. 사고가 날 경우 일반적으로 자동차가 전기 자전거보다 위험한 데 처벌 수위는 더 약해 차별 논란이 있다. 특히 배달 노동자 중 상당수는 트럼프 정부의 타깃이 되고 있는 이민자들이라는 점에서 “정부 정책을 따라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연방 이민단속국은 숨어 있는 불법 이주자를 체포하기 위해 법원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체포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신호 위반으로 형사 법원에 나갔다가 추방될 수 있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진보 성향의 뉴욕시의원 린컨 래슬러(민주당)는 시의회에서 “트럼프 정부 이민 정책으로 인한 피해자가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제시카 티슈 뉴욕시 경찰국장은 “전기 자전거에 대한 전쟁도 아니고 모든 뉴욕 시민들이 공통으로 가진 매우 현실적인 우려(사고)에 대한 대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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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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