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전남·전북에 공공 의대
경북에는 일반 의대 신설”
공공 병원 울산의료원도 공약
경북에는 일반 의대 신설”
공공 병원 울산의료원도 공약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26일 오후 경기 용인시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 정문 앞을 찾아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스1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지역 의대 4곳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인천과 전남·전북에 공공 의대를 1곳씩 세우고, 경북에는 일반 의대 1곳 신설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또 울산에는 어린이 치료에 특화한 공공 병원인 울산의료원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후보는 지난 26일 공개한 ‘지역 공약집’에서 “의대가 없는 유일한 광역지자체인 전남과 의대가 폐교(옛 서남대 의대)된 전북에는, 국립 의대를 설립해 공공·필수·지역 의료 인력을 직접 양성하겠다”며 “의료 불균형과 격차 해소를 위해 인천에 공공 의대 설립을, 경북에 의과대학 설립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전남 의대 1곳 신설만 공약했다.
그래픽=정인성 |
이 후보의 ‘공공 의대 등 4곳 신설’ 공약의 기본 취지는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방에 공공 의대를 세워, 거기서 배출된 의사들이 그 지역 중환자를 최종 치료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공공 의대는 국가가 학생들의 학비 등을 지원하되, 학생이 의사 면허를 따면 해당 지역에서 10년 정도 의무 복무하게 하는 제도다. 이를 통해 지방 노인·장애인 환자 등을 치료할 ‘지역 의사’를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의료계의 큰 반발에 부딪힐 여지가 있는 공약”이란 말이 나온다. 지난해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후보의 의대 신설 공약이 의사들에게 사실상의 의대 증원 방침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가 공공 의대 등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한 경북과 전남·전북 지역은 의사가 부족한 국내 대표적인 ‘의료 취약지’로 통한다. 섬을 끼고 있는 인천도 수도권에서 인구 대비 의사 수가 가장 적은 곳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인구 1000명당 의사 수(한의사·치과의사 포함)는 경북(2.3명)과 전남(2.6명)·전북(3.1명), 인천(2.7명) 모두 전국 평균(3.2명)을 밑돌았다. 거의 모든 조사에서 경북은 의사 수 최하위 지역으로 나온다. 전남은 고령 인구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지만 섬이 많아 응급 환자가 대형 병원에 도착하는 시간이 가장 긴 편이다. 이를 두고 각종 중환자 단체들은 “지방에 사는 게 죄”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27일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의 모습.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전날 지역 의대 4곳을 신설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이는 사실상의 의대 증원 방침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장경식 기자 |
이 후보가 공약한 공공 의대 신설은 이런 의료 격차를 해소하는 한 수단으로 정치권과 학계에서 자주 거론된 정책이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지역 의료 붕괴라는 말이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지방에 의사가 없기 때문”이라며 “지역 의무 복무 기간 등을 포함하고 있는 공공 의대 신설은 지방 의사 확보의 한 방편으로 꾸준히 제기됐던 사안”이라고 했다. 낙후된 지방 환자의 절반 이상은 그동안 국내에서 가장 큰 5대 대형 병원인 서울의 ‘빅5’로 가서 수술·치료받는 것이 현실이었는데, 앞으로는 공공 의대 출신 의사가 주축이 된 그 지역의 공공 병원이 ‘빅5’ 역할을 대체하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는 “의사가 없어 서울의 대형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아야 했던 의료 낙후지의 중환자가 이제 지역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게 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의료계는 이 후보의 ‘의대 4곳 신설’ 공약이 ‘이재명식 의대 증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현 정부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려 매년 5058명의 학생을 뽑기로 했다가,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의료계 반발이 계속되자 내년도 모집 인원을 증원 전인 3058명으로 되돌렸다. 이 후보의 의대 신설은 결국 3058명에서 ‘플러스 알파(+α)’가 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보는 것이다. 의료계 인사들은 “이미 각 의대에 배정된 학생 정원을 줄여서 신설하는 의대의 정원으로 돌리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충청권의 한 외과 교수는 “과거와 달리 요즘은 지방 대학이 우수한 학생을 유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은 의대”라며 “의대 정원 규모는 대학의 위상과 직결되기 때문에 이것을 줄이려고 하면 해당 대학과 지역의 큰 반발을 살 것”이라고 했다. 부산대병원의 한 교수는 “현재 비수도권 의대는 그 지역 학생 60% 정도를 우선 선발하고 있다”며 “의대 정원 감축은 지역 학부모들의 ‘자녀 의대 진학의 꿈’을 꺾는 지역 차별로 인식될 수 있다”고 했다. 또 “이해관계도 복잡하기 때문에 이를 풀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는 “의대 신설이 곧 의대 증원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라며 “과거 김영삼 정부 때도 의대를 신설할 때, 의대 총정원은 유지하면서 기존 의대들의 정원을 조금씩 줄이는 식으로 신설 의대의 정원을 마련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 후보의 의대 신설 공약이 의대 증원으로 이어질 경우 소강상태인 의정 갈등이 재점화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2020년 문재인 정부는 2018년에 폐교된 서남대 의대를 공공 의대로 부활시킨다는 명목으로 매년 400명씩 10년간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발표했다가, 의사들이 총파업을 벌이자 발표 43일 만에 이를 철회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도 의대 2000명 증원을 밀어붙이다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 후보가 울산에 설립하겠다는 어린이 치료 특화 공공 병원을 두고도 의견이 갈린다. 지방은 중증·응급 소아 환자 치료 인력과 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린이 전담 공공 병원’ 설립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공공 병원을 신뢰하지 않는 지방 환자들이 서울의 ‘빅5’로 갈 것이어서 이 후보가 건립한 성남의료원처럼 매년 수백억 원대의 적자가 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조백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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