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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양림동에는 반경 500m 이내에 세 개의 '양림교회'가 있다. 유진 벨 선교사가 세운 같은 뿌리에서 나온 교회로 각각 다른 교단 소속인 세 교회는 특징에 따라 '웃 교회(기장 교단. 왼쪽)' '정원 교회(예장통합 교단. 가운데)' '계단 교회(예장합동 교단. 오른쪽)'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세 교회는 '100년사'를 함께 펴냈고 매년 연합 찬양 예배를 드리는 등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 개신교계에 모범을 보이고 있다./김영근 기자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호남신학대 뒷산의 선교사 묘역에서 내려오다 보면 교회 건물 3개가 보인다. 세 교회의 이름은 모두 ‘양림교회’. 뿌리는 하나다. 1904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유진 벨이 세운 교회가 시작이다. ‘한 뿌리 세 교회’ 혹은 ‘세 지붕 한 가족’인 셈이다. 각각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와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과 합동 교단 소속의 교회다. 지역에서는 각 교회의 특징을 따서 언덕 위의 기장 교회(이낙균 담임목사)는 ‘웃(윗)교회’, 정원이 아름다운 예장 통합 교회(김현준 담임목사)는 ‘정원 교회’, 예배당 앞에 계단이 있는 예장 합동 교회(조성용 담임목사)는 ‘계단 교회’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세 교회는 한국 개신교 교단 분열과 화합의 역사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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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벨 선교사 (가운데)와 아들 헨리(왼쪽), 아버지 윌리엄 헨리가 함께 촬영했다. /양림교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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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남구 양림동 오웬 기념각. 의사인 선교사 오웬을 기념해 세워진 건물로 각종 문화행사가 열렸고, 양림교회가 분립할 때 새 건물을 짓기 전까지 예배가 열리며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김영근 기자 |
세 양림교회의 역사는 광주·전남 지역에 복음을 전한 미국 남장로교 유진 벨(1868~1925·한국명 배유지) 선교사가 1904년 성탄절에 양림동 사택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됐다. 당시 양림동은 어린이들의 시신을 버리던 외진 언덕이었다. 선교사들은 이곳에 자리 잡고 교회와 숭일·수피아 등 학교, 제중병원(광주기독병원)을 열었다. 세례를 줄 때는 ‘개종(改宗) 동기의 순수성’ ‘3~4명 이상 전도’ ‘술·담배·마약 금지’ ‘개종 후 삶의 변화를 지역인들에게 확인’까지 9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할 정도로 엄격했지만 신앙 열기는 뜨거웠다. 광주 인구가 1만명 정도이던 1910년 이미 교인이 600명에 이를 정도로 교회는 급성장했다. 포사이트 선교사가 1909년 길거리에서 한센인 환자를 거두어 보살핀 것은 훗날 여수 애양원으로 이어졌고, ‘한센인의 어머니’로 불린 셰핑(1880~1934·서서평) 선교사 등의 헌신에 감동받은 이들도 교회를 찾았다. 의사였던 오웬 선교사가 1909년 순직한 후 유가족의 기부로 지어진 오웬기념각은 광주 문화·예술의 중심이 됐다. 1920년대 지어진 윌슨(1880~1963·우일선) 선교사 사택은 ‘정년이’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 등 드라마 촬영지로도 활용되고 있다. 광주 남구청은 양림동 일대를 역사문화마을로 지정해 문화해설사가 안내하는데 2023년 8000여 명, 2024년 5200여 명이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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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양림동 호남신학대 뒷산의 선교사 묘역. 오웬, 유진 벨 목사 등의 묘비가 보인다. 최흥진 전 호남신학대 총장은 "선교사들은 어린이들의 풍장터로 쓰이던 죽음의 땅을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생명의 터전으로 바꾸었다"고 평가했다. /김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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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남구 양림동 우일선(윌슨) 주택. 1920년대에 지어진 서양식 건물로 지금도 각종 드라마의 촬영지로 애용되고 있다. /김영근 기자 |
한국 개신교계의 거인들도 양림동을 거쳤다. 평양신학교 1회 졸업생 이기풍(1865~1942) 목사가 양림교회 2대 당회장을 지냈다. 일제 말 스스로 ‘사망신고서’를 발표하고 은둔했던 영성가 최흥종(1880~1966) 목사도 양림교회 장로 출신이며, 한국대학생선교회(CCC)를 설립한 김준곤(1925~2009) 목사는 숭일학교 교장과 양림교회 임시 당회장을 지냈다. 이런 전통 때문에 양림동은 술집이 거의 없는 동네로 유명하며 부활절을 앞둔 고난주일엔 새벽 기도 교인들로 새벽 러시아워가 생길 정도. ‘광주의 예루살렘 거리’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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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세 양림교회는 매년 10월 연합 찬양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사진은 2024년 찬양 예배 모습. 앞줄 왼쪽부터 '웃 교회' 이낙균 목사, '정원 교회' 김현준 목사, '계단 교회' 조성용 목사. /양림교회 제공 |
교회가 나뉘게 된 것은 1950년대 이후 장로교 교단이 나뉘면서부터다. 1953년 기장과 예장이 나뉘면서 ‘웃교회’와 ‘정원 교회’가 나뉘었고, 예장이 다시 통합과 합동 교단으로 분리되면서 1961년 ‘계단 교회’가 설립됐다. 세 교회가 다시 모인 것은 1997년 무렵. 교회는 나뉘었지만 한 동네에서 자란 선후배, 친구 사이인 교인들은 음악회로 하나가 됐다. 1998년 호남신학대 강당에서 음악회를 연 이후로 연합 찬양 예배를 매년 10월 개최하며 이때는 세 교회 목사가 이웃 교회를 찾아 설교한다. 또 매년 3월 만세 운동 재현 행사, 성탄절 트리 점등식도 함께 하며 명절 때는 세 교회 청년들이 함께 전을 부쳐 어르신들께 대접하는 전통도 이어가고 있다. 연합 행사의 기본은 배려. 찬양 예배 때는 찬양 대원의 숫자를 똑같이 맞추고, 불우 이웃 돕기 성금 액수도 똑같이 책정한다. 30일 오후 7시 30분에는 정원 교회에서 ‘리멤버 배유지, 리멤버 양인(洋人)’을 주제로 선교사들이 세운 기독간호대, 기독병원, 호남신학대, 수피아여고와 양림교회 찬양대가 공동으로 음악회를 열어 선교사들의 뜻을 기린다. 2003년말 ‘양림교회 100년사’를 세 교회가 함께 펴낸 것도 개신교계에서는 거의 유례가 없는 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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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세 양림교회는 '100년사'를 함께 편찬했다. 1953년 교회가 나뉘기 전까지 공통의 역사는 1권에 담고, 2권에는 나뉜 후의 역사를 각각 서술하는 방식으로 함께했다. |
세 교회 목사들은 “한 뿌리에서 나온 교회들이어서 교인 간의 가족적인 결합도가 굉장히 높다”며 “앞으로도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김한수 종교전문기자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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