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물 1700만리터가 춤추는 무대… 마음까지 ‘풍덩’ 빠졌다

조선일보 마카오=황지윤 기자
원문보기

물 1700만리터가 춤추는 무대… 마음까지 ‘풍덩’ 빠졌다

서울맑음 / 22.0 °
[아무튼, 주말]
해가 없어도, 비가 와도 좋아
마카오에서 실내 여행
마카오를 대표하는 공연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의 초반부. 난파당해 바다에 가라앉는 배의 일부를 표현했다. /멜코리조트앤드엔터테인먼트

마카오를 대표하는 공연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의 초반부. 난파당해 바다에 가라앉는 배의 일부를 표현했다. /멜코리조트앤드엔터테인먼트


마카오에 머무는 2박 3일 동안 해를 보지 못했다. 구름 낀 회백색 하늘에선 종일 흩뿌리듯 비가 내렸다. 한낮 최고기온은 28~29도 안팎. 우기(5~9월)가 시작된 마카오는 갓 예열을 시작한 습식 사우나 같았다.

그러나 날씨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카오 국제공항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코타이 지역에서는 솔직히 말해 야외 활동을 즐길 틈이 없다. 카지노를 포함한 화려한 5성급 리조트가 즐비하다. 거대한 쇼핑몰을 따라 걸으며 보고, 먹고, 사다 보면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는 ‘타임 워프(time warp)’가 일어난다.

비슷한 풍경이 지겨울 때쯤, 각 호텔의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다른 리조트로 건너가 보자. ‘베네티안 리조트’ ‘스튜디오 시티’ ‘그랜드 리스보아 팰리스’ 등.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다시 한번 타임 워프. 시간이 쏜살같이 사라진다. 마카오가 선사하는 마법이다.

◇예술품이 발에 채는 리조트

마카오 코타이 지역에서 현대적이고 세련된 리조트를 꼽으라면 2009년 문을 연 ‘시티 오브 드림스(COD)’를 들 수 있다. 멜코 리조트 앤 엔터테인먼트(멜코)가 개발한 복합 엔터테인먼트 리조트다. 네 개의 5성급 호텔이 실내에서 통한다.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1950~2016)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설계한 ‘모르페우스’, 포브스 파이브 스타 호텔 앤 스파 어워드 수상작인 ‘누와’를 비롯해 ‘그랜드 하얏트 마카오’, ‘더 카운트다운’ 등 취향에 따라 고르면 된다.

마카오 코타이의 ‘시티 오브 드림스(COD)’ 외경. /멜코리조트앤엔터테인먼트

마카오 코타이의 ‘시티 오브 드림스(COD)’ 외경. /멜코리조트앤엔터테인먼트


COD에서는 발에 채는 것이 예술 작품이다. 일본 팝아트 거장 무라카미 다카시의 상징인 꽃 그림이 20m쯤 돼 보이는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어느 통로의 천장엔 직사각형의 플렉시 글라스(유리보다 투명하고 강한 플라스틱 소재)가 빼곡하게 매달려 있다. 빛과 그림자가 일렁이는 모습에 걸음을 멈췄다. 목을 꺾어 한참 천장을 바라봤다. 키네틱 아트의 선구자로 꼽히는 아르헨티나 예술가 훌리오 르 파르크의 작품이다. 이 밖에 영국 팝 아티스트 미스터 두들, 미국 팝 아티스트 카우스(KAWS) 등의 작품도 보유하고 있다.

