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7일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젠더폭력 해결 페미니스트 연대 주최로 ‘2025 대선, 여성폭력 해결! 나중은 없다!’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
박현정 | 젠더팀장
‘민주화의 큰누이’ 평화 여정 마치다.
이 문장,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2019년 6월10일 여성운동가이자 민주화운동가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의 별세 소식을 전한 한겨레 기사의 첫 제목이었습니다. 이를 본 동료 기자가 말했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민주화의 큰오라버니’라고 표현하더냐.” 민주화를 ‘남성’으로 설정한 관점뿐 아니라 한 사람의 개인을 가부장적 가족 관계로 표현하는 관행 역시 문제라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이런 의견이 모여 제목은 이렇게 바뀝니다. ‘민주화 큰 어른’ 평화 여정 마치다.
익숙한 표현, 인식과 관행은 ‘구조적 성차별’을 떠받치는 거대한 축입니다. 이런 까닭에 한겨레는 2019년 5월 국내 언론사 처음으로 기사가 반영하는 현실의 성(젠더)차별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젠더 관점’으로 기사를 모니터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젠더데스크직을 만들었습니다. 젠더 관점, 참 어려운 말인데요. 개인들의 다양한 특성을 존중하지 않고 성별(여성과 남성, 성별 이분법에 속하지 않는 다양한 성정체성) 차이에 위계를 부여해 차별하는 구조를 알아차리고 바꾸려는 시선입니다.
현재 한겨레 젠더데스크는 젠더 이슈를 보도하는 젠더팀장이 겸하고 있는데요. 갈 길이 멀지만 한겨레가 성평등 보도를 위해 노력한다는 평가를 받는 건, 내·외부 의견이 젠더데스크를 통해 뉴스룸 책임자인 국장에게 전달되고 기사나 편집 방향에도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각 팀에서도 젠더데스크에게 의견을 묻는 경우가 잦은데요. 그러니까, 이 제도의 핵심은 직을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젠더 관점을 기사에 반영하겠다는 뉴스룸 책임자의 의지와 구성원들의 노력에 있습니다.
이런 변화, 나랏일에선 기대하기 어려운 걸까요? 대한민국 정부판 젠더팀·젠더데스크는 여성가족부와 여가부 장관이긴 합니다. 어쩌다 청소년 보호 업무를 맡게 돼 ‘셧다운제’(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16살 미만 청소년 게임 접속 금지, 2021년 폐지됨)로 악명 높은 여가부입니다만, 실은 국가 성평등 정책을 총괄하기 위해 2001년 태어난 부처(당시 여성부)입니다. 국제사회에 내미는 영문명도 ‘성평등’(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을 강조하고 있죠.
여가부도 정부 정책을 ‘젠더 관점’에서 모니터링하고 대안을 제시합니다. 이를 성별영향평가라고 하는데요. 정책에 무의식적으로 반영된 성별 고정관념이나 성차별 관행을 감지해 개선하는 도구로 국제적으로 널리 활용하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여가부 의견을 다른 부처가 반영할지 말지는 자율에 맡겨져 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2019년 4월 임신중지 여성과 의료진을 처벌하는 형법의 ‘낙태죄’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하자, 정부는 이듬해 10월 법 개정안을 마련합니다. 형법의 ‘낙태죄’ 조항은 그대로 두고 임신중지 허용 범위만 다소 넓히는 내용이었는데요. 당시 여가부는 성별영향평가를 통해 “국제 동향을 고려해 여성의 건강권과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임신한 여성의 신체적·사회적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법무부 등에 통보했지요. 그러나 이런 의견은 법안에 거의 반영되지 않은 채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로 넘어갑니다. 지금까지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하기 위한 법·제도는 마련되지 않았고요.
성평등 정책을 위한 부처와 제도가 있긴 합니다만 가장 핵심인 국정 최고책임자의 의지는 그간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인권 보장과 민주주의 강화뿐 아니라 ‘잘사니즘’을 위한 우선 과제로 성평등을 꼽습니다. 2023년 보고서에서 “노동 참여율과 노동시간 성별 격차를 해소하면 오이시디 국가들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약 0.23%포인트 상승해 2060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은 9.2% 증가할 수 있다”고도 했지요. 대선 주자들에게 ‘구조적 성차별’ 해법을 줄기차게 물어야 할 여러 이유 중 하나입니다.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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