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한겨레 언론사 이미지

대선 공약에 ‘지방’이 안 보인다 [뉴스룸에서]

한겨레
원문보기

대선 공약에 ‘지방’이 안 보인다 [뉴스룸에서]

서울맑음 / -3.9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지난 13일 각각 경북 구미역 광장과 울산 남구 뉴코아아울렛 앞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지난 13일 각각 경북 구미역 광장과 울산 남구 뉴코아아울렛 앞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김동훈 | 전국부장



1993년쯤인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를 준비할 때다. 취준생인지 백수인지 스스로도 분간 못 할 즈음, 한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참여시대를 여는 지방자치실무연구소’라는 곳에서 책을 만드는데 필자로 참여해볼 생각이 없냐는 것이었다. 책 제목은 ‘생활정치 현장 리포트’. 지방자치제가 부활해 1991년 3월 기초의원 선거가 실시됐고, 모범적인 의정 활동을 한 기초의원들을 인터뷰해 단행본으로 묶는 작업이었다. 용돈도 벌 겸, 인터뷰 훈련도 할 겸 흔쾌히 응했다.



지방자치실무연구소는 1992년 총선에서 낙선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만든 곳으로, 자치와 분권을 제도적으로 연구했다. 안희정, 이광재, 서갑원 등이 연구원으로 일했다. 책이 발간되고 노 전 대통령이 필자들을 불러 조촐한 저녁 자리를 마련했다. 그는 “서울대와 육사 출신 소수가 한국 사회를 쥐락펴락한다”며 중앙 권력의 지방 분산을 내내 강조했다. 그는 2002년 대선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고, 역대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국가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국정철학으로 삼았다.



사실 우리나라 지방자치제의 역사는 짧지 않다. 1949년 헌법에 따라 지방자치법을 제정하고 1952년 지방의회 선거를 실시했다. 1956년에는 시·읍·면장도 주민들 손으로 뽑기도 했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뒤 들어선 민주당 장면 내각은 지방자치제를 더욱 공고히 했다. 1960년 12월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 선거가 실시됐다. 이때 우리나라 최초의 민선 서울시장(김상돈)이 탄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1961년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정권은 지방의회와 단체장들을 강제 해산했다. 1979년 12·12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신군부도 지방자치를 할 의지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권력을 중앙에 집중해야 통치가 수월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제를 살려낸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그는 평화민주당 총재 시절이던 1990년, 지방자치제 실시 등을 요구하며 66살의 나이에 13일간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벌였다. 당시 여당이던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대표가 김 총재가 입원 중이던 세브란스병원으로 찾아가 지방자치 선거에 합의한 장면은 한국 정치사의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김 전 대통령이 이토록 지방자치를 염원한 이유는 관권 선거 때문이다. 1971년과 1987년 대선에서 패배를 경험한 그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고선 정권교체는 어림없다고 생각했다.



민주 세력은 지방자치제를 30년 만에 부활시켰고, 그 뒤 30년이 흘렀다. 그사이 전국동시지방선거가 8차례나 치러졌다. 하지만 현실은 김대중·노무현의 꿈과 거리가 멀다. 지방 사람들은 대학 진학을 위해, 일자리를 찾아, 병원에 가려고 서울로 서울로 향하고 있다. 그 많던 지방 명문대는 하나둘 사라졌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지방대가 폐교 위기에 몰린다는 씁쓸한 말도 돈다. 공기업은 지방으로 이전해도 직원들은 여전히 서울에 산다. 선거 때마다 후보들은 서울로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고속철도(KTX)와 지하철 연장, 고속도로 건설을 공약한다. 수도권에 사람들이 몰리니 부동산 가격은 폭등하고 양극화는 점점 더 심화한다.



인구는 절벽으로 치닫고 지방은 소멸 중이다. 지난달 기준 전국 229개 기초단체 가운데 133곳(58.1%)이 소멸위험 또는 고위험 지역이다. 133곳 중 경기도 외곽 7개 시·군을 빼면 모두 비수도권이다.



6·3 조기 대선을 앞둔 후보들은 과연 어떤 처방을 내놓았을까? 수도권·동남권·대경권·중부권·호남권 등 5대 초광역권과 제주·강원·전북 등 3대 특별자치도 육성을 뼈대로 한 ‘5극 3특’ 전략(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티엑스(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전국 5대 광역권 확장과 초광역권 메가시티 추진(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등이다. 지방의 시각으로 자치에 방점을 찍기보다는 중앙의 관점으로 시혜를 베푸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방 공약에 자치와 분권은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김문수 두 후보는 광역단체장을 지냈다. 특히 이 후보가 당선된다면 기초단체장 출신 최초의 대통령이 된다. 6·3 조기 대선 이후 펼쳐질 새로운 대한민국에서 김대중·노무현의 꿈이 실현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cano@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