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이후 사회 전반에 걸쳐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중 외교 부문은 특히 심각합니다. 정상이 거의 반년 동안 부재 중이기 때문입니다. 새 대통령이 무엇보다 시급히 정상화시켜야 할 과제로 꼽힙니다. 취임 100일 동안 예상되는 외교 시간표와 쟁점을 짚어볼 예정입니다.
한일수교 60주년 맞아 깊어지는 민간 교류
| 한·일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서울 남산 서울타워(왼쪽)에 한국과 일본의 국기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빨간색이 번갈아 비쳤다. 일본 도쿄타워에(오른쪽)도 일본과 한국을 뜻하는 영어인 ‘재팬 코리아’(JAPAN KOREA)가 점등됐다. 2025.2.15 출처=연합뉴스 |
창원에 사는 김영호 씨는 매주 화요일 저녁 아내와 후쿠오카행 비행기를 탑니다. 맛집에서 저녁을 먹고, 이자카야에서 사케를 마신 뒤 수요일 오전 귀국해 출근합니다. 김 씨에겐 서울보다 후쿠오카가 더 가깝습니다.
일본 공무원 이시이 나사(石井奈紗)씨는 지난주 토요일 서울에 와 피부과 진료를 받은 뒤 느린마을 양조장에서 한국 친구와 만나 모듬전을 안주로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6월 한 달간 한일 양국 공항에 양국 국민 전용 입국심사대(패스트트랙)가 설치되면 상호 방문은 더욱 편해질 겁니다.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폭넓고 다양한 민간 교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시 반일?…안팎 우려에 민주당 불식 노력
불안한 건 정치권입니다. 한국 정부는 대체로 국내 지지율이 떨어지면 반일 노선을 보이며 두 나라 관계가 얼어붙는 패턴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보수와 진보 모두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캐스팅보트'로 꼽히는 충남지역의 당진시 당진전통시장에서 열린 유세에서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025.5.25 출처=연합뉴스 |
특히 이번 대선에서 일본에 대한 후보들의 입장이 주요 쟁점으로 떠오른 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과거 언행 때문입니다. 이 후보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 스탠스에 대해 줄곧 '친일 노선'이라며 비판을 이어왔습니다. 이제는 국민의힘이 이 후보에게 '반일·친중'이라며 역공하고 있습니다.
이 후보는 이를 의식해 한미 동맹 강화와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고 있고, 외교 책사들도 우려를 불식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현종 / 이재명 대선 후보 외교안보보좌관 : "현 상황에서 한일은 일본의 (전통적인 앙숙인) 조슈번과 사쓰마번이 (에도 막부 타도를 위해) 협력했던 수준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강경한 반일 기조를 고수했습니다. 외교·안보 분야를 취재하며 이 후보가 당선되면 그때로 돌아가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목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과 일본 관계자는 물론 직간접적으로 목소리를 들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관계자들 가운데 한일 관계가 삐걱거리기를 바라는 의견은 듣기 힘들었습니다.
한미일 관계 핵심은 일본…"2인 3각 경주" 비유도
|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왼쪽부터)이 독일 뮌헨 코메르츠방크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첫 한미일 3국 외교장관회의를 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5.02.16 출처=외교부 |
현재 한국에 일본이 중요한 건 우선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올해 1월 트럼프 2기가 시작된 이후 조태열 외교장관·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은 이미 두 차례 만남을 가졌습니다. 한미일 협력은 외교·안보 뿐만 아니라 경제안보와 첨단기술분야 등으로 확대 심화하고 있습니다.
좌충우돌 트럼프 행정부를 대응하는데 한일 협력이 중요하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재명 캠프에서 외교·안보를 총괄하는 위성락 의원의 얘기입니다.
위성락 / 더불어민주당 의원 : "트럼프 행정부의 움직임은 누가 봐도 비전통적이다. 한미일 협력 프레임은 이에 대응하는 데 유용할 수 있고, 미국도 그 틀에서 이익을 볼 수 있다. 일본과는 어떤 협력도 싫다는 교조적 생각은 지금과 같은 환경에선 불필요하다"
두 나라 경제 상황과 인구 구성, 지리적 위치 등을 고려할 때 협력할 사안이 차고 넘친다는 것이 외교 관계자들의 이구동성입니다. 올해 1월 이와야 일본 외무상이 방한해 현충원을 방문하고, 변함없는 양국 관계를 강조했습니다. 대통령 탄핵으로 한국 외교가 정지된 것처럼 보이던 시기 이와야 외무상의 방한은 대외적으로 큰 힘이 됐습니다. 당시 정부 관계자에게 물었습니다. "일본이 왜 한국을 도와주는 거죠? 한국이 잘되지 않으면 오히려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지 않나요?" 관계자가 답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비유하자면 2인 3각 경주를 같이 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경제를 비롯해 많은 부분이 엮여 있어, 한국이 넘어지면 일본도 적지 않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은 한국의 회복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우문현답이었습니다.
한일 수교 60주년 리셉션, 진정성 인정 계기 될까
6월 3일 대선을 치르면 약 열흘 뒤인 6월 15일 양국 대사관에서 국교 정상화 60주년 기념 리셉션이 열립니다. 양국 정상은 10년 주기로 비슷한 행사에 참석해왔습니다. 2005년에는 국교정상화 40주년을 기념해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한일 우정의해' 개막 행사에 교차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2015년 50주년 때는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상대국 대사관이 주최한 기념 리셉션에 참석했습니다.
외교 관계자는 "이재명 후보가 차기 대통령이 된다면 일본대사관 리셉션에 참석을 긍정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그 이유로 "그동안 일본과 협력하겠다고 해온 말의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진심은 가릴 수 있는 말보다는 행동을 통해 나타나는 법입니다. 이 후보는 외교 관련 질문에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일본 관계에 공을 들였던 윤석열 정부도 '라인 사태'와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등 현안이 터질 때마다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한일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또 외교 마찰은 발생할 겁니다. 그럼에도 당장 판을 깨기 보다 큰 틀에서 흔들림없이 협력을 이어가며 차근차근 어려움을 풀어가는 것이 바로 실용 외교의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겁니다.
p.s) 새 대통령이 '정상화외교100일①' 기사에서 언급한 캐나다 G7 정상회의(6.16~17)에 초청받는다면 시기가 겹쳐 물리적으로 일본대사관 기념 리셉션 참석이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 한일 정상이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성식 기자 mods@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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