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전 서울 지하철 5호선 마포역~여의나루역 구간을 지나는 열차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자 승객들이 선로를 통해 대피하고 있다. /영등포 소방서 |
서울 지하철 5호선 열차 안에서 60대 남성이 불을 질러 승객 400여 명이 지하 터널로 대피하는 사건이 발생했지만 큰 피해 없이 마무리됐다. 지하철 방화는 승객 밀집도가 높고 대피가 어려운 특성상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 때는 192명이 숨졌다. 하지만 이번엔 대피 과정에서 승객 20여 명이 작은 부상만 입었다.
대구 지하철 참사 때는 객실 의자 등 전동차 내장재가 대부분 불에 잘 타는 소재여서 불이 난 뒤 2~3분 만에 화마에 휩싸였다. 이후 정부와 지자체가 전동차 바닥재, 객실 의자 등을 불연성이나 난연성 소재로 교체했다. 기관사와 승객들도 안전 수칙에 맞춰 신속하고 차분하게 대응했다. 22년 전 사건을 교훈 삼아 실질적으로 대비한 결과 대형 참사를 막은 것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 때 기관사는 화재 사실을 관제실에 알리지 않는 바람에 후속 열차가 상황을 모르는 채 진입해 인명 피해를 키웠다. 승객들도 객실 안 소화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하지만 이번 사고 때는 승객들이 비상 전화로 기관사에게 상황을 알린 뒤 객실 의자 하단에 있는 비상 개폐 장치로 열차 문을 열었다. 기관사는 안전 수칙에 따라 바로 관제실에 알리고 두 차례 안내 방송을 한 뒤 승객들과 소화기로 화재를 진압했다. 서울교통공사 영등포승무사업소는 한 달 전쯤 이번 사고와 비슷한 상황에 대비한 훈련도 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고 발생 전에 어느 한 부문에서라도 기본을 지키고 대비하면 대형 참사는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동안 삼풍백화점 붕괴, 세월호 침몰, 핼러윈 참사 같은 대형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되짚어 보면 언제라도 사고가 터질 수 있다는 인식 아래 대비책만 세웠더라면 피할 수 있는 인재(人災)였다. 정치권도 그 사고들을 정치에 이용하기 바빴다. 이번 서울 지하철 사고가 그런 모습에서 벗어나 더욱 강화된 안전 태세를 갖추는 계기가 돼야 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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