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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콤퓨텍스에 참석한 젠슨 황 엔비디아 CEO. 2025. 5. 21 /로이터=뉴스1 |
"헬로, 타이완!"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9일 아시아 최대 ICT 전시회인 '컴퓨텍스 2025' 개막 전날 기조연설을 위해 뛰어나오며 외친 첫 마디다.
대만계 미국인인 젠슨 황은 이날 영어와 중국어를 섞어 가며 1시간 40분에 걸친 기조 연설을 했는데, 연설 첫 부분에서 중국어로 자신의 부모도 와 있다는 말을 하면서 대만과 친밀한 관계임을 드러냈다.
사실상 오늘날의 엔비디아를 있게 한 건 TSMC 등 대만 반도체 업체다. 엔비디아 창립 초기인 1997년 젠슨 황은 TSMC에 반도체 생산을 요청하는 편지를 썼지만, TSMC가 신생 스타트업인 엔비디아의 생산 주문을 받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모리스 창 TSMC 창업자가 편지를 보고 직접 미국에 있는 젠슨 황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때 시작된 TSMC와 엔비디아의 파트너십은 3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모리스 창은 작년 말 출판된 자서전에서 2013년 젠슨 황에게 TSMC의 CEO를 제안한 일화도 공개했다. 엔비디아와 TSMC의 관계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긴밀하다는 의미다. 엔비디아가 끌고 대만 반도체 업계가 밀어주는 AI 공급망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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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가 끌어주고 대만 반도체 업체가 밀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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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협력업체 명단/사진=대만 인터넷 |
TSMC와의 협력과 AI 열풍을 타고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한 엔비디아는 이제 대만 반도체 업계를 견인하고 있다. 젠슨 황은 'AI 패권'의 핵심이 대만에 있다고 강조하며 TSMC, 폭스콘, 퀀타 컴퓨터, 델타전자, 위스트론, 페가트론 및 대만 정부와 함께 초대형 AI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공언했다.
19일 젠슨 황은 기조 연설을 통해, 개인용 AI 슈퍼컴퓨터 'DGX 스파크'와 반맞춤형 AI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해주는 'NV링크 퓨전'을 선보였다. DGX 스파크는 '그레이스 블랙웰'(Grace Blackwell) 기반 GB10 슈퍼칩과 5세대 텐서 코어를 탑재해 최대 1페타플롭(1초당 1000조번 연산처리)의 AI 연산 성능을 제공한다. 128GB의 통합 메모리를 갖추고 있으며 데스크톱으로 최대 2000억개 매개변수를 가진 AI 모델을 실행할 수 있다.
DGX 스파크에 들어가는 GB10은 엔비디아가 개발한 블랙웰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미디어텍과 공동 개발한 중앙처리장치(CPU)가 결합된 통합 칩셋이다.
젠슨 황이 선보인 DGX 스파크와 NV링크 퓨전보다 대만에서 더 화제가 된 건 젠슨 황 기조연설 때 배경으로 나온 협력업체 명단이다. 올해는 명단이 122개로 늘었는데, TSMC, 폭스콘, 미디어텍, 아수스, 위시트론, 페가트론, 퀀타 컴퓨터, 델타전자, UMC, 기가바이트, MSI, 리얼텍 등 67개 기업과 18개 대학이 포함됐다.
국립대만대학, 국립양명교통대학, 국립대만과기대학, 국립타이베이대학, 국립타이베이과기대학 등 대만의 상위권 대학을 총망라한 명단을 보면 엔비디아가 대만 반도체 산업뿐 아니라 반도체 인재 양성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컴퓨텍스 2025에서 젠슨 황은 릭 차이 미디어텍 CEO, 영 리우 폭스콘 CEO의 기조 연설 무대에도 깜짝 등장하며 대만 업체와의 끈끈한 협력 관계를 드러냈다. 컴퓨텍스 2025가 젠슨 황의 독무대가 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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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시총 상위 15대 기업 중 반도체·전자기업이 8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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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가 AI 열풍을 타고 마이크로소프트와 글로벌 시총 1, 2위를 다투는 기업으로 성장하는 동안, 대만 반도체·전자업체도 엔비디아 열풍을 타고 급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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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상장기업 시총 15위 안에 진입한 반도체·전자업체/그래픽=이지혜 |
대만 상장기업 시총의 절반 이상을 반도체와 전자업종이 차지하고 있으며 상장기업 시총 상위 15대 기업 중 8곳이 반도체·전자업체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 TSMC가 시총 1조달러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고 2, 3, 5위는 폭스콘(712억달러), 미디어텍(708억달러), 퀀타 컴퓨터(343억달러)가 차지했다.
2위 폭스콘은 애플의 최대 위탁생산업체로 알려졌지만, 엔비디아의 AI 서버를 생산하면서 기업가치가 부쩍 성장했다. 이번 컴퓨텍스에서도 젠슨 황은 폭스콘 전시관에서 가장 오래 머물었으며 폭스콘은 자사의 AI 팩토리 기술을 글로벌 산업 표준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3위를 차지한 팹리스 업체 미디어텍은 작년 4분기 글로벌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에서 점유율 34%로 1위를 차지했다. 2~4위는 애플(23%), 퀄컴(21%), 중국 유니속(14%)순이다. 미디어텍은 DGX 스파크에 탑재되는 CPU를 설계했으며 엔비디아와 PC용 CPU도 공동 개발하고 있다.
5위 퀀타 컴퓨터도 데이터 서버에 들어갈 AI 서버 주문이 급증하며 매출이 급증했다.
7, 10, 12, 15위는 델타전자(317억달러), ASE그룹(215억달러), UMC(197억달러), 아수스(156억달러)순이다.
7위 델타전자는 산업용 및 컴퓨터용 전원공급 장치를 생산하며 10위 ASE그룹은 세계 1위 반도체 후공정(OSAT) 기업이다. 12위 UMC는 세계 4위 파운드리업체이며 15위를 차지한 아수스도 젠슨 황이 주요 협력업체로 언급하는 등 모두 엔비디아와의 협력 관계를 가지고 있다.
지난 20일 취임 1년을 맞은 라이칭더 대만 총통이 이날 컴퓨텍스 개막 축사에서 AI에서 대만은 필수불가결한 존재라며 "AI 세계에서 대만이 중심이 되길 바란다"며 말하는 등 대만은 민관일체로 AI에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다.
엔비디아와 대만 반도체·전자 업계의 AI 드림을 잘 보여준 장면은 폭스콘의 키노트다. 영 리우 폭스콘 CEO가 젠슨 황을 '리더 오브 팀 타이완'(Leader of Team Taiwan)이라고 소개하자, 젠슨 황은 "고, 팀 타이완!"(Go, Team Taiwan!)이라고 화답했다.
우리가 얕보던 대만이 AI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동안 한국은 고대역폭메모리(HBM) 납품국에 그치고 있다. 한국이 더이상 AI 혁명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김재현 전문위원 zorba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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