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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족이 8년 뒤 이태원 유족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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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족이 8년 뒤 이태원 유족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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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윤철 "농축수산물 최대 50% 할인…2만원내 생필품 지원 '그냥드림' 확대"


광화문광장 차린 세월호 기억공간
오세훈, 광장공사 이유로 철거 통보
시의회 마당 임시공간으로 지켜내

윤 정권, 출범 첫해에 이태원 참사
이태원 유가족 모임 결성 온갖 훼방
분향소엔 혐오발언 유튜버들 몰려
권성동 “세월호 길 가지 마라” 망언도
세월호 유가족, 이태원에 고통 연대

이태원 거쳐 ‘세월호 9주기’ 기억식
생명·안전 국가의 약속 큰구멍 공감





10·29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9일째 단식농성 중이던 고 박가영씨의 어머니 최선미(오른쪽)씨가 지난 2023년 6월28일 오후 농성장을 찾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권순범군의 어머니 최지영씨의 위로를 받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0·29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9일째 단식농성 중이던 고 박가영씨의 어머니 최선미(오른쪽)씨가 지난 2023년 6월28일 오후 농성장을 찾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권순범군의 어머니 최지영씨의 위로를 받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코로나 팬데믹이 본격화했던 2020년 봄부터 약 3년 동안 세상은 달라졌다. 마스크를 쓰는 게 일상이었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누군가 기침만 해도 불안했다. 식당에서 한칸 건너서 혼자서 밥을 먹는 풍경이 일상이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대구에서는 병원에서 집단감염과 사망 사건이 있었다. 대구에는 자신들의 집에 갇혀서 지내야 하는 장애인들도 있었다. 움직이고 이동할 수 없는 장애인들 곁에 활동가들이 한명씩 붙어서 돌봐야 했다. 그런 그들에게 장애인 단체에서는 그들의 집에다 매일 식사와 음료 등 생필품을 문 앞에 전달했다.



‘인권재단 사람’에서는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대구로 내려갔다. 생필품 꾸러미를 만들어서 장애인들과 활동가들이 격리 생활을 하는 집집이 방문하고 꾸러미를 집 앞에 놓아두고는 전화로 알렸다. 감염 위험 때문에 대면하지도 못했다는 집 앞에 꾸러미를 놓고 전화로 알렸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고립이 아닌 연결, 연대만이 살길이라는 것, 코로나 팬데믹은 지금과 같은 세계화된 자본주의 체제로는 인류가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게 해줬다.



2021년 7월25일 낮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기억공간’ 일대에서 시민들이 세월호 기억공간 강제 철거 중단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021년 7월25일 낮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기억공간’ 일대에서 시민들이 세월호 기억공간 강제 철거 중단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세월호 기억공간 지키기





나는 2021년 5월부터는 4·16재단의 상근 상임이사를 하게 되어서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는 후배 인권활동가 최현모가 맡았다. 그해 7월에 오세훈 시장의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남단에 있던 세월호 기억공간 ‘기억과 빛’을 일방적으로 철거하겠다고 통보했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가 이유였다. 박원순 시장 때인 2019년 3월에는 천막 농성장 대신 목조 건물로 ‘기억과 빛’이란 기억공간이 들어섰는데 그것을 치우겠다고 한 것이다.



2014년 7월부터 이곳에 유가족들이 농성장을 차렸다. 시민들이 자연스레 찾아와서 노란리본을 만들었다. ‘노란리본공작소’에서 시민들이 매일 노란리본을 만들어 전국에 보냈다. 광장을 찾아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서명운동도 벌이고, 세월호 참사를 알렸다. 전국대학민주동문회협의회 등에서는 분향소에 당번을 정해서 상주 노릇을 자처했다. 매일, 매주 작은 문화제와 기도회 같은 행사들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거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런 기억공간이 사라지게 둘 수는 없었다. 다행히 서울시의회는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서울시의회와 대화를 통해서 임시 기억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시의회 마당이 너무 좁아서 애초 광화문에 있던 공간보다 3분의 1로 축소해서 목조건물이 임시로 들어섰다. 2021년 11월이었다. 2022년 4월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서울시의회 다수당이 된 다음부터는 철거를 압박했지만, 시민들의 기억공간 지키기 활동으로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다.





