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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쿠스틱·바리톤·42현까지... 살아 있는 재즈 전설의 '기타 마술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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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쿠스틱·바리톤·42현까지... 살아 있는 재즈 전설의 '기타 마술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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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5일 서울 GS아트센터서 9년 만에 내한공연
30년의 어쿠스틱 기타 탐구 여정, 두 시간 반 동안 압축해 연주


재즈 기타리스트 팻 메시니. 프라이빗 커브 제공

재즈 기타리스트 팻 메시니. 프라이빗 커브 제공


기타에 미친 기타리스트의 기타 마술 쇼.

24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열린 재즈 기타의 거장 팻 메시니(71)의 콘서트를 조금 과장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듯하다. 9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메시니는 홀로 무대에 올라 2시간 반 동안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42현 등 10대에 이르는 기타를 연주하며 마법 같은 악기의 매력을 펼쳐 보였다.

23~25일 세 차례에 걸쳐 열린 이번 서울 콘서트는 메시니가 미리 녹음한 안내 방송으로 시작했다. 그는 “제 인생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위대한 베이시스트인 찰리 헤이든이 어쿠스틱 기타에 깊이 몰입할 수 있도록 격려해 준 덕분에 어쿠스틱 기타를 일렉트릭 기타를 보완하는 부수적 악기로 여기지 않고 온전히 집중하며 연주할 수 있었다”면서 어쿠스틱 기타와 최근 푹 빠져 있는 바리톤 기타 중심의 공연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최근 공연에서 42현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팻 메시니. 팻 메시니 공식 페이스북

최근 공연에서 42현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팻 메시니. 팻 메시니 공식 페이스북


특유의 부스스한 장발 곱슬머리에 청바지와 티셔츠, 청색 재킷의 편안한 차림으로 무대에 등장한 메시니는 1978년 곡인 ‘페이스 댄스(Phase Dance)’에서 ‘디스 이즈 낫 어메리카(This Is Not America)’로 이어지는 10분간의 긴 메들리를 연주하며 시동을 건 뒤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평소 공연에서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던 그는 이날 시작부터 “말을 많이 할 건데 괜찮겠냐”며 1964년 비틀스 공연을 TV로 보면서 처음 기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부터 최근 자주 연주하는 바리톤 기타에 대한 설명까지 긴 이야기를 건넸다.

팻 메시니 그룹 시절의 곡들로 문을 열었지만 이날 공연은 미리 예고한 것처럼 헤이든과의 만남 이후 최근까지 3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어쿠스틱 기타에 대한 탐구 여정의 보고회라 할 만했다. 수시로 다른 기타를 들었고 같은 기타로 연주하더라도 전혀 다른 색깔로 변화를 줬다. 헤이든과 함께 만들었던 앨범 ‘비욘드 더 미주리 스카이(Beyond the Missouri Sky)’ 수록곡 메들리는 목가적인 어쿠스틱 기타의 따뜻함을 전했다. 어쿠스틱 기타 앨범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원 콰이어트 나이트(One Quiet Night)’ 수록곡 ‘송 포 더 보이스(Son for the Boys)'로는 일반 기타와 베이스 기타의 중간 음역대인 바리톤 기타가 어떻게 다른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증명했다.

50여 개 앨범 중 가장 실험적인 작품인 ‘제로 톨로런스 포 사일런스(Zero Tolerance For Silence)’ 즉흥 연주와 자신의 전매특허인 42현 ‘피카소 기타’ 연주로 실험가적 면모도 드러냈다. 공연 후반부는 커버곡 위주였던 앨범 ‘왓츠 잇 올 어바웃(What’s It All About)’ 수록곡 메들리와 최근의 두 기타 솔로 앨범 ‘드림 박스(Dream Box)’, ‘문다이얼(Moondial)’ 수록곡으로 바리톤 기타의 매력을 전했다. 그는 어릴 적 고향 동네의 한 컨트리 기타리스트에게 들었던 자신만의 바리톤 기타 튜닝법을 설명하기도 했다. 가운데 두 줄을 한 옥타브 올려 “맨 위 두 줄은 비올라, 가운데 두 줄은 바이올린, 맨 아래 두 줄은 첼로처럼 연주”하는 방식이다.


23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공연한 팻 메시니. 프라이빗 커브 제공

23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공연한 팻 메시니. 프라이빗 커브 제공


공연의 마지막 주인공은 장막에 가려 있던 오케스트리온(기계적 장치에 따라 자동으로 연주하는 악기)과 장막에 가려져 있던 기타들이었다. 지난 2010년 오케스트리온 앨범을 내고 내한 공연도 했던 그는 이번엔 소형 오케스트리온과 연주했고, 이후 루프(반복 연주)를 활용해 어쿠스틱 기타 연주에 할로보디 기타(어쿠스틱 기타처럼 통이 비어 있는 일렉트릭 기타) 소리를 얹고 다시 일렉트릭 기타로 층층이 소리를 쌓는 독특한 원맨 밴드 연주로 탄성을 자아냈다. 실험과 탐구를 멈추지 않는 영원한 기타 청년의 명연에 관객들은 연신 기립 박수로 환호했고, 메시니는 손목 통증에도 세 차례 앙코르 연주로 호응한 뒤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무대에서 내려갔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