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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야구를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할까도 생각할 수 있었다. 염경엽 LG 감독은 과거를 떠올리면서 실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제안도 많았다. 하지만 결국은 야구를 놓지 않았다. 경기에 나가지 못한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대신 선수 생활 말년부터 지도자 준비를 시작했다. 경기에 나가지 못하는 날은 더그아웃에 노트를 폈다. 상대 투수의 버릇, 주자들의 버릇을 빼곡하게 적기 시작했다. 훗날 완성되고 아직도 수정 중인 염 감독의 매뉴얼은 그 절박함에서 시작됐다.
1991년 태평양에서 1군에 데뷔, 2000년 마지막 1군 시즌을 보낼 때까지 KBO리그 통산 896경기에 뛴 염 감독은 그 후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운영팀장 시절에는 선수들에게 줄 메리트 현금을 직접 봉투에 넣으면서 선수단 운영이 쉽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코치 시절에는 지도자가 선수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고, 현역 경력이 특별하지 않은 자신이 설득력 있는 지도자가 되기 위해 얼마나 더 공부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수비와 주루 분야에서는 리그 그 어떤 지도자보다 더 잘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3년 시즌을 앞두고 넥센 히어로즈의 지휘봉을 잡으면서 최정점에 올랐다. 그리고 창단 직후 하위권을 전전하던 팀을 상위권, 그리고 한국시리즈에 가는 팀으로 만드는 등 리그를 대표하는 소장파 감독으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선수로서는 스타가 아니었지만, 지도자로서는 나름 승승장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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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단장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고, 2019년 시즌을 앞두고 SK 감독직에 올랐다. 넥센 시절과 달리 완성된 팀이었다. 단장으로 일하며 만든 팀이기도 했다. 속사정을 훤히 알았다. 자신이 있었다. 성적도 좋았다. 그러나 2019년 시즌 막판 뭔가에 홀린 듯 KBO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대역전극을 헌납하며 두산에 1위 자리를 내줬다. 포스트시즌에서는 플레이오프에서 전 소속팀인 키움에 완패하며 그대로 퇴장했다. 염 감독 인생의 최대 시련이었다. 2020년은 시즌 초반 성적이 좋지 않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끝내 경기 중 쓰러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건강상 문제로 하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염 감독은 오히려 야인으로 지냈던 시절이 소중했다고 말한다. 방송사 해설위원으로 일하면서 한걸음 떨어져 야구를 볼 수 있었다. 그간 보이지 않았던 것, 놓치고 있었던 것이 보였다고 했다. 매 경기마다 스트레스에 쩔어 있었던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다. 건강도 회복했다. 염 감독은 해설위원으로 일하던 당시 “내가 교만했다”고 통렬하게 반성했다. 계속된 성공에 도취해 자신이 잘못된 길로 가는지, 그리고 주위 사람들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를 몰랐다고 털어놨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을 교훈으로 삼아 진짜 최선을 다해보겠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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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염 감독은 23일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SSG와 경기에서 3-2로 이기고 개인 통산 600승을 달성했다. KBO리그 역대 12번째다. 600승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 리그 역사상 단 12명이고, 여기에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훈장까지 가지고 있으니 이제는 명장이라고 인정해도 큰 이견은 없을 것이다. 다만 경기 후 염 감독은 600승을 자축하기보다는 묵묵하게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자만하고 교만하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교훈은 아직 가슴 속에 가지고 있다. 잊지 않는다면, 700승과 800승으로 가는 다리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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