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21일 한 지역에서 열린 ‘청년농업인 모내기 및 새참간담회\' 행사에 참석해 이양기를 타고 있다. 연합뉴스 |
권영란 | ‘지역쓰담’ 대표
무논에 물이 찰랑하다. 망종을 앞두고 조용하던 마을에 사람 그림자가 분주하고 앞들을 가로지르는 상동 아재 트랙터 소리가 제법 요란하다. 근데 웬 선거 차량일까. 트럭 한대가 고갯길을 넘어오더니 동네 한바퀴 하고 돌아나간다. 생강 심던 상동 아지매가 허리 쉼 하다가 툭 던진다. “새파란 거 보이 이재맹이 차네. 말라꼬 여꺼정 왔으꼬.”
6·3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선거운동이 한창이다. 읍내나 면 소재지에서 출퇴근 시간 선거운동을 벌이는데 한 블록을 사이에 두고 다리목에는 빨강, 터미널 근처에서는 파랑이 포진을 하고 있다. 점심이면 파장하는 시골 장터 오일장에도 선거운동원이 짝을 지어 다니고 있다. 기호 1번 이재명을 외치는 운동원들은 어느 때보다 활기차다. 인구 3만4천명 좁은 지역에서는 정치색을 드러내기는 조심스러운 일이다. 까닥하다간 경로당이나 마을 회치(회식)에서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다. 더욱이 한 다리 건너면 사돈의 팔촌까지 두루루 꿰는 이 동네서 빨강이 아닌 파랑, 노랑에 선다는 것은 대놓고 찍히는 일이다. 더러는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래선지 선거 때 파랑이나 노랑의 대열에서 기세를 펼치기란 쉽지가 않다. 내내 적진을 휘젓는 장수의 심정이 돼야 한다.
‘보수꼴통 산청’이라지만 12·3 계엄과 내란 정국에 이곳 정당인과 시민활동가의 연대는 놀라울 정도였다. 반헌법적 내란 우두머리와 초법적 범죄집단들이 공정과 정의를 내세우고 반민주주의 정당이 되레 민주주의를 외치는 희한한 일을 겪으며 모든 일상을 접고 거리로 나왔다. 겨울에서 봄까지 매주 수요일 촛불집회가 열렸고 주말이면 진주·창원·서울 촛불광장으로 달려갔고 “대한민국에서 국민 노릇 하기 참 힘들다”를 수도 없이 내뱉었다. 모두에게 그랬듯이 산청 주민들에게도 주권자로서의 각성과 연대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을 파면하고도 내란 정국은 끝나지 않았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은 아직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 파면 이후에도 오히려 온갖 궤변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지지자들을 들쑤셨다. 며칠 전에는 극우 지지자들과 한 영화관에서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를 관람했단다. 틈만 나면 자신을 정당화하고 세력을 결집하려는 모양새다. 이상한 것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가 여전히 윤석열의 손을 잡은 채 대통령 공약을 내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내란세력임을 인정하는 셈이다.
소멸 고위험 지역에 사는 주민으로 내가 이번 대선에서 눈여겨보는 것은 후보들의 지역 분권 공약이다. 노무현 정부 이후 지역자치와 지역 분권이 의제였지만 지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서울 수도권은 계속 비대해졌고 그곳 말고는 전부 ‘나머지’ 지역으로 전락했다. 이번 21대 대선 여야 후보들은 서울 수도권에 집중된 돈과 권력, 사람을 지역으로 분산 분배하겠다고 내세운다. 각 지역에 필요한 맞춤 공약까지 내밀고 있다. 오랜 정치·경제적 불균형을 깨고 ‘나머지’ 지역을 성장과 회복의 단계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
무엇보다 내란세력을 청산하는 일이 그 첫걸음이겠다. 이번 선거를 통해 반헌법적이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내란세력을 반드시 단죄해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한 말을 빌리자면 6월3일은 압도적인 승리의 날이 아니라 압도적 ‘응징의 날’이 돼야 한다.
6·3 대선을 앞둔 마음이 모내기 앞두고 무논 살피는 상동 아재 심정이다. 올해 농사가 잘돼야 실한 종자를 얻고 내년 농사를 준비하듯이 이번에 대통령을 잘 뽑아야 2026년 지방선거를 바라볼 수 있다. 내가 사는 경남 서부에서는 지방 정부를 바꾸는 일이 지역민의 삶을 바꿔내는 일이다.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일이다. 그 기대가 이번 대선에 달렸다. 6월3일은 모내기 날이다. 모판의 모가 제법 새파랗게 차올랐다. ‘앵길’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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