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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중 사대 외교? 엇나간 논쟁 [문정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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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중 사대 외교? 엇나간 논쟁 [문정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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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지난 13일 ‘보수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대구광역시의 동성로 거리에서 연설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지난 13일 ‘보수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대구광역시의 동성로 거리에서 연설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문정인 | 연세대 명예교수



“제가 대만에도 ‘셰셰’(謝謝·고맙다는 뜻의 중국어), 중국에도 ‘셰셰’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일본 대사한테도 ‘셰셰’라고 하려다가 못 알아들을까 봐 ‘감사하무니다’라고 했습니다.” “대만과 중국 간 분쟁에 우리가 너무 깊이 관여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상을 존중하고 우리는 거리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재명 후보의 유세 중 발언이다.



이를 두고 비난이 거세다. 국민의힘 관계자들은 이 후보의 이런 발언을 ‘굴종적, 친중 사대주의 외교’의 전형이라고 규정하는가 하면 같은 당의 김문수 후보는 “중국 공산당은 6·25 때 우리나라에 쳐들어온 적국이고 미국은 우리를 도와준 당사자인데, 어떻게 미국과 중국이 같은 수준이냐”고 날을 세웠다. 이준석 후보도 ‘중국과 대만에 관여하지 말고 모두 셰셰 하면 된다’고 하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이 북한하고 싸우면 어때’ ‘우리는 둘 다 셰셰 하면 되지’ 이렇게 나오면 곤란한 것 아닌가”라고 비꼬기도 했다.



그러나 세가지 이유에서 이는 받아들이기 힘든 비판이다. 첫째, 이 후보의 발언은 굴종적 친중 사대주의 발언이 아니다. 중국에만 ‘셰셰’ 하고 다른 주변국을 비하한 것이라면 문제가 되지만, 일본에도 ‘감사하무니다’, 그리고 심지어 대만에까지도 ‘셰셰’라는 표현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웃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한 역지사지의 자세로 주변국 공감 외교를 해나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인데 이를 문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는 “한-미 동맹 중요하다. 한·미·일 협력해야 한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랑 원수를 살 일 없지 않으냐. … 러시아, 중국과의 관계도 잘 유지하고 물건도 팔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겠나”라는 그의 실용외교와도 맥을 같이한다.



둘째, 양안 문제와 관련해서 ‘현상을 존중하고 우리는 개입하지 말고 거리를 두자’는 그의 주장 역시 상식에 부합하는 발언이라 하겠다. 1992년 8월24일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할 때 우리 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했다. 이는 중국의 유일 합법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이며 대만은 중국 영토의 일부라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대만과 단교하고 대표부를 두어 비공식적 관계로 일관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양안 문제는 기본적으로 중국 내부 문제이지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국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이런 점에서 이 후보의 발언은 우리 정부의 기존 대중국 정책과 부합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양안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의 군사 공조와 군사 개입 여부에 대한 이 후보의 ‘전략적 모호성’을 비난하는 것 또한 적절치 않아 보인다. 우선 양안 문제는 지금 당장 결단을 내려야 하는 급박한 사안이 아니다. 미 국방부 일부 인사들을 중심으로 2027년 중국의 대만 군사 침공설이 크게 대두하여왔고, 최근 들어 중국의 대만 포위 훈련이 빈번해지면서 ‘6개월 이내 중국의 대만 침공이 가능하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양안 관계는 우리의 군사 개입 여부를 결단해야 하는 첨예한 위기 상황이 아니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은 1기와 달리 대만 문제에 대해 놀라울 정도의 절제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대만 지도부와의 직접적 접촉을 피하는 가운데 대만 자체의 국방력 증강과 미국 무기 구매 압박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특히 얼마 전 백악관이 국가안보실(NSC) 내 대중 강경파(China hawks)들을 제거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양안 문제와 관련해, 군사적 대결보다는 실용적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최근 라이칭더 대만 총통이 대중국 강경 일변도에서 벗어나 중국과의 대화 의지를 표명하고 나선 데에는 국내 정치적 압박도 있지만 이러한 트럼프 행정부의 기류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마저 이런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데, 하물며 한국의 대선 후보가 먼저 나서서 군사 개입 여부를 선제적으로 표명하는 것은 국익에 반하는 지극히 부적절한 처신이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이재명 후보의 전략적 신중성이 더욱 돋보인다.



결국, 이번 엇나간 친중 사대 논쟁은 대선 국면과 관련하여 외교 정책의 기본에 대한 우리의 주의를 환기해주고 있다. 가상의 논쟁에 휘둘리지 않고 냉정한 현실 분석을 통해 실용적 해법을 제시하는 실사구시 외교, 이웃들에 대한 존중과 감사의 표시를 통해 선린 우호 관계를 돈독히 하는 역지사지 외교, 그리고 진영 논리에 빠진, 편 가름의 이전투구가 아니라 모든 국가와 더불어 같이하는 열린 포용 외교가 절실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외교 대통령의 덕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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