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2030 표심 어디로②
2030 유권자 심층인터뷰 참여자/그래픽=윤선정 |
"너무 절망적이어서 투표하고 싶진 않지만, 한 표를 행사해야 향후 재앙이 닥치더라도 할 말이 있겠죠." (36세 직장인 정성일씨, 이하 가명)
"처음 대통령 뽑을 땐 TV토론도 안 봤는데, 이젠 모르고 뽑으면 나라가 큰일 나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24세 직장인 이수민씨)
2030세대가 변했다. 과거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후보들이 실망스럽단 이유로 투표에 미온적이었던 이들도 비상계엄·대통령 탄핵 사태 등을 겪으며 정치 고관여층, 적극 투표층으로 변모했다.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지난 21~23일 20~30대 남녀 38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2명(미정·투표하기 싫음)을 제외하곤 모두 이번 대선에 투표하겠다고 응답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개한 1차 유권자 의식 조사에서도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응답한 적극 투표층이 20대(18∼29세)에서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3년 전 대선에 비해 8.9%포인트(p) 상승한 75.3%다.
유권자의 약 30%에 달하는 2030세대는 무당층 비중이 높은 데다 때마다 지지 후보를 바꾸는 경향이 높아 선거 때마다 판세를 좌우해왔는데, 이번엔 특히 투표 의향까지 높아 영향이 더욱 크다는 분석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60대 전후는 중도층이라도 표심의 변화와 진폭이 크지 않은 반면 2030세대는 표심의 진폭이 크기 때문에 이번 대선의 막판 변수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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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든 진보든 저성장 불안…퍼주기 말고 성장 이뤄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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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 영등포구 KBS본관 스튜디오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1대 대통령선거 2차 후보자 토론회 시작에 앞서 각 정당 대선후보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김문수 국민의힘, 권영국 민주노동당,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 2025.05.23. /사진=뉴시스 /사진= |
2030세대는 정치성향을 떠나 저성장 시대를 극복할 성장 해법을 내놓는 후보를 뽑겠단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고 절실하단 응답 속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읽혔다.
홍보업체 직원 송지민씨(24·여)는 "우리 세대는 초저성장에 긴축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다. 고성장이 멈춘 타이밍에 태어나서 하향하는 나라를 계속 떠받치는 역할을 하게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라고 했다. 군인 김도훈씨(23)는 "먹고사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 나중에 노후 때도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라며 "경제를 살리는 대통령이 나와서 서민들이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들은 예외 없이 퍼주기식 포퓰리즘적 정책에는 거부감을 보였다. 재무직 회사원 이고운씨(28·여)는 "공짜로 나랏돈 퍼주는 게 아닌, 진정한 국가 성장을 위한 공약을 펼친다면 좋겠다"고 했다. 회사원 정휘락씨(34)는 "포퓰리즘적, 퍼주기식 정책을 남발하고 지킬 수 없는 공약을 내는 후보들이 많은데 그런 후보에겐 투표를 안 할 생각"이라며 "세금으로 운영되는 나라인데 받는 것에 익숙해지면 인기투표가 되지 않겠나"라고 했다.
정책공약을 볼 때도 합리성과 현실성을 따지는 경향을 보였다. 취업준비생 박철호씨(27)는 "이미지 정치를 하는 사람보다 진정성 있고 허리띠를 졸라매 경제성장을 일궈낼 수 있는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 미래를 보고 투자할 가치가 있는 분야에 확실히 밀어줬음 좋겠다"고 했다. 초등교사 정소현씨(26·여)는 "사회현상을 표면적으로 바라보고 보여주기식 해결을 내놓는 후보는 싫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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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치기·혐오, 정치적 이용 말라…반대 진영도 아울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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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대, 대통령에게 바란다 - 복사본/그래픽=이지혜 |
정치권의 성별 '갈라치기' 대상으로 종종 거론됐던 2030세대는 오히려 이 같은 행태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사무직원 김민지씨(31·여)는 "혐오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후보, 특히 여성, 청년, 소수자를 갈라치기하는 사람, 약자에 대한 감수성이 없는 후보자는 절대 뽑고 싶지 않다"고 했다. NGO(비정구기구) 홍보팀 김진경씨(38·여)는 "선악을 떠나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집단을 겨냥해 비판하거나 정책을 내놓는 후보는 뽑고 싶지 않다"고 했다.
