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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위에 세워진 우리의 안온한 일상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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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위에 세워진 우리의 안온한 일상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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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나라에서 행복한 사람들 l 정회옥 지음, 위즈덤하우스, 1만8000원

차별의 나라에서 행복한 사람들 l 정회옥 지음, 위즈덤하우스, 1만8000원


“차별에는 차별받는 사람들과 그 차별로 이득을 취하는 자들이 함께 존재한다. 그 이득은 사회구조적으로 뒷받침된다.”



차별·혐오·인권 문제를 천착해온 정치학자 정회옥이 신간에서 말하는 핵심 메시지다. ‘차별의 나라에서 행복한 사람들’은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편리와 평온함이 얼마나 차별적인 구조 위에 세워졌는지를 누구나 직간접으로 경험하는 사례들로 분석한 책이다.



지은이는 ‘차별하지 말자’는 도덕적·당위적 계몽을 하진 않는다. 대신 한국인의 과거와 현재의 달라진 경제적·계급적 위상을 대조해 보여준다. 역사의 거울에 비춰본 오늘날 한국인의 모습은 시공간을 달리하는 두 얼굴의 자화상 같다. 지은이가 선별한 거울은 돌봄, 이주노동자, 학살, 사회정화, 낙인, 여성혐오 등 여섯 가지다.



우리 사회에서 차별은 노골적이기도 하지만 교묘히 은폐된 경우도 많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다수자에 속했다는 이유로 사회와 제도가 가져다주는 차별 이익 수혜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이유다. 주로 조선족 동포 여성이 열악한 환경에서 도맡는 돌봄 노동은 내국인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에 밑거름 구실을 한다. 이는 1960년대 서독에 간호사로 간 한국 간호인력이 겪은 고생과 모멸이 독일 경제성장을 도왔던 과거와 꼭 닮았다. 과거 인력 수출국이던 한국이 오늘날 노동력 수입국이 된 이주노동도 마찬가지다.



1931년 만주 지역에서 중국인과 조선인 농민의 충돌 사건이 가짜뉴스와 유언비어로 악화하면서, 한반도 내 중국 화교 800여명이 학살되거나 다쳤다. 이는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때 유언비어로 재일 조선인 수천 명이 무참히 학살당한 사건과 판박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와 중세 유럽의 마녀 사냥도 사회·경제적 위기감 속에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손쉬운 희생양이 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 1960년대까지도 ‘한센병(이 아닌) 환자’를 절멸하려 했던 우리의 인권 유린 정책과 20세기 말 미국에서 에이즈 환자를 ‘신의 징벌’로 보고 성 소수자를 싸잡아 혐오·배척한 사례는 어떤가?



반세기 전까지 우리가 약소국 국민으로 겪었던 차별과 멸시의 설움을 세계 8위 경제 대국이 된 오늘날 다른 약소국 국민이나 사회적 약자들에게 똑같이 떠넘기는 현실은 낯부끄럽다. 지은이는 책의 말미에서 “새로운 시대를 반영하는 교육헌장의 제정”을 제안한다. 젊은 세대에게 차별받는 사람들과 이들로 인해 혜택을 입는 사람들이 구조적으로 존재함을 알리고, 서로의 권리가 균형 있게 존중받아야 함을 교육”하자는 것이다. 외국의 선례도 있다. 2013년 프랑스는 사회적 소수자 집단인 이민자들에 대한 빈번한 폭력 사태를 예방하려 ‘라이시테 헌장’을 제정했다.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모든 학교에 이 헌장을 부착하게 했다. 종교 중립적, 민주적, 시민적 가치에 대한 ‘시민 교육’을 강화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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