일본 팝아트 거장 무라카미 다카시의 상징인 꽃 그림이 COD 내 벽면을 가득 채웠다. /멜코리조트앤엔터테인먼트

일본 팝아트 거장 무라카미 다카시의 상징인 꽃 그림이 COD 내 벽면을 가득 채웠다. /멜코리조트앤엔터테인먼트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모르페우스’ 호텔 로비. 웅장한 천장 구조물이 시선을 압도한다. /멜코리조트앤드엔터테인먼트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모르페우스’ 호텔 로비. 웅장한 천장 구조물이 시선을 압도한다. /멜코리조트앤드엔터테인먼트


압권은 ‘모르페우스’ 호텔. 자하 하디드의 유작이다. 그물처럼 보이는 외부 철골 구조물이 40층 건물을 잡아당기는 모양새다. 로비에서 내부를 올려보거나 바깥에서 본 외경 모두 압도적이다. 호텔 안팎을 두루 볼 수 있는 모르페우스 명물 ‘파노라마 엘리베이터’를 타면 SF 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든다. 주의할 점은 호텔 투숙객·식당 예약자만 이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는 것. 모르페우스에서 투숙하지 않는다면 프렌치 레스토랑 ‘알랭 뒤카스 앳 모르페우스’, 중식 레스토랑 ‘이’ 등을 예약하고 ‘엘리베이터 뷰’를 즐기는 것도 좋겠다.


카지노 때문에 걱정하는 가족 여행객들도 있을 터. 기자가 발품을 팔아 각 리조트 카지노를 누빈(?) 결과, COD의 카지노는 타 리조트에 비해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였다. 환하고 깔끔했다. 시끌벅적한 유흥을 원하는 이들에겐 마이너스일 테지만, 어린아이와 함께하는 가족 여행객에게는 이 점이 오히려 매력 포인트일 듯.

영국 팝 아티스트 미스터 두들의 작품. /멜코리조트앤드엔터테인먼트

영국 팝 아티스트 미스터 두들의 작품. /멜코리조트앤드엔터테인먼트


◇물이 춤춘다, 격렬하게

여기까진 예고편에 불과하다. COD의 백미는 단연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House of Dancing Water·水舞間)’다. 미국 최대 카지노 도시 라스베이거스의 대표 공연이 ‘태양의 서커스’라면,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는 마카오를 대표하는 공연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 안무가 줄리아노 페파리니가 총연출을 맡았고, 30국에서 모인 약 300명의 출연자와 스태프가 참여했다. 4011억원 이상을 투자했다고 한다. 2010년 9월 첫 공연 이후 약 4000회 공연을 선보였다.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2020년 초 중단됐다가 이달 새롭게 재개장했다.

지난 7일 오후 6시 COD 1층 공연장.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 공식 프리미어 행사를 위해 아시아 전역에서 초대받은 기자와 셀럽들이 몰렸다. 한국 가수 비, 중국 배우 서기 등 유명 인사들도 공연을 보러 왔다. 개막 한 시간 전 공연장 앞 홀에서 열린 칵테일 파티에선 드레스와 정장을 입은 이들이 경쾌하게 와인잔을 부딪혔다.


악당에게 포박된 여성 등장인물. 남자 주인공은 이 여성을 구하기 위해 공연 내내 고군분투한다. /멜코리조트앤드엔터테인먼트

악당에게 포박된 여성 등장인물. 남자 주인공은 이 여성을 구하기 위해 공연 내내 고군분투한다. /멜코리조트앤드엔터테인먼트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 공연 중 비가 쏟아지는 장면. /멜코리조트앤엔터테인먼트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 공연 중 비가 쏟아지는 장면. /멜코리조트앤엔터테인먼트


270도 원형극장 형태의 공연장에서는 말 그대로 물이 춤을 춘다. 무대 아래엔 올림픽 규모 수영장 5개와 맞먹는 1700만리터의 물이 담긴 수조가 있다. 수심은 8m에 달한다. 배우들은 무대에 발을 딛고 서는 대신 헤엄칠 때가 잦다. 무대는 물이었다가 땅이었다가 ‘물 반 땅 반’ 등 자유롭게 형태를 바꾼다. 무대가 물인 점이 연출가에게는 해방구다. 무대에 조각배를 띄웠다가, 어느 순간엔 여러 배우가 무대를 단단히 딛고 서서 군무를 춘다. 공중제비를 돌던 배우가 수직 낙하할 땐 물이 객석까지 튄다. 객석 앞줄은 공연장 측에서 우비를 제공한다.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는 최소한의 서사를 갖추고 있다. 난파당한 남자 주인공이 이 세계 저 세계 탐험하며 악당에 의해 포박된 연인을 구출하기 위해 애쓴다. 보스급인 여성 악당이 있고, 그의 하수인으로 추정되는 깐죽대는 신하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종종 관객을 웃긴다. 1시간 반 동안 권선징악 결말을 향해 달려가지만 지겹지 않은 점이 놀랍다. 서커스적인 볼거리로 공연을 가득 채웠기 때문.