도덕성과 전과 여부도 후보를 선택하는 데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설계회사 직원 김형준씨(28)는 "전과 있는 사람이 엄청 싫다. 운동하다가 끌려가서 옥살이 한 거 말고 진짜 전과, 범죄. 그런데 찾아보면 전과 없는 사람이 별로 없더라. 일반인 중에 전과를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이재명의 공약은 마음에 드는데 신뢰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라고 했다.
여야간 극단적 대결과 줄탄핵, 계엄, 사회분열 등을 목격한 직후여서인지 대통령의 덕목으로 '국민통합 의지'가 무엇보다 강조됐다. 사무직 김송이씨(31·여)는 "대통령은 국민통합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며 "대통령이 되기도 전에 사회적 분열을 조장하는 후보는 싫다"고 했다.
광고대행사 직장인 김성철씨(27)는 "지지층만 보지 말고 전체 국민을 봐달라. 조그마한 차이로 이겨도 반대 진영까지 아우르는 대통령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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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탄핵 경험한 2030…김문수·이재명·이준석 지지는 제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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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 '반드시 투표할 것' 응답 추이/그래픽=김지영 |
2030세대는 계엄·탄핵을 겪은 충격과 이에 따른 정치인식의 변화를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다만 청년층의 이런 공통된 경험이 특정 정당·후보에 대한 지지로 귀결되진 않았다. 같은 경험을 했어도 계엄에 찬성한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뽑진 못하겠단 의견과 입법독재를 휘두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행정부까지 장악해선 안 된다는 의견으로 갈렸다.
송지민씨는 "정말 투표하기 싫은데 비상계엄을 이유로 탄핵된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후보를 내기 때문에 그것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투표하려고 한다"며 "김문수 후보만은 안 된다는 생각이다. 저도 정당 말고 공약 보고 사람 뽑고 싶은데 세상이 나를 계속 그렇게 만든다"고 했다.
23일 서울 영등포구 KBS본관 스튜디오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1대 대통령선거 2차 후보자 토론회 시작에 앞서 이재명(왼쪽)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가 악수하고 있다. 2025.05.23. /사진=뉴시스 /사진= |
김성철씨는 "탄핵 당한 대통령이 배출된 당이 이번 대선에서 후보를 내는 것도 납득이 안 되고 탄핵 정국에서도 비상계엄을 옹호한 정당 아닌가. 김문수 후보는 안 뽑을 것 같다"고 했다.
반면 정성일씨는 "계엄은 부당하지만 그렇다고 계엄을 유발한 세력들이 옳지도 않다는 시각이 많다"며 이재명 후보가 대한민국을 통치하면 이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는 예측은 그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만 봐도 충분히 예상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 0.0001%의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서서 죽을지언정 항복하진 않겠다"고 투표를 다짐했다.
대학원생 김민찬씨(26)는 "계엄이 왜 선포됐는지 정치적 상황을 찾아보고 관심이 생기는 사람들이 많아져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철호씨는 "31번의 탄핵과 예산 줄삭감으로 인한 국정마비를 일으킨 당에 좋은 감정을 가질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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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표심의 절대적 기준 아냐…2030, 체념 속 기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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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개혁신당 대통령 후보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단일화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5.22/사진=뉴스1 /사진=(서울=뉴스1) 김민지 기자 |
유일하게 2030세대로부터 40대 이상보다 높은 지지를 받는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남성에게서도 "갈라치기로 지지세를 결집시킨다"(김성철씨)는 등 부정적인 평가가 나온 반면 여성들 사이에서 "도덕성 결함이 없다(정지은씨)" "새로운 청년 대통령 이미지(이수민씨)"라는 긍정적 평가도 나왔다. 반드시 젠더에 따라 후보 지지가 결정되진 않는 셈이다.
차기 대통령에 "중간만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박나리씨) "탄핵 되지 말고 국가를 정상적으로만 운영했으면 좋겠다"(이수민씨) "그냥 별 탈이 없었으면 좋겠다(오현철씨) 등 체념에 가까운 목소리도 많았다.
그러나 기대도 전혀 없진 않았다. 간호사 박아름씨(38·여)는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 식이라도 좋으니 좀 잘해줬으면 좋겠다. '이게 나라냐'는 말 좀 그만 보고 싶다. 싫어도 이게 내 나란데, 여기서 살아야 되는데 제발 잘 좀 하자"고 했다.
박소연 기자 soyunp@mt.co.kr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조성준 기자 develop6@mt.co.kr 이승주 기자 green@mt.co.kr 민수정 기자 crystal@mt.co.kr 박상혁 기자 rafandy@mt.co.kr 오석진 기자 5ston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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