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보험료율을 내년부터 2033년까지 현행 9%에서 13%로 올리고(세대간 차등), 2028년 40%까지 내려갈 소득대체율을 내년부터 43%(올해 41.5%)로 유지하는 게 개정의 골자였다. 청년층은 "왜 우리가 손해 봐야 하는가" "국민연금을 폐지해야 한다" 등 격한 반응을 내놨고, 6ㆍ3 대선 정국에서도 '연금 개혁론'이 화두로 떠올랐다. 말 많고 탈 많은 국민연금, 우리가 논쟁해야 할 건 무엇일까. 6ㆍ3 대선 에디션 공약논쟁前 국민연금 편이다.
☞ 참고: 6ㆍ3 대선 에디션 '공약논쟁前'의 취지는 공약을 논쟁하기 전前에 논쟁해야 할 이슈를 살펴보자는 겁니다. 더스쿠프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을 읽어보시면 취지를 쉽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thescoop.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5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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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만 들어도 대다수 국민이 한숨을 내쉬는, 특히 젊은이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정부 정책이 있다. 바로 국민연금이다. 한숨과 분노의 배경은 이렇다. "일정 시기(2064년)가 되면 국민연금 적립금은 완전히 고갈된다. 저출생ㆍ고령화로 인해 미래 세대도 줄어든다. 결국 미래 세대는 높은 보험료율을 부담해야 한다. 특히 현재의 젊은 세대는 자신들이 납부한 보험료만큼의 돈을 연금으로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 국민연금 제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이런 우려가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퍼져 있는 탓에 국민연금 제도의 무용론과 함께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이번 6ㆍ3 대선에서 국민연금 개혁 공약이 공론화한 건 이같은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경제ㆍ복지 분야에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와 연금개혁 지속 추진, 국민연금 군복무 크레디트 확대로 청년생활안전망 구축, 국민연금 수급 연령에 맞춘 정년 연장(사회적 합의를 통해 단계적 추진) 등의 공약을 담았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청년정책 분야에 국민연금 공약을 포함했다. 불만 많은 청년층을 공략하겠다는 건데, 청년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국민연금 2차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게 핵심이었다. 두 사람이 내놓은 국민연금 공약에는 공통점이 있다. 제도의 구조는 그대로 둔 채 보험료율과 보험금 지급 조건 등을 변경하는 모수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는 구조개혁에 초점을 맞췄다. 공약 비중도 다르다. 다른 후보들은 큰 카테고리 안에 세부항목으로 국민연금 개혁을 담았지만, 이준석 후보는 10대 공약 중 5순위로 국민연금 개혁을 제시했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국민연금을 신연금과 구연금으로 나눠 계정을 분리한다. 구연금에는 조기에 국고를 투입해 미적립부채(연금 지급에 모자라는 돈) 증가를 막고, 연금액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해 과지급을 막는 선에서 계정을 정리한다. 신연금에는 납입 보험료에 따라 급여를 결정하는 방식을 도입해 납부한 만큼 받는 구조로 안정성을 확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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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늘 보험료율과 연금액이라는 틀 안에서만, 쉽게 말해 '모수개혁' 안에서만 이뤄졌던 것과 비교하면 큰 진전이다. '모수개혁으로 연명'하는 것보다 '지속가능한 구조개혁'을 원하는 국민이 많아서다. 이런 맥락에서 대선이 끝난 지금 우리는 '이준석안案'을 비롯해 다양한 관점에서 국민연금 개혁을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 논쟁➊ 개혁 논의의 출발점 = 가장 먼저 생각해볼 것은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왜 시작됐느냐는 거다. 그 배경을 따지는 건 매우 중요하다.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냐에 따라 해법도, 결정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언급했듯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특정 시기에 기금 적립금이 고갈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마치 누군가가 기금 적립금을 축내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애초에 우리나라 국민연금 제도는 국민 개개인의 보험료를 '적립'했다가 '이자'를 붙여 연금으로 돌려주는 구조가 아니다.
쉽게 설명하면, 국민 개개인의 보험료를 받자마자 '연금 대상자'인 이에게(연금수급자) 배분하는 구조다. 지금까지는 연금수급 총액보다 보험료 총액이 더 커서 연금액으로 지급하고 남은 돈을 운용해왔을 뿐이다. 그게 바로 우리가 말하는 '기금 적립금'이다.
다시 말해 연금수급 총액과 보험료 총액이 같으면 기금 적립금도 남지 않는다. 소진돼서 없어지는 게 당연하지만, 1227조5000억원(올해 2월 기준)이란 적립금의 덩치 때문에 아깝게 느껴질 뿐이다. '기금 적립금이 고갈된다'는 전제에 큰 허점이 있다는 거다.
이상하게도 이런 진실을 말하는 정치인들은 거의 없다.[※참고: 지난해 정부는 연금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험료율 인상 지지를 유도하는 설문조사를 진행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 논쟁➋ 원인 따라 달라지는 해법 = '기금 적립금 고갈론'의 허점을 발견하면 문제 인식도 달라진다. '어떻게 하면 기금 적립금 고갈을 막을까'가 아니라 '저출생ㆍ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보험료 총액보다 연금수급 총액이 더 커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로 바뀐다.
누군가는 '그래서 모수개혁 논의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효율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 예컨대 보험료 총액을 늘리는 방법엔 보험료율 인상 외에도 정년 연장이나 노인일자리 창출을 비롯해 대기업ㆍ중소기업 임금 격차 해소, 비정규직 처우 개선, 최저임금 인상과 같은 다양한 노동정책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노동정책이 결국 국민연금 개혁과 무관하지 않다는 거다.
이런 논의는 세대 간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왜 우리 세대가 보험료를 더 내지' '국민연금을 못 받는 것 아니냐'란 의문도 해소할 수 있다. 다만, 이 지점에선 생각해야 할 게 있다. 보험료 총액을 늘리든, 연금 지급을 늦추든 '저출생 고령화' 문제를 극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기금 적립금 고갈은 수순에 가깝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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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는 특정 시점에 국민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따져 유지할 것인지 말 것인지(폐지까지 고려), 만약 유지한다면 연금제도의 구조를 개혁할 것인지 말 것인지 등을 공론의 도마에 올려놔야 한다.
국내외 곳곳에 투자한 '기금 적립액'을 현금화하는 문제도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 '적립액 현금화 시나리오'를 미리 짜놓지 않는다면, 어마어마한 국민 세금을 투입해 '구멍'을 메워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참고: 국민연금 적립금 중 국내 주식에 투자한 자금만 해도 153조원(12.5%)에 달한다(올 2월 기준). 이 자금을 단기간에 현금화하면 국내 주식시장은 요동칠 게 뻔하다. 따라서 서서히 현금화하려 한다면 그 기간만큼 세금으로 연금지급액을 메울 수밖에 없다.]
자, 어떤가. 이런 문제의식 없이 진행되고 있는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과연 올바른 방향성을 갖출 수 있을까. 차기 정부는 국민연금을 개혁할 수 있을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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