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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값 낮출까 말까" 이커머스 11번가는 지금 고민 중 [경알못 경제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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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값 낮출까 말까" 이커머스 11번가는 지금 고민 중 [경알못 경제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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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 기자]

이커머스 업체 11번가의 '새 주인 찾기'가 지지부진하다. 1년 넘게 특별한 변화가 없다. 그만큼 전망이 밝지 않다. 새로운 투자자가 나타날지도 의문이지만, 나타난다고 해도 매각이 성사될지 미지수다. 11번가로 경제학 읽기 2편의 문을 열어보자. 이번엔 11번가에 걸려 있는 콜옵션과 드래그얼롱을 쉽게 풀어봤다.


11번가 매각에는 복잡한 경제학 이론들이 깔려있다.[사진|뉴시스]

11번가 매각에는 복잡한 경제학 이론들이 깔려있다.[사진|뉴시스]


우리는 1편 'FI, IPO, 콜옵션… 11번가 밑단에 깔린 복잡한 이론들(더스쿠프 651호)'에서 이커머스 업체 11번가의 현주소를 경제학의 눈으로 살펴봤다. 1편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최근 11번가(SK스퀘어)는 사옥 이전, 희망퇴직, 내부 인력 재배치 등의 방법으로 대대적인 체질 개선을 단행했다.


그 결과, 지난해 영업손실은 754억원으로, 전년(1258억원) 대비 40.1% 개선했다. 기세를 몰아 11번가는 올해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흑자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참고: EBITDA는 이자ㆍ법인세ㆍ감가상각비를 차감하기 전 영업이익을 뜻한다. 쉽게 말해 기업이 순수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돈이다.]

그러나 그 이면엔 '급격한 외형 축소'란 내밀한 이슈가 깔려 있다. 2024년 매출은 전년 대비 35.2% 줄어든 5616억원에 머물렀고, 4분기만 보면 전년 동기 대비 반토막 났다(2023년 4분기 2635억원→2024년 4분기 1339억원). 11번가 측은 "리테일 부문의 사업 구조를 효율화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업계 안팎에선 브랜드 파워 약화와 생존 위기를 우려하고 있다.

외형 축소가 우려스러운 이유 중 하나는 '11번가'가 선택한 목표 중 하나인 매각 절차가 난항을 겪고 있어서다. 11번가는 2018년 '한국의 아마존'을 꿈꾸며 국민연금ㆍMG새마을금고 등으로 구성된 재무적 투자자(FI) 나인홀딩스컨소시엄으로부터 5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조건은 5년 내(2023년 9월까지) 기업공개(IPO)였다.


그러나 IPO는 무산됐다. 투자를 받을 당시만 해도 2조원 수준으로 평가받았던 11번가의 기업가치가 1조원 안팎까지 떨어진 게 나쁜 변수로 작용했다. IPO에 실패한 이후 이렇다 할 돌파구를 찾지 못한 11번가의 모회사 SK스퀘어는 2023년 11월 결국 '손절매損切賣'를 택했다.


여기서 살펴봐야 할 건 2018년에 체결된 계약 조건이다. "2023년 9월까지 IPO를 하겠다"고 약속하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던 당시 SK스퀘어는 "예정대로 상장하지 못한다면 투자자들의 주식을 사겠다"는 콜옵션(Call Option)을 걸었다. 5000억원을 베팅한 FI 나인홀딩스컨소시엄을 안심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옵션(Option)이란 주식, 채권, 통화, 곡물, 금, 은 등의 기초자산을 미리 정한 가격으로 일정 시점에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콜옵션은 이런 기초자산을 '살 수 있는 권리'다.


FI 나인홀딩스컨소시엄은 투자계약에 '안전장치'를 또 하나 걸었다. SK스퀘어가 콜옵션을 포기할 경우, FI(지분 18.18%)가 SK스퀘어 지분(80.26%)까지 포함해 11번가를 제3자에 매각할 수 있는 일명 '드래그얼롱(동반매도청구권ㆍDrag Along)' 조항을 달았다.


드래그얼롱은 쉽게 말해 소액주주가 지분을 매각할 때 대주주의 주식 지분을 함께 묶어서 팔 수 있게 요구하는 권리다. 이 조항의 역할은 투자자의 자금 회수를 돕는 것이다. IPO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자 SK스퀘어는 콜옵션 행사를 포기했고(2023년 11월), FI는 드래그얼롱을 발동했다.


현재 11번가의 매각 절차는 FI가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1월 씨티글로벌마켓증권과 삼정KPMG를 매각 주관사로 선정하고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새 주인을 찾을 가능성이 열렸던 적도 있었다. 지난해 여름, 신선식품 새벽배송 시장에서 유일하게 흑자를 내고 있는 오아시스가 11번가 인수에 관심을 보이며 접촉했다. 하지만 FI가 기대한 가격과 오아시스가 제시한 금액 사이의 간극이 컸고, 협상은 성사되지 않았다.


지난해 발생한 티메프 사태도 양측의 협상에 찬물을 부었다. 티몬과 위메프의 판매대금 정산 지연으로 촉발된 이 사태를 기점으로 '이커머스 기업의 가치를 좀 더 엄격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는데, 결과적으로 11번가에 불리한 변수가 됐다. 이 때문인지 11번가 매각은 1년 넘게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SK스퀘어는 11번가 매각 추진을 두고 "매각 금액 조건 등은 현재 정해진 바가 없다"는 내용의 공시만 반복하고 있다. 11번가 관계자 역시 "매각과 관련해 알 수 있는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관건은 SK스퀘어가 오는 10월 안에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느댜다. SK스퀘어의 콜옵션 행사 시점은 2년 주기로 돌아오는데, 그때가 바로 올 10월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내수경기가 위축된 상황에서 새 투자자를 구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C-커머스가 세력을 넓히면서 11번가 등 국내 이커머스 업체 간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C-커머스가 세력을 넓히면서 11번가 등 국내 이커머스 업체 간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앞서 언급했듯 투자자들이 티메프 사태 이후 이커머스 업체에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도 11번가로선 좋은 소식이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이커머스 업계가 쿠팡ㆍ네이버 등 규모가 크고 신뢰성 있는 플랫폼 위주로 고착화하는 상황에서 11번가는 매력적인 매물이 아니다"며 말을 이었다.


"매각을 위해 비용을 줄여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전략을 꾀하고 있지만, 잇따른 매출액 감소는 매각에 부정적인 요소다. 손해 볼 각오로 몸값을 대폭 낮추지 않는 이상 11번가 매각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답보 상태에 놓인 11번가의 '새 주인 찾기'는 어떤 결말을 맞을까.

김하나 더스쿠프 기자

nayaa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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