2022년 10월31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에 차려진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합동분향소를 찾아 묵념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2022년 10월31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에 차려진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합동분향소를 찾아 묵념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이태원 참사 뒤 유가족 모임 막은 정부





2022년 5월에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로는 나라가 전체적으로 망가져 갔다. 검찰이 권력 중심이 되어갔고, 주요 기관장으로 뉴라이트 인사들이 입성했다. 그 와중에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다. 2022년 10월 핼러윈을 앞두고 서울 이태원에 인파가 몰릴 것이라는 뉴스가 언론에 이미 보도되었던 터였다. 예상대로 인파가 몰렸고, 이태원역 1번 출구 해밀턴호텔 옆 골목에서 사람들이 뒤엉켜 압사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예전처럼 인파 관리만 되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인재였다.



“너무 아파서 숨도 못 쉬겠어. 그날처럼 너무 힘들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자기 일처럼 아파했다. 사건이 일어나고 나흘 뒤에 이태원 인근 녹사평역에 차려진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에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같이 찾아갔다. 그런데 분향소가 이상했다. 영정 사진도, 위패도 없이 꽃으로만 장식된 제단 앞에서 국화꽃을 올리고 고개를 숙였다. 사건 장소인 골목에도 가봤다. 폭 3~4미터의 좁은 골목에 수백명이 몰려서 엉켜버리다니 너무 기가 막혔다. 게다가 이후 분향소를 찾아갈 때마다 신자유연대나 극우 유튜버들이 이태원 유가족들을 향해 막말과 혐오 발언을 하는 것을 봐야 했다. 어떻게 저럴 수 있나, 탄식이 나왔다. 가족을 잃고 우는 사람들 앞에 대놓고 혐오 발언을 쏟아내던 극우 유튜버들은 세월호 단식 농성 때 폭식 투쟁을 하던 일베들을 생각나게 했다.



윤석열 정부는 유가족들이 모이지 못하게 막았다. 유가족들이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했지만, 파악이 안 되었다고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었다. 유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달라는 요구를 서울시는 외면했다. 결국 참사 100일 행진을 한 유가족들이 서울시 옆에서 천막을 기습적으로 설치하면서 모일 공간을 확보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 같은 단체로, 그리고 우리 4·16재단으로도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연락을 해왔다. 유가족들은 유골함이 안치된 납골당을 찾아갔다가 사망 날짜가 2022년 10월29일이면, 포스트잇으로 연락처를 남겼다. 그렇게 해서 유가족끼리 연락을 했다. 결국 12월10일에서야 100명 넘는 유가족들이 민변 사무실에 모여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를 출범시켰다. 유가족들을 지원해온 시민단체들도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이태원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그런 이태원 유가족들에게 권성동이란 자는 “이태원이 세월호와 같은 길을 가서는 안 된다”고 훈수해서 비난을 샀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가 2022년 12월10일 오후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창립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에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과 철저한 진실 규명,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협의회는 참사 희생자 97명의 유가족 170명으로 구성됐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가 2022년 12월10일 오후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창립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에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과 철저한 진실 규명,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협의회는 참사 희생자 97명의 유가족 170명으로 구성됐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태원 유가족들은 답답한 마음으로 세월호 유가족들을 찾아서 안산에 왔다. 그들을 세월호 유가족들이 안아주고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만나서는 안 되는” 유가족들이었다. “세월호 때 내가 더 열심히 참여하고 함께했더라면 이태원 참사가 없었을까요?”라고 묻는 이태원 유가족들의 손을 잡아주는 세월호 유가족을 보는 마음이 참 아팠다. 이후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 두 참사 유가족들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노란색 옷을 입은 세월호 유가족과 보라색 옷을 입은 이태원 유가족의 모습은 슬픈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태원 분향소에 찾아갈 때마다 그곳 제단에 올려 있는 얼굴 사진들을 본다. 그러면서 1997년생을 찾아본다.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 대부분은 97년생이었다. 이태원 참사 159명의 희생자 가운데, 그곳 제단엔 8명의 97년생이 있었다. 그리고 딱 97년생은 아니더라도 그 전후 나이의 희생자들이 많았다. 그 세대는 자신을 ‘저주받은 97년생’이라고 부른다. 97년 전후 세대들은 광화문 세월호 기억공간에 와서 스스로를 ‘4·16 세대’라고 했다. 이들은 또다시 ‘10·29 세대’가 되었다. 그들의 마음은 어떨까? 그들에게 기성세대들은 무엇을 물려주고 있는 것인가? 다시는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을 만들지 않겠다며 10년을 싸웠는데 우리는 여전히 제자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울적했다.





