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대만 타이베이 난강전시관에서 열린 아시아 최대 테크 전시회 '컴퓨텍스 2025'의 대만 기업 '페가트론' 부스를 방문한 젠슨 황. 그는 이날 전시관에 구름같은 인파를 몰고 다녔다./류재민 특파원 |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아시아 최대 IT 전시회 ‘컴퓨텍스 2025’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16~23일 대만 타이베이를 찾았다. 덕분에 며칠 동안 그를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가 생겼다. 컴퓨터와 인공지능(AI) 시장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정치·경제·국방·안보 등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그의 현재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미국·중국·대만 지도자들의 ‘역린’을 거침없이 건드리는 언행이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을 향한 엔비디아 반도체 수출 금지에 대해서는 “실패한 정책”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해 같은 행사에서 대만을 ‘국가(country)’라고 지칭해 화제가 됐던 적이 있는 그는, 이번에도 가는 곳마다 “대만 파이팅(Bring up Taiwan)!”을 외치며 대만인들의 자부심과 독립심을 자극했다. 대만 정부에 대해서는 “원자력발전이 반드시 필요하고, 에너지에 낙인을 찍어서는 안 된다”라며 민주진보당 정권이 9년간 추진해 온 탈원전 기조를 전환할 것을 촉구했다. 이 같은 황 CEO의 언행에 세 정부 모두 어떤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
빌 게이츠·스티브 잡스 등 유명한 스타 경영인들은 많았지만, 황 CEO는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다. 서양인 같은 여유로운 분위기와 유머 감각을 갖춘 동시에, 동양인의 특성인 소탈하고 겸손한 인격도 지녔다. 그는 ‘AI 시장 독점’이라는 청사진을 사람들에게 설득시킬 수 있는 빼어난 연설가인 동시에, 대중 속으로 뛰어들어 소통하고 융화될 수 있는 능력도 갖췄다. 자신을 따라다니는 팬들을 향해 일일이 미소 지으며 사인을 해주는 그의 모습은 CEO라기보다는 팝 스타 쪽에 가까워 보였다.
그는 엔비디아가 컴퓨텍스에 30년 동안 참여해 왔다는 사실을 수차례 강조했다. 황 CEO가 대만에 느끼는 특별한 유대감은 단순히 그가 대만인 혈통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엔비디아가 평범한 컴퓨터 부품 업체였던 시절, 대만의 다른 컴퓨터 관련 기업들과 함께 그곳에 부스를 차리며 바닥부터 구르던 예전 기억이 황 CEO에게 있었던 것이다. 대중 앞에 스스럼없이 설 수 있는 내공, 대만과의 단단한 결속력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한 기업가가 세계 전체의 흐름을 뒤바꿔 놓는 사례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 수차례 경험했다. 앞으로 당분간은 황 CEO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전인적 인격은 ‘엔비디아가 AI 시대를 완벽히 장악할 준비가 됐다’는 확신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기에 결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기업하기 좋은 산업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탁월한 기업가를 키워내는 것이 부국(富國)의 필수 조건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한국이 과연 가까운 미래에 황 CEO 같은 혁신가를 배출할 준비가 돼 있는지를 생각해 보니,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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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류재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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