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하버드대 유학생 막는 트럼프, 재학생은 전학 위기

조선일보 뉴욕=윤주헌 특파원
원문보기

하버드대 유학생 막는 트럼프, 재학생은 전학 위기

속보
北, 공병 및 폭발물 제거요원 수천명 러 파견…RIA 노보스티 통신
외국인 학생 받을 자격 박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22일 하버드 대학교가 더 이상 유학생을 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현재 재학 중인 학생에 대해서는 "전학을 가야 한다"고 했다./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22일 하버드 대학교가 더 이상 유학생을 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현재 재학 중인 학생에 대해서는 "전학을 가야 한다"고 했다./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최고 명문대인 하버드대와 대립해 온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하버드대의 외국 유학생 등록 자격을 박탈한다고 22일 밝혔다. 그러면서 “다음 학기 유학생을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재학 중인 유학생도 (미국 체류) 신분을 유지하려면 다른 학교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대학가의 진보 색채를 문제 삼는 트럼프에게 강하게 반발하는 하버드대를 겨냥해 초강수를 둔 것이다. 하버드대 유학생 사회는 큰 혼란에 빠졌다. 하버드대 홈페이지에 따르면 현재 하버드대 유학생은 약 150국 출신 1만여 명이고, 한국인도 434명 재학 중으로 알려졌다. 하버드대는 이 소식이 알려진 지 24시간이 채 되지 않은 23일 오전, 행정부의 조치를 막기 위한 소송을 냈다.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은 이날 하버드대에 보낸 서한에서 “하버드대의 학생 및 교환 방문자 프로그램(SEVP) 인증을 취소하며 이 조치는 즉시 발효된다”고 밝혔다. 미 대학은 정부의 SEVP 인증을 근거로, 외국 학생들이 비자를 받는 데 꼭 필요한 ‘유학생 자격증명서(I-20)’를 발급해 준다. SEVP 인증이 취소되면 결과적으로 외국인 유학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이미 하버드대에 다니는 유학생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국토안보부는 보도자료에서 “기존 외국인 학생들은 전학 가지 않으면 합법적 지위를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언제까지 전학을 가라는지 명시하지 않았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정책대학원) 한국 동아리 공동회장 전병규씨는 “모두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며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한국 유학생 A씨는 “체류 자격 상태를 관리·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SEVIS)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확인부터 했다”고 말했다. 한국 유학생들은 현재 학교 이메일 등을 백업하는 방법을 공유할 정도로, 언제 학교 시스템에 접근하기 어려워질지까지 걱정하고 있다. 유학생 칼 몰든씨는 하버드대 학생 신문 하버드크림슨에 “전학하려면 학교를 다시 찾아야 하고 지금까지 사귄 친구를 잃게 된다”면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하버드대는 즉각 소송을 제기했다. 하버드대는 72페이지에 달하는 소장에서 “국토안보부가 절차나 정당한 사유 없이 정치적 동기가 부여된 보복 행위를 했다”며 “불법적이고 부당한 행위를 규탄한다”고 했다. 소장에 “정부는 펜 한 자루로 하버드 학생의 4분의 1을 없애려 했다”라고도 썼다. 하버드대는 학생 비자 취소 등 정부의 조치 이행을 막아달라는 가처분 소송도 조만간 제기할 예정이다.

미 국토안보부가 하버드대 외국인 유학생에 대해 등록 금지 처분을 발표한 22일 하버드대 학생과 교직원들이 미 매사추세츠주 캠퍼스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한 집회 참가자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항의하는 의미로‘저항하라(Resist)’라고 적은 깃발을 들었다. /AP 연합뉴스

미 국토안보부가 하버드대 외국인 유학생에 대해 등록 금지 처분을 발표한 22일 하버드대 학생과 교직원들이 미 매사추세츠주 캠퍼스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한 집회 참가자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항의하는 의미로‘저항하라(Resist)’라고 적은 깃발을 들었다. /AP 연합뉴스


미 국토부가 이번에 하버드대의 SEVP 인증을 취소한 명분은 ‘자료 불충분’이었다. 놈 장관은 “학교 측이 행정부가 요구하는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면서 “하버드대가 다시 인증을 받고 싶으면 요청한 기록을 72시간 내에 제출하라”고 했다. 놈 장관은 지난달 하버드대에 “유학생들의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활동에 대한 상세 기록을 4월 30일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학교 측은 일부 정보를 제공했지만 정부는 만족하지 않았다. 놈 장관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이 조치는 다른 모든 대학에도 정신을 차리라는 경고”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조치는 지난달부터 이어져 온 하버드대에 대한 공격의 연장선상에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하버드대가 연방 보조금을 받으려면 반(反)이스라엘 성향 학생의 입학을 막기 위해 유학생 제도를 재편하라는 등 10개 요구 사항을 내밀며 개혁을 요구했다. 하지만 하버드대는 “사립학교의 권리를 침해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트럼프 행정부는 지금까지 약 27억달러(약 3조7000억원)의 연방 지원금 지원을 취소하고, 하버드대의 ‘세금 면제 지위’ 박탈을 국세청에 요청하며 전방위 공격에 나섰다.


그래픽=이철원

그래픽=이철원


이번 조치는 하버드대의 재정을 압박하려는 의도도 있다. 하버드대에 따르면 2024~2025학년도 기준, 전체 학생의 약 27%에 해당하는 1만여 명의 유학생이 재학 중이다. 하버드대 학생의 연간 등록금은 기숙사비와 식비를 포함해 약 8만7000달러(약 1억2000만원)다. 뉴욕타임스는 “행정부의 이번 결정은 하버드대 재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하버드대와 중국의 관계 단절을 유도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엘리스 스터파닉 공화당 지도부 의장은 “하버드대가 국방부 자금을 이용해, 잠재적으로 군사적 용도가 있는 연구를 위해 중국에 기반을 둔 학자들과 협력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의회가 하버드대와 중국 정부의 연계 문제를 공식 조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날 놈 장관도 X에 글을 올려 “정부는 하버드대가 캠퍼스 내 폭력과 반이스라엘주의를 조장하고 중국 공산당과 협력한 일에 책임을 묻는다”고 했다. 하버드대의 중국인 유학생은 약 2100명에 달한다.

☞I-20(유학생 자격증명서)

미국 학생 비자를 신청할 때 필요한 공식 문서로 미국 학교의 입학 허가를 받은 국제 학생에게 발급된다. 미국 대학에 합격하면 비교적 쉽게 발급되나 중도에 학업을 중단하거나 자퇴할 경우 즉시 무효가 된다. 미 국토안보부의 ‘학생 및 교환 방문자 프로그램(SEVP)’에서 인증된 학교에서 발급한다.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뉴스레터 구독하기

[뉴욕=윤주헌 특파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