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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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렉 포포비치(중앙)가 전설적인 농구 선수 마누 지노빌리(왼쪽)과 팀 던컨(오른쪽)과 함께 신임 감독 취임을 축하하며 자신은 이제 감독이 아니라 엘 헤페(보스)라고 선언했다./김교석 |
자기만의 마음속 영웅이 있다면 마음 밖으로 꺼내보는 것은 어떨까. 한국 시간으로 지난 5월 3일, 치열한 공방이 한창이던 골든스테이트와 휴스턴의 NBA 플레이오프 6차전을 앞두고 기자회견장에 양 팀 감독이 같은 티셔츠를 입고 나와 화제가 됐다.
1996년부터 올해까지 NBA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감독을 역임한 그레그 포퍼비치의 제자였던 두 감독은 그의 은퇴 소식을 듣고 ‘전쟁’ 중임에도 함께 티셔츠를 맞춰 입고서 존경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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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투표하세요, 당신의 삶이 달려있습니다'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포포비치 감독의 모습./김교석 |
공군사관학교 출신다운 강력한 규율, 괴팍한 유머로도 유명한 포퍼비치는 47살에 스퍼스 감독 자리에 오른 이후 한 팀에서만 역대 감독 최다 승수 1위, 22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5개의 챔피언 반지, 올림픽 금메달, 팀 덩컨과 함께한 19시즌 동안 7할 승률이라는 미국 프로 스포츠 사상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그런데 존경받는 감독이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비정한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 선수, 코치, 팬 사이에 끈끈한 유대감으로 형성된 가족적인 공동체 문화를 굳건히 뿌리내린 것이다.
포퍼비치는 늘 농구보다 일상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선수들과 식사 자리를 자주 갖고 가족, 가치관 등 사람 사는 대화를 주로 나눴다. 사회 이슈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올바르게 행동하길 촉구했다. 팀을 배신하고 떠난 선수에게 관중들이 야유하자 장내 안내 마이크를 붙잡고 멈추길 당부하기도 했다.
계약금보다는 훈련장에서의 성실함을 신뢰했고, 출신이 어떻든 편견 없이 기회를 줬다. 덕분에 당시 생소했던 자료 분석가와 비미국인 선수의 가치를 한발 앞서 알아볼 수 있었고, NBA 최초로 여성 코치를 과감히 발탁하는 등 함께 성장하는 조직 문화를 꽃피웠다. 그 결과 현재 리그의 감독, 코치, 단장 중 상당수가 그의 제자들이며, 많은 선수가 은퇴 후에도 샌안토니오에 정착해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며칠 뒤, 포퍼비치는 뇌졸중을 앓은 이후 처음으로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함께 전설을 쓴 마누 지노빌리, 팀 덩컨을 대동한 그가 점퍼를 벗자 스페인어로 ‘보스’를 뜻하는 ‘El Jefe’가 적힌 티셔츠가 나왔다. ‘이제 감독이 아니라 보스다’라는 선언은 신임 감독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특유의 유머가 깃든 배려였다.
존경받는 사람이 되기도 어렵지만 존경할 사람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시대, 샌안토니오 시의회는 감사의 티셔츠를 맞추는 대신 샌안토니오 국제공항의 이름을 ‘Gregg Popovich’로 바꾸기 위한 검토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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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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