공연 중 오토바이가 공중에서 360도 회전하자 객석에서 ‘와’ 하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멜코리조트앤드엔터테인먼트

공연 중 오토바이가 공중에서 360도 회전하자 객석에서 ‘와’ 하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멜코리조트앤드엔터테인먼트


오토바이 예닐곱 대가 요란한 배기음을 내며 공중에서 곡예를 펼칠 땐 입이 쩍 벌어진다. 조그마한 상자 안에서 구겨져 있던 비쩍 마른 사람이 튀어나와 놀라운 유연함을 자랑하기도 한다. 객석에선 탄성이 쏟아진다. 이쯤 되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서사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티켓 가격은 689~1598MOP(마카오 파타카). 약 11만9000~27만2000원.


◇마카오의 밤은 길다

공연이 끝났다고 호텔방으로 곧장 돌아가면 당신은 바보다. 마카오의 밤은 길고 화려하다. 이날 프리미어 공연 이후엔 그랜드 하얏트 호텔 야외에서 화려한 애프터 파티가 열렸다. 네덜란드 출신 유명 DJ 아프로잭(Afrojack)의 디제잉에 샴페인 잔을 든 이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에 출연한 배우들도 삼삼오오 애프터 파티에 모였다.

공연 후 애프터 파티 현장. 아프로잭(Afrojack)의 디제잉에 화려한 조명을 곁들이자 마카오의 밤이 뜨거워졌다. /멜코리조트앤드엔터테인먼트

공연 후 애프터 파티 현장. 아프로잭(Afrojack)의 디제잉에 화려한 조명을 곁들이자 마카오의 밤이 뜨거워졌다. /멜코리조트앤드엔터테인먼트


이날의 DJ 아프로잭. 음악이 고조될 때 그가 손을 치켜 들자 화면에서 화염이 화면에서 일렁였다. /멜코리조트앤엔터테인먼트

이날의 DJ 아프로잭. 음악이 고조될 때 그가 손을 치켜 들자 화면에서 화염이 화면에서 일렁였다. /멜코리조트앤엔터테인먼트


자정에 가까운 시각, 파티가 끝물에 이를 때쯤 누군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애프터 애프터 파티 있는 거 알아?” 공식 애프터 파티 이후 다소 비밀스럽게 ‘애프터 애프터 파티’가 이어졌다. COD 호텔 중 하나인 ‘그랜드 하얏트 마카오’ 3층에 조신하게 숨어 있는 클럽 ‘파라’에서. 대관 행사가 없는 날에는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클럽이다. 마카오 리조트에서 머무는 동안 클럽 구경을 하고 싶다면 멀리 나갈 필요가 없다. 클럽도 리조트 안에서 해결이 가능하다니, 얼마나 편리한가?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 관람 후 배우들의 에너지에 몸이 근질거린다면, 댄스 플로어에 발을 올려 보자. 어떻게 발산하든 자유다.

다음 날 아침, 언제 찍었는지 모를 ‘파라’ 클럽 내부 사진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별천지는 뭐야…?” 번쩍거리는 조명과 쿵쾅이는 음악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약간의 숙취와 함께. 마카오, 적어도 코타이 지역에선 해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반짝이는 것들은 모두 실내에 있다.

[마카오=황지윤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