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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공약체크] 농심 흔드는 양곡법 또 쟁점화… 쌀 의무매입하면서 감산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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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공약체크] 농심 흔드는 양곡법 또 쟁점화… 쌀 의무매입하면서 감산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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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거친 정보통신망법 상정…곧 野 주도 필리버스터 돌입
이재명 "쌀값 안정으로 농민 보호, 식량 안보"
쌀 과잉생산 구조… 재정부담·시장왜곡 우려
시장격리 의무화시 농식품부 추산 '연 3조 원'
타작물 재배 전환 시급… 인센티브 효과 관건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21대 대선을 앞두고 '양곡관리법(양곡법)'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국가 책임 농정을 기치로 앞선 정부에서 두 차례 거부권 행사된 양곡법 개정을 공약으로 들고 나오면서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즉각 반대 의견을 밝혔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현행 벼 재배면적 조정, 전략작물 직불제 강화로 농업 체질을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도 농산물 최저가격보장 제도화를 내걸었다.

이재명 후보의 양곡법 개정안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이재명 후보 측 관계자는 "전 정부 강제 감축으로 농가 불신이 커졌는데, 충분히 현장과 소통해 추후 논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민주당 주도로 이달 12일까지 발의된 안들을 종합하면 쌀값이 기준 가격 미만으로 떨어질 경우 정부가 차액을 지급하거나, 초과 생산량을 공공비축미로 매입하는 방안 등이 골자다. 논에 타작물을 재배하면 재정 지원을 해주는 내용도 양곡법에 넣기로 했다.

양곡법 개정되면 어떻게 바뀌기에… 재정 부담은 불가피



더불어민주당 21대 대선 중앙공약 발췌

더불어민주당 21대 대선 중앙공약 발췌


양곡법은 주요 농산물 최저가를 보장해주는 농수산물 유통·가격안정법(농안법)과 줄곧 농정의 뜨거운 감자였다. 지난해 농업소득이 1,000만 원 아래로 다시 떨어진 상황이라 농가 소득 대책 필요성엔 이견이 없다. 민주당은 쌀값 안정으로 식량 안보를 지키고 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양곡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재정이 과다하게 투입되고 과잉생산과 시장 왜곡을 부추긴다는 반대 목소리도 만만찮다.

지금도 정부는 시장 안정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쌀을 매입하고 있다. 주식 개념이 옅어지면서 쌀 생산을 줄이고 있지만 소비 감소 속도가 앞지르면서 가격이 급락해 매년 20만~30만 톤대의 쌀이 격리된다. 양곡법 개정안은 이 같은 매입을 정부의 법적 의무로 바꾸는 게 핵심이다. 민주당은 논란이 컸던 의무격리 부분은 추가 검토한다는 입장이나, 초과 생산분 매입과 차액 보전을 전제로 하고 있어 예산 편성·집행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얼마나 재정이 투입돼야 할까. 이준석 후보가 언급한 '3조 원'은 정부 추산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양곡법 통과 시 2030년엔 매입비가 2조6,925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최근 4년 연평균 비용(6,500억 원)의 네 배 수준이다. 4,000억 원대 보관비까지 고려하면 3조 원이 넘을 전망이다. 정부는 이렇게 쌀을 사 보관하다 품질이 하락하면 사료용으로 헐값에 판매하는데, 이로 인한 손실액은 최근 3년 1조56억 원에 달한다.

앞서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양곡법 개정 시 2030년 수매 예산을 1조4,659억 원으로 전망했다. 보관비를 더하면 2조 원 정도로 정부와 차이가 있다. 생산량, 수요량 변화 예측에 한계가 있는 만큼 정확한 소요 재정을 예상하긴 어렵지만, 벼 재배면적 감소 둔화와 쌀 초과 생산량 확대로 비용이 늘어날 공산이 크다는 건 중론이다. 민주당 정당정책집엔 재원 조달 방안은 정부 지출구조 조정분, 연간 총수입 증가분이 언급됐다.

쌀 의무매입하면서 대체 작물 전환… 양립 가능할까



전북 임실군 미곡창고 앞에 2020년산 공공비축미곡 매입 관련 쌀을 실은 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임실군청

전북 임실군 미곡창고 앞에 2020년산 공공비축미곡 매입 관련 쌀을 실은 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임실군청


지난해 쌀 생산량은 전년보다 11만8,000톤 줄어 2021년 이후 가장 적었음에도, 수요 대비 초과된 물량은 5만6,000톤에 달했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40년 연속 감소해 지난해 사상 최저인 55.8㎏까지 줄었다. 쌀은 남는데 식량자급률은 절반(2023년 49%)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라 식량 안보 우려도 제기된다. 곡물자급률은 22.2%로 초과 생산되는 쌀을 제외한 콩(9.3%), 밀(1.1%), 옥수수(0.8%) 등은 평균을 훨씬 밑돈다. 타작물 재배 전환이 필요한 배경이다.

현재는 지역별 벼 재배면적 감축분 할당으로 쌀 공급을 줄여 가격을 올리고, 논에 다른 전략작물을 심으면 직불금을 주는 방식으로 농정이 이뤄지고 있다. 반면 민주당 측은 양곡법 개정으로 쌀 가격은 정부가 보장해주되, 양곡수급관리위원회를 신설해 곡물별 수급을 관리하고 논에 타작물을 재배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을 구상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가 말한 '대체 작물 지원제'의 취지로, 인센티브에도 역시 재정이 필요하나 농가 안정성과 자율성은 강화되는 방향이다.

다만 가격이 보장되는 쌀을 두고 타작물 전환이 원활하게 이뤄질 것인가는 의문이다. 농촌 고령화로 90% 이상 기계화된 벼농사를 선호하는 맥락도 작용한다. 황성혁 전북대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의무매입은 과잉생산을 초래할 수 있고, 초과 생산이 빈번해지면 재정 타격이 커지는 만큼 타작물로의 유인책이 관건"이라고 짚었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농민이 합리적으로 시장상황을 고려, 쌀 이상 소득을 낼 수 있는 품목을 선택할 수 있게 정책을 설계한다면 의무매입과 양립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종=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