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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살롱] [1495] 남해 무량암

조선일보 조용헌 동양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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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살롱] [1495] 남해 무량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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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전쯤에 그리스 에게해(海)를 배 타고 돌아다닌 적이 있다. ‘바람의 섬’이라 불리는 미코노스섬, 요한계시록을 집필한 밧모섬 등을 여행하면서 에게 바다의 색깔에 매료됐었다. 코발트블루 색이었다.

우리나라 남해안도 에게해의 바닷물 색깔만큼이나 낭만적이다. 남해안 이곳저곳 섬들의 풍광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밀리지 않는다.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 섬을 가면 동서남북 어디를 가도 풍광이 아름답다. 남면 쪽으로 가면 무량암(無量庵)이라고 하는 절이 있다. 기운이 센 절이다. 좌청룡 자락이 ‘ㄱ’ 자로 굽어 돌아와 앞산의 역할까지 한다. 청룡장안(靑龍長案)에 해당한다. 좌청룡이 그 터의 안산(案山)까지 겸하는 형국이다. 청룡장안은 전형적인 공부터라고 하는 게 필자가 20대 시절에 나이 드신 노장 스님들로부터 여러 번 들은 이야기다. 절터에서 서서 보면 오른쪽 산 사이로 코발트 색깔의 푸른 바다가 호수처럼 살짝 보인다. 확 터진 바다보다 이처럼 살짝 수줍게 보이는 쪽빛 바다가 더 매력적이다. 수줍게 보이는 바다는 호수처럼 보이니까 말이다.

주지 스님인 범신(81) 비구니 스님은 무량암 터가 호연지기를 기르는 데 좋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울적하고 사는 것도 별 재미가 없는데 호연지기를 기르는 터라고 해서 근래에 몇 번을 갔다. “스님, 사는 게 결국 공수래공수거 같습니다!” “뭔 소리요. 이 세상에 올 때 전생의 업(業)을 가지고 왔다가 갈 때는 자기가 쌓아 놓은 업(業) 가지고 갑니다. 빈손으로 가는 거 아닙니다.”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다.

전생에 자기가 쌓아 놓았던 업이 금생에 자기 운명으로 정해진다. 금생에 자신이 입으로 지은 구업(口業), 행위로 지은 신업(身業), 생각으로 지은 의업(意業)이 자기 무의식에 축적된다. 이 축적된 무의식이 업이다. 현생에 자기 자신이 무의식에 쌓아 놓은 업은 다음 생으로 이월된다는 게 삼세인과(三世因果) 사상이다. 나 죽으면 다 끝난다고 생각하는 게 단생관(單生觀)이다. 공부를 안 해서 못 깨친 범부의 사생관이 단생관이다. 분단생사(分段生死)이기도 하다. 반대로 죽었다고 끝난 게 아니고 다음 생으로 이월된다고 생각하는 게 삼세인과다. 변역생사(變易生死)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다음 생에 여러 가지 팔자로 바뀌어서 태어나는 것이다.

유튜브가 발달하면서 입으로 구업을 쌓기가 쉬워졌다. 구업의 확대 재생산에 최적이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면서 쌓는 구업을 특히 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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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동양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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