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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만표 차로… 폴란드 대선, 친트럼프 후보가 역전승

조선일보 원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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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만표 차로… 폴란드 대선, 친트럼프 후보가 역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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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브로츠키, 결선투표 50.9%로 당선
폴란드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서 당선된 카롤 나브로츠키 후보가 1일 지지자들에게 승리의 V 손가락 표시를 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폴란드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서 당선된 카롤 나브로츠키 후보가 1일 지지자들에게 승리의 V 손가락 표시를 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1일 치른 폴란드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를 앞세운 보수 성향 후보가 예상을 뒤엎고 승리했다. 이날 결선 투표에서 우파 성향 정당 법과정의당이 지원한 카롤 나브로츠키(42) 후보가 50.9%를 득표해 49.1%를 얻은 집권 여당 시민연단 후보 라파우 트샤스코프스키(53) 바르샤바 시장에게 승리했다. 두 후보의 표 차는 37만표에 불과했다.

이번 선거는 이변으로 평가되고 있다. 보수 성향 역사학자로 정치 경험이 일천한 나브로츠키는 선거전 초반인 지난 4월만 하더라도 여론조사에서 20% 초·중반대의 지지도로 선두 트샤스코프스키에게 10~15%포인트 뒤처졌다. 그러나 지난달 18일 1차 투표에서 트샤스코프스키보다 불과 1.8%포인트 뒤진 30%를 득표하며 결선에 진출했고 결국 판세를 뒤집으며 역전승을 일궜다. 나브로츠키는 이날 밤 승리 연설에서 “오늘의 승리는 폴란드 역사에서 특별한 순간이다. 우리가 폴란드를 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브로츠키는 안제이 두다 현 대통령의 뒤를 이어 오는 8월 취임한다.

그래픽=이진영

그래픽=이진영


대통령제와 내각제가 혼합된 폴란드에서 내정은 도날트 투스크 총리가 맡지만 대통령에게는 군 통수권·조약 비준권·의회 해산권·전쟁 선포권 등의 강력한 권한이 있다. 특히 나브로츠키가 3년 4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현안과 관련해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공개적으로 반대해 왔다는 점에서 EU·나토 진영의 단일 대오가 흐트러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트럼프가 주장해 온 종전 조건과 부합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지난 1일 폴란드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가 끝난 뒤 집권 여당 시민 연단 라파우 트샤스코프스키 후보가 지지자들과 함께 출구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1일 폴란드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가 끝난 뒤 집권 여당 시민 연단 라파우 트샤스코프스키 후보가 지지자들과 함께 출구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폴란드는 전통적으로 동유럽과 서유럽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다. 2022년 7월에는 442억달러(약 58조원) 규모의 한국 무기 도입 계약을 체결한 ‘K방산’ 수출의 거점이기도 하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래 폴란드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우크라이나와 529㎞의 국경을 맞대고 있어 EU·나토 진영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최전방 기지이자 물자 지원 통로 역할을 해왔다. 러시아 침공 후 전쟁을 피해 폴란드로 넘어온 우크라이나인만 100만명에 이른다.

그러나 전쟁의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민심이 변해갔고, 나브로츠키는 이를 적극적으로 파고들었다. 그가 선거 유세 기간 여러 차례 “우크라이나는 우리에게 감사할 줄 모른다”고 말해 전쟁 피로감을 자극했다. ‘다른 무엇보다 폴란드의 국익부터 챙기겠다’며 ‘우크라이나 피란민 지원 축소’ ‘유럽 난민 협정 탈퇴’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렇게 노골적인 반(反)EU·나토 행보에 보수·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농촌·가톨릭 세력이 강력히 호응했고 친EU·나토 진영을 ‘기득권 엘리트’로 적대시하는 젊은 세대까지 지지층으로 합류했다.

나브로츠키의 지지율을 결정적으로 견인해 준 주역은 트럼프였다. 나브로츠키는 선거 기간 내내 ‘트럼프 행정부와 전방위적으로 협력하겠다’고 공언했고 트럼프도 화답했다. 나브로츠키는 지난달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국가 기도의 날 행사에 찾아가 트럼프와 사진을 찍고 이를 선거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트럼프는 당시 나브로츠키에게 “당신이 이길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의 대표적 충성파 각료인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도 결선 투표를 앞두고 여당 후보를 향해 “완전한 재앙”이라며 “올바른 지도자를 선택하라”고 해 나브로츠키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2일 폴란드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된 카롤 나브로츠키 후보는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선거 운동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EPA 연합뉴스

2일 폴란드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된 카롤 나브로츠키 후보는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선거 운동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EPA 연합뉴스


미 워싱턴포스트는 “‘EU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폴란드 유권자들의 불만이 보수 후보 지지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AP는 “나브로츠키 지지자들은 트럼프 행정부와 좋은 관계를 구축할 때 폴란드 상황이 더 좋아진다고 확신했다”고 했다. 두다 현 대통령도 보수 정당인 법과 정의당 인사이지만, 우크라이나 현안과 관련해서는 EU·나토와의 협력을 중시했다. 이 때문에 나브로츠키가 취임할 경우 정세에 변화가 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우선 폴란드 거주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제공되던 의료·교육 지원이 상당 부분 폴란드인 몫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교착 상태에 빠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협상과 관련해서도 폴란드가 트럼프를 적극적으로 편들어 EU·나토 진영에 내분이 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장 폴란드 정치권의 진영 간 갈등이 깊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투스크가 이끄는 행정부는 낙태법 완화, 동성 커플을 위한 시민 동반자법 등 진보적 정책들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나브로츠키는 가톨릭 신자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진보 정책에 반대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이 거부권을 통해 총리가 추진하는 난민·기후·소수자 인권 등의 친EU 정책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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