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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아부다비도 빨려 들어간 ‘옻칠 우주’

조선일보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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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아부다비도 빨려 들어간 ‘옻칠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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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까지 동양화가 오명희 개인전
오명희, '에테르 Aether'(2025). /이화익갤러리

오명희, '에테르 Aether'(2025). /이화익갤러리


옻칠로 뒤덮인 원형 캔버스 앞에 서니, 중심에서 퍼져 나오는 에너지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표면에 붙인 자개 조각이 밤하늘의 별무리처럼 흩어지고, 끝을 알 수 없는 우주 속을 떠도는 느낌도 든다.

동양화가 오명희(69) 개인전 ‘피어나는 빛, 봄의 숨결’이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축구 선수 박지성의 장모로도 유명한 그는 ‘스카프를 그리는 화가’로 1990년대 화단에서 주목받았다. 최근엔 작업 세계를 우주로 확장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야생화 핀 들판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스카프가 굴레와 편견으로부터 속박되지 않은 제 자화상이었던 것처럼, 지금 표현하고 있는 달과 우주 역시 저 자신을 드러내는 동시에 제 소망과 기원을 담은 것”이라고 했다.

오명희, '에테르Aether'(2025). /이화익갤러리

오명희, '에테르Aether'(2025). /이화익갤러리


전시장에서 '에테르' 옆에 선 오명희 작가. /허윤희 기자

전시장에서 '에테르' 옆에 선 오명희 작가. /허윤희 기자


동양적이면서 화려한 그의 작품은 해외에서 러브콜이 쏟아진다. 2017년 런던 사치갤러리에서 자개와 금박을 활용한 작품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흐드러진 꽃과 나비, 새 문양의 나전 장식에 매료된 카타르의 셰이카 알 마야사 공주가 전시 제안을 했을 정도다. 2022년에는 베네치아 팔라초 모라에서 열린 특별전에서 6·25 전쟁 이후 한국 여성들의 집단적 기억을 주제로 한 작품을 전시했고, 지난해 케냐 나이로비 국립박물관 특별전에서는 일제강점기 기생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오명희 개인전 '피어나는 빛, 봄의 숨결' 전경. /이화익갤러리

오명희 개인전 '피어나는 빛, 봄의 숨결' 전경. /이화익갤러리


이화익갤러리와의 인연도 중동에서 비롯됐다. 이화익 대표는 “지난해 아부다비 아트페어에서 오 작가의 대형 작품 6점을 선보여 순식간에 완판됐다”며 “동양화에 바탕을 두면서도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오 작가 스타일을 그쪽에서 너무 좋아했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에는 소우주 같은 원형 캔버스 안에 옻칠과 자개 조각을 가득 채운 ‘에테르’ 연작, 수천 개의 자개 조각으로 찬란한 봄날을 담은 ‘제니스’ 연작 등 20여 점이 나왔다. 작가는 “어릴 적 안방 장식함에서 본 자개의 은은한 빛깔과 옻칠의 오묘한 색감에 매혹됐다”고 했다. 도화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도록에 “오명희 작가는 전통 나전칠기와 자개를 회화에 응용하며 전통과 현대, 공예와 순수미술의 경계와 구분을 ‘경쾌하게’ 가로지른다”고 썼다. 전시는 31일까지. 무료.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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