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변호사, 교수 등 다학제 연구자·전문가 단체인 〈노동건강정책포럼〉은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맞아 차기 정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산재 예방 보상 정책과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일터에서 병들고 목숨을 잃는 고통이 더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 속에서, 산재보험 제도의 개선부터 산재 사고 사망 감축, 직업병 예방 정책, 그리고 산재 취약계층 지원 정책 등 정책 방향을 제시한다.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 일해서 건강을 잃지 않는 노동 환경은 그 자체로 정의로운 국가의 최소 조건이자, 사회 구성원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한 전제다. 일터의 생명안전은 국가의 책임이다. 차기 정부가 ‘노동 존중’을 실질적 제도로 구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일터에서 병들고 목숨을 잃는 고통이 더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 속에서, 산재보험 제도의 개선부터 산재 사고 사망 감축, 직업병 예방 정책, 그리고 산재 취약계층 지원 정책 등 정책 방향을 제시한다.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 일해서 건강을 잃지 않는 노동 환경은 그 자체로 정의로운 국가의 최소 조건이자, 사회 구성원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한 전제다. 일터의 생명안전은 국가의 책임이다. 차기 정부가 ‘노동 존중’을 실질적 제도로 구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 2017년 3월 6일 서울 서초동 삼성본관 앞에서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 해결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강윤중 기자 |
산업재해 사망자는 사고로 죽는 사람이 많을까, 질병으로 죽는 사람이 많을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사고 사망자가 더 많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국제노동기구(ILO) 자료를 보면, 2019년 전 세계적으로 약 293만 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고, 이 중 260만명(약 89%)은 직업병으로, 33만명(약 11%)은 사고로 사망했다. 직업성 암 등 질병 사망자가 사고 사망자보다 8.9배나 많은 셈이다. 유럽연합(EU) 국가로 한정하면 질병 사망자는 98%로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고 사망자는 2%에 불과하다.
한국은 어떨까. 2023년 기준 한 해 동안 산재 사망자는 2016명이었고, 사고 사망자는 812명(40%), 질병 사망자는 1204명(60%)이었다. 질병 사망이 사고 사망보다 약 1.5배 많았다. 국제 기준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직업병 비중은 현저하게 과소 보고되고 있는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병 환자가 적은 이유에 대해 직업병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직업병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그보다는 직업병 환자를 능동적으로 찾아낼 수 있는 선별 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핀란드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직업 관련 질환 의심 사례를 의사가 정부에 의무적·자발적으로 보고하고 있다. 보고된 사례는 중앙 정부에서 직업력 조사와 노출 정보를 관리하고, 암 등 특정 질병이 발생했을 경우 과거 직업력을 역추적하는 등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 체계를 가지고 있다. 즉, 병원으로부터 직업병 의심 사례가 자동 수집되어 직업병 의심자가 능동적으로 선별되는 시스템이다. 한국처럼 노동자 본인이나 가족이 직접 직업병 심사를 신청해 기나긴 심사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
그래서일까? 영국만 하더라도 연간(2023~2024) 새롭게 보고되는 업무상 질병자는 60만9000명이나 된다. 반면, 한국은 연간(2023년) 2만3000여명에 불과하다. 직업병 기준과 인구수, 산업구조 등이 달라 직접 비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만, 영국의 직업병 환자는 한국보다 26배 이상 많은 편이다. 한국은 노동자 스스로 직업병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하고, 영국 등 유럽국가는 병원을 통해 직업병 의심자를 능동적으로 선별한 후 국가가 개입하는 제도적 차이가 커서다. 한국의 직업병 환자가 적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모든 질병의 진단은 병원을 통해 이루어진다. 직업병도 마찬가지다. 진입 단계인 병원에서부터 환자의 직업력이 기록되고, 진료기록 데이터와 연계하여 직업병 의심 사례가 선별되는 사전 감시체계로 바뀌어야 한다. 선별된 사례는 근로복지공단으로 보고되어 추가 직업력 조사 등 인정·보상 절차로 연계되어야 한다.
모든 의사가 직업병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 의사는 “환자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라는 질문을 통해 직업력만 확인하면 된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용접 작업을 한 환자가 폐암 등 호흡기질환으로 진단되면 프로그램에 보고만 하도록 하면 된다.
이러한 통합 관리시스템을 더는 외면해서는 안 된다. 새 정부는 수십 년간 해온 방식대로 땜질식으로 제도를 개선하기보다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정책 전환을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방치되거나 숨겨져 있는 직업병 환자를 드러낼 수 있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명예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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