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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번진 그리움, 푸른 점 [크리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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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번진 그리움, 푸른 점 [크리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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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Air and Sound I 2-X-73 #321, 1973, 코튼에 유채, 264×208㎝.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김환기, Air and Sound I 2-X-73 #321, 1973, 코튼에 유채, 264×208㎝.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강혜승 | 미술사학자·상명대 초빙교수



미술시장에서 가장 비싼 작품가를 자랑하는 한국 작가를 꼽자면 단연 김환기(1913~1974)다. 2019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두폭의 푸른 점화 ‘우주’가 당시 한화로 132억원에 낙찰됐다. 이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은 아직 유효하다. 지난해 9월 또 다른 푸른 점화가 홍콩 경매에서 78억원에 낙찰됐다. 이로써 상위 9위까지 기록이 모두 김환기 작가의 작품이 됐다. 그리고 아홉점은 모두 1970년대 작품이다.



작가에게 1970년대는 뉴욕시대로 불린다. 마침 강릉의 솔올미술관이 시립미술관으로 최근 재개관하면서 작가의 뉴욕시대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1935년 일본에서 데뷔한 이후 한국 화단에서의 활약과 파리 체류 시기를 거쳐 1963년부터 뉴욕에 정착한 40년간의 화업에서 특히 말년에 집중된 미술시장의 선호를 파악할 수 있는 전시인 셈이다.



전시 제목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작가의 1970년 작품에서 따왔다. 7년째 뉴욕에 머물던 작가는 그해 2월 서울에서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한국일보가 만든 미술상 첫회를 위해 작품을 응모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심사위원으로 위촉돼도 모자랄 판에 응모라니, 서운했지만 고국 화단을 위해 붓을 들었다. 푸른 점이 가득한 추상 점화를 받아든 한국 화단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강릉시립미술관 솔올에서 오는 6월까지 열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전시 전경. 강릉시립미술관 제공

강릉시립미술관 솔올에서 오는 6월까지 열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전시 전경. 강릉시립미술관 제공


1930년대 일본 유학기에 초현실주의와 추상을 흡수했던 작가는 1940년대 해방 정국의 한국 화단에 전위 경향을 소개하고자 했다. 새로운 리얼리티라는 의미의 신사실파를 결성하고 그룹전에서 신경향을 선보였지만, 민족주의 진영은 탐탁지 않게 여겼다. 작가의 추상에 달과 항아리, 나무와 꽃 같은 이른바 향토적 색채의 형상이 들어왔고, 상고주의의 영향으로 1950년대 작가의 화면에서 전통 소재는 두드러졌다.



그런데 뉴욕에서 화풍이 완전히 달라졌다. 일단 화폭이 2배 이상 커졌다. 그가 즐겨 그렸던 달항아리와 매화도 화면에서 사라졌다. 작가가 머물던 뉴욕에서는 벽화를 방불케 할 대규모 색면 추상이 주류였다. 한국적 소재가 국제무대에서 보편의 언어가 될 수 없는 현실을 이미 파리에서 경험한 뒤였다. 미국식 추상회화를 참조한 작가는 차이를 만들어냈다.



작가는 높이 2m가 넘는 150호 화판 가득 점을 찍었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로 시작되는 시를 따라 작가는 별 하나에 점을 찍었다. 친분이 깊던 시인 김광섭의 ‘저녁에’라는 시였다. 매끈한 기름칠을 생략한 코튼(면) 위로 한점은 먹처럼 스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로 끝맺는 시를 따라 한점은 그리움처럼 번졌다.



뉴욕식 색면회화는 물감을 뿌리듯 대형 화폭을 채우고 정신적 추상을 지향했다. 김환기의 화면은 이를 닮은 듯 달랐다. “이렇게 간절히 보고 싶을 줄 몰랐던” 고향 바다와 친구들을 떠올리며 서정으로 채웠고, 문학을 내용으로 품었다. “서러운 생각으로 그리지만, 결과는 아름답고 명랑하길” 작가는 바랐다. 색면추상이라는 보편형식에 새긴 김환기만의 서사를 우리는 정체성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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