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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워싱턴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직원 사라 밀그림, 야론 리신스키의 모습. 주미 이스라엘 대사관 제공. AP연합뉴스 |
미국 워싱턴에서 피격당해 숨진 이스라엘 대사관 직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자지구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돕기 위해 팔레스타인과 가교를 만들자는 행사에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숨진 이스라엘 대사관 직원 사라 밀그림(26)과 야론 리신스키(30)는 21일 밤 9시8분께 워싱턴 디시의 캐피털 유대인 박물관 행사장을 나가다가 엘리아스 로드리게스(31)가 쏜 총에 맞아 숨졌다. 23일 외신은 용의자 로드리게스가 23일 1급 살인혐의로 기소됐다고 보도했다. 로드리게스는 당국에 “가자를 위해, 팔레스타인을 위해 그랬다”고 진술했다고 에이피(AP)통신은 전했다. 진 피로 연방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아직 확정을 말하긴 이르지만, 사형 선고가 가능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당국은 이번 사건을 반유대주의에 기반한 증오범죄로 보고 수사 중이며, 추가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관련 기사 보기 : 이스라엘 대사관 직원 2명, 워싱턴서 피살…용의자 “팔레스타인 해방”)
총격 희생자들이 참석했던 이날 행사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가자지구 주민을 돕기 위한 연대 방안을 논의하던 자리였다. “가자지구와 같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역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종교 단체들이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지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였다”고 시엔엔(CNN)은 전했다. 행사 주최자 조조 칼린은 비비시(BBC)와의 인터뷰에서 “다리를 놓자는 논의를 하던 자리에서 증오 공격을 당했다는 사실이 너무도 아이러니하다”고 밝혔다.
특히 밀그림의 경우 대사관에서 환경 분야와 행사 조직을 담당했으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협의 하에 수자원 문제를 해결하자는 행사를 기획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년 반 전 대사관에 들어와 일하다, 대사관 소속 연구원인 리신스키와 만나 연인이 되었다. 기후변화 대응 비영리단체인 미즈라히 가족 기금 공동설립자인 제니퍼 라즈로 미즈라히는 “그는 항상 (연대의) 다리를 놓는 사람이었다”며 “에너지와 낙관으로 가득한 인물이었다”고 회고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밀그림이 대사관 입사 전 1년여간 이스라엘을 방문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젊은이 간 협력을 도모하는 단체인 ‘테크투피스(Tech2Peace)’에서 활동했었다고 보도했다. 밀그림의 아버지는 뉴욕타임스에 “딸과 리신스키는 모두 중동 평화와 이스라엘의 안정,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처지에 대해 깊이 고민해왔다”며 “딸은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하다가 삶을 끝내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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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디시에서 발생한 이스라엘 대사관 직원 총격 사건의 용의자인 로드리게즈의 집 창가에 ‘와데아를 위한 정의’라고 쓰인 포스터가 붙어 있다.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소년인 와데아 알 파유메는 2023년 10월14일 일리노이주 자신의 집에서 증오 범죄자에게 26차례 칼에 찔려 살해당했다. 살해범은 살인 및 증오범죄로 기소되어 5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AP연합뉴스 |
한편 용의자 엘리아스 로드리게스는 평소 친팔레스타인 운동에 깊이 공감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시카고에 사는 용의자의 집 창문에는 2023년 미국 시카고에서 증오범죄로 살해당한 팔레스타인계 6살 어린이 사진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총격 발생 한시간 뒤 로드리게스의 것으로 추정되는 엑스(X·구 트위터) 계정에는 “가자지구 확전, 전쟁을 끝내자”는 제목으로 이스라엘의 “대량 학살”을 비난하는 글이 올라와 진위 여부를 확인 중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익명을 요구한 수사기관 관계자를 인용해, 로드리게스가 일하는 한 의학 관련 협회 일정상 워싱턴 출장 중이었으며 시카고에서 워싱턴으로 이동하는 비행기를 탈 때 총을 위탁 수하물로 부친 기록이 있다고 보도했다. 미 연방수사국 고소장에 따르면 그는 밀그림과 리신스키에게 여러 차례 총을 쏜 뒤, 밀그림이 움직이자 다시 총격을 가했다. 이후 총을 버리고 박물관에 들어가 팔레스타인을 상징하는 ‘케피예 스카프’를 꺼내고 “내가 했다”고 선언하며 체포됐다. 로이터는 이번 사건이 가자전쟁과 관련해 이스라엘 지지자와 친팔레스타인 시위대 간의 갈등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짚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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