2023년 4월16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9주기 기억식’에서 4·16합창단과 시민합창단원 304명이 공연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2023년 4월16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9주기 기억식’에서 4·16합창단과 시민합창단원 304명이 공연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세월호 9주기…“모든 죽음 위로받아야”





2023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9주기였다. 그 이전 코로나 팬데믹 기간엔 추모 행사도 여러 제한으로 어려움이 있었다. 이날 멀리 참사 해역에서는 선상 추모식이 열렸고, 오전 11시에는 인천 추모관 앞에서 일반인 희생자 추모식이 개최됐다. 오후 3시 안산 화랑유원지 제3주차장에 마련된 ‘기억식’에 많은 사람이 몰렸다. 그날 기억식 마지막에는 4·16합창단이 노래를 부르고 막판에 304명의 이름을 적은 피켓을 올렸다. 무대를 가득 채운 304명의 이름들을 보면서 세월호 참사 때 저리 많은 사람이 한순간에 사라졌음을 상기했다.



이날 기억식에는 단원고 희생자 이영만군의 형 이영수씨가 무대에 올랐다. 그는 써온 편지를 담담하게 읽어갔다.



“이례적인 일은 사실 언제나 이례적이지 않다는 걸. 너희를 보내고 남은 우리가 해온 건, 슬픔의 강요가 아니라는 걸. 너희의 죽음만 특별하게 기억하려는 게 아니라, 반대로 모든 죽음이 위로받을 일이고 모든 생명이 귀함을 알아주길 원했다는 걸. 나라는 언제나 사람들의 삶과 안전을 담보로 서 있다는 걸. 그리고 대규모 참사는 그 약속에 뚫린 큰 구멍을 보여주는 일이란 걸. 여기에 ‘놀러 가서 죽었는데’ ‘적당히 해야 하는데’ 같은 말은 들어올 자리가 없다는 걸.”



이태원 참사까지 겪고, 혐오와 모욕을 견뎌온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까지 생각하는 내용이었다. 9주기 직후인 2023년 5월 말, ‘세월호 참사 10주기 위원회’를 구성하고 활동에 들어갔다.



‘세월호 참사 9주기 기억식’이 2023년 4월16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려 4·16합창단과 시민합창단원 304명이 희생자 304명의 이름이 적힌 종이 팻말을 들고 공연을 하고 있다. 행사에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 등도 참석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세월호 참사 9주기 기억식’이 2023년 4월16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려 4·16합창단과 시민합창단원 304명이 희생자 304명의 이름이 적힌 종이 팻말을 들고 공연을 하고 있다. 행사에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 등도 참석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박래군 | 36년째 인권운동가로 살고 있다. 유가협,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재단 사람을 거쳐서 현재는 4·16재단 운영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 ‘상처는 언젠가 말을 한다’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 공저서 ‘이따위 불평등’ ‘새로고침’ ‘살아남은 아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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