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SK→LG 차례로 우승
프로농구 최초 3개 팀 반지 껴
"최초라는 기록에 욕심 좀 났다"
최고령 MVP에 "'찐'으로 놀랐어"
이왕 4개 팀 우승? "그건 진짜 욕심"
2016년 대구 동양 이름을 떼고 고양 오리온(현 소노)으로 연고지와 팀명을 바꾼 후 첫 우승, 2022년 서울 SK의 창단 첫 통합 우승, 2025년 창원 LG의 28년 만에 창단 첫 우승.
프로농구 세 개 팀의 역사적인 순간을 모두 함께했던 국가대표 출신 슈터가 있다. 사상 처음으로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고 최초로 반지 3개를 낀 1985년생 베테랑 허일영(LG)이다. 무엇보다 세 번째 우승은 LG의 오랜 우승 숙원을 푸는 동시에 상과 거리가 멀었던 그에게 최고령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MVP)라는 타이틀까지 따라와 가장 큰 감동이 됐다.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KBL센터에서 만난 허일영은 직접 입었던 우승 팀 유니폼을 바라보며 “다른 팀에서 두 번 우승한 경우는 알았는데, 세 번은 없다고 하더라”면서 “최초라고 하니까 욕심이 좀 났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주변 지인들이 ‘40대의 희망’이라고 하더라”며 “인생은 ‘나처럼 살아야 된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고 활짝 웃었다.
프로농구 최초 3개 팀 반지 껴
"최초라는 기록에 욕심 좀 났다"
최고령 MVP에 "'찐'으로 놀랐어"
이왕 4개 팀 우승? "그건 진짜 욕심"
프로농구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MVP) 허일영이 22일 서울 강남구 KBL센터에서 우승했던 팀들의 유니폼을 챙겨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허일영은 오리온, SK 시절에 이어 LG에서 역대 최초로 3개 팀 우승을 이뤄냈다. 강예진 기자 |
2016년 대구 동양 이름을 떼고 고양 오리온(현 소노)으로 연고지와 팀명을 바꾼 후 첫 우승, 2022년 서울 SK의 창단 첫 통합 우승, 2025년 창원 LG의 28년 만에 창단 첫 우승.
프로농구 세 개 팀의 역사적인 순간을 모두 함께했던 국가대표 출신 슈터가 있다. 사상 처음으로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고 최초로 반지 3개를 낀 1985년생 베테랑 허일영(LG)이다. 무엇보다 세 번째 우승은 LG의 오랜 우승 숙원을 푸는 동시에 상과 거리가 멀었던 그에게 최고령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MVP)라는 타이틀까지 따라와 가장 큰 감동이 됐다.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KBL센터에서 만난 허일영은 직접 입었던 우승 팀 유니폼을 바라보며 “다른 팀에서 두 번 우승한 경우는 알았는데, 세 번은 없다고 하더라”면서 “최초라고 하니까 욕심이 좀 났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주변 지인들이 ‘40대의 희망’이라고 하더라”며 “인생은 ‘나처럼 살아야 된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고 활짝 웃었다.
허일영이 챔피언 트로피를 배경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
사실 허일영은 중학교 3학년 때 농구를 시작한 이래 오랜 시간 우승과 연이 없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대표팀과 상무 시절 우승을 제외하면 동아고와 건국대 재학 시절 준우승만 했다. 이 때문에 2015~16시즌 오리온에서 프로 첫 우승을 이뤄냈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는 “1위를 달리고 있다가 애런 헤인즈가 시즌 중간에 다쳐서 3위까지 떨어져 6강 플레이오프부터 올라갔다”며 “(당시 상대였던 1위 팀) KCC에는 하승진, 전태풍, 안드레 에밋이 있었지만 리그 때 항상 대등하게 싸워서 질 것 같지 않았고, 우리도 워낙 멤버가 좋았다”고 떠올렸다. 실제 오리온은 6강 플레이오프, 4강 플레이오프를 3전 전승으로 통과하고 KCC와 챔프전은 4승 2패로 끝냈다.
두 번째 우승 트로피는 데뷔 후 11년 만에 새로운 도전에 나선 곳에서 들어 올렸다. 2009년 신인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오리온 유니폼을 입은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였지만 2020~21시즌 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SK로 둥지를 옮겼다.
포즈를 취하고 있는 허일영. 강예진 기자 |
당시 SK는 우승에 근접한 전력을 갖췄다. 김선형, 최준용, 안영준, 자밀 워니 등 화려한 라인업을 꾸렸고 여기에 정확한 외곽포를 장착한 허일영이 가세했다. 예상대로 SK는 정규리그와 챔프전을 모두 휩쓰는 통합 우승을 처음 차지했다. 허일영은 “SK 역시 선수 구성이 너무 좋았다”면서 “딱 한 자리(스몰포워드) 부족했던 부분을 내가 잘 메웠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SK 시절 우승과 달리 세 번째 우승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이었다. SK와 3년 계약을 마친 허일영은 재계약에 이르지 못했고, 그때 LG가 손을 내밀었다. 허일영은 “아내가 ‘찾아주는 팀이 있는 게 다행이다. 어디든 가라’는 얘기를 했다”며 “이후 몇 팀이 영입 제안을 했지만 생각했던 조건과 달랐다”고 밝혔다.
다만 LG는 우승 후보로 평가받던 팀이 아니었다. 허일영도 우승보다는 새 팀에서 건재함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나 과정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유기상, 양준석 등 ‘젊은 피’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 조상현 LG 감독의 방향성에 허일영은 데뷔 후 가장 적은 시간(평균 14분 46초)을 소화했다. 보통 슈터는 코트를 계속 누비면서 슛 감각을 찾는데 2, 3분만 뛰고 바꾸는 교체 방식에 애를 먹기도 했다.
최고령 MVP 영예를 안은 허일영. 강예진 기자 |
그럼에도 허일영은 참고 버텼다. 그리고 마지막에 결국 웃었다. 압도적인 정규리그 1위 SK를 상대로 챔프전에서 거침없이 포물선 높은 특유의 3점슛을 쏘아 올렸다. 특히 3연승 후 3연패로 코너에 몰린 최종 7차전에 3점포 4방 포함 14점을 몰아쳐 팀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간 남이 받는 상으로만 알았던 MVP를 수상한 허일영은 “주축으로 뛰어야 받을 수 있어서 나와 관계없는 상이라 생각했다”며 “당시 표정을 보면 정말 ‘찐’으로 놀랐다. 시즌 내내 고생했던 것과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것이 확 올라와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1, 2년 더 경쟁력을 유지할 것 같다던 허일영에게 ‘내친김에 최초 기록을 4개 팀 우승으로 늘리고 싶은 욕심은 없는지’라고 물었다. 이에 허일영은 “그건 진짜 욕심”이라면서도 “(2년 계약을 한 LG와) 1년만 계약할 걸 그랬나”라고 농담 섞어 미소 지었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