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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작별과 맞이 [1인칭 책읽기 : 윤후명 작가의 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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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작별과 맞이 [1인칭 책읽기 : 윤후명 작가의 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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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 기자]
윤후명 선생의 소설에서는 호흡을 느낄 수 있다.[사진 | 연합뉴스]

윤후명 선생의 소설에서는 호흡을 느낄 수 있다.[사진 | 연합뉴스]


윤후명 선생을 처음 만난 건, 교과서보다 문예지를 먼저 뒤적이던 고교 여름이었다. 문학캠프가 있던 꽃지해수욕장. 그는 파도를 멀리 두고, 모래밭에 나무로 원을 그리며 "소설도 호흡이 필요해요"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호흡' 대신 '플롯'을 떠올리는 풋내기였지만, 모래 위에 남은 둥근 선은 오래 지워지지 않았다.

몇해 뒤, 서울 혜화동 골목의 허름한 찻집에서 우리는 다시 마주쳤다. 「둔황의 사랑」을 읽은 직후였는데, 나는 서툰 질문으로 "줄거리가 흐릿하다"고 말했다. 작가에게 직접 물어볼 때가 아니면 언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까.

선생은 잔을 흔들며 "줄거리가 흐릿한 게 아니라, 이미지가 선명하다고 말해야지"라며 웃었다. 그 이후에도 몇가지 이야기를 더 해주셨지만 지금은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그날 밤 들었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해 밤을 새웠었다.

세번째 만남은 다시 겨울 문학캠프에서였다. 비발디 파크 스키장이었는데, 나는 윤후명 선생님과 곤돌라에 함께 타게 됐다. 그간 묻지 못한 질문들을 쏟아내고 싶었지만 아무 이야기도 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었기도 했거니와 무언가를 물어볼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2025년 5월 8일, 새벽 뉴스 속보가 휴대전화를 울렸다. "소설가 윤후명 별세." 활자 두 줄은 한 사람의 생을 충분히 전하지 못했다. 부고 기사를 쓰기 위해 수상 연혁과 대표작을 정리했지만, 문단 사이가 휑했다. 그의 소설처럼, 사실을 모아도 공백이 더 크게 느껴졌다.

부고 기사를 쓰는 중에 「하얀 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식쿨 호숫가에서 "안녕하십니까"라는 평범한 인사말이 민족어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선생이 탐색한 '영원성'이란 거창한 신화가 아니라, 일상의 흔한 문장 속에서 번뜩이는 떨림이었다.[※참고: 이 내용은 「하얀 배」의 엔딩 이야기다.]

그의 죽음을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에서 떠오른 것 역시 "안녕하십니까"였다. 작별과 맞이, 두 의미가 겹쳐지는 인사. 기사를 쓰기 위해 데스크에 앉아 있자 꽃지해수욕장의 둥근 원이 생각났다.

바닷바람에 이미 사라졌을 터이지만, 그 자리에 숨은 호흡은 아직 남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처음 만났던 그해 여름과, 오늘사이에 놓인 긴 여백을 헤아렸다. 여백이 크면 클수록, 문장은 더 깊게 호흡한다는 걸 선생은 자신의 삶으로 증명했다.

[사진 | 은행나무 제공]

[사진 | 은행나무 제공]


밤늦게 서가에서 「둔황의 사랑」을 꺼내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시간에 쓸리는 모래 소리인가." 오래전에 들은 파도 소리가 겹쳐 울렸다. 책을 덮으며 나는 속으로 또 한 번 인사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여전히 좁은 궤도를 달리지만, 열차는 간다. 이야기와 호흡, 그 사이의 숨을 다시 들으려 오늘 나는 책장을 연다. 이제는 얼핏 호흡을 알게 된 것 같은데, 이미지로 이야기를 하는 법을 알아차린 것 같은데 이게 맞냐고 물을 수 없다. 삶에도 호흡이 필요한 법이다. 윤후명 작가의 쉼표가 여기에 찍혔다.

이민우 문학전문기자

문학플랫폼 뉴스페이퍼 대표

lmw@news-pap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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