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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차 유망주’ 윤성빈의 덜덜 떠는 손...“불안했던 내 청춘 같다” 눈물 훔친 팬들

조선일보 배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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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차 유망주’ 윤성빈의 덜덜 떠는 손...“불안했던 내 청춘 같다” 눈물 훔친 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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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만에 1군 등판했지만 부진...팬들은 박수를 쳤다
지난 20일 프로야구 올 시즌 1위 LG와 2위 롯데 경기가 열린 부산 사직야구장. ‘영원한 유망주’ ‘거인의 아픈 손가락’이라 불리는 투수가 올라왔다. 2017년 롯데 1차 지명. 계약금 4억5000만원. 연고지(부산고) 출신.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격을 다 갖추고 기대를 모았던 윤성빈(26)이었다.

큰 키(197㎝)에서 내려찍는 강속구로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들까지 눈독을 들였던 그는 롯데 입단 후 실망의 연속이었다. 고질적 제구 불안과 잔부상은 그를 긴 부진의 터널에 가두었다. 7년간 2승 7패 평균자책점 7.47. 그나마 2018년(18경기)을 제외하곤 단 3경기 출전에 그쳤다.

이젠 기억 속에서 사라질 법했지만 그는 올해 퓨처스리그(2군) 6경기에 나와 2승 무패 평균자책점 2.11. 21과 3분의 1이닝 동안 삼진을 40개나 잡아내며 존재감을 알렸다. 볼넷이 19개로 다소 불안했지만 1군 코치진 눈길을 붙잡기에 충분했다. “드디어 재능을 꽃피우는 게 아니냐”는 기대가 부풀었다.

20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5 신한 SOL 뱅크 KBO리그 LG 트윈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1회 초 롯데 선발투수 윤성빈이 투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5 신한 SOL 뱅크 KBO리그 LG 트윈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1회 초 롯데 선발투수 윤성빈이 투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다 드디어 1군 선발 등판 기회를 잡았다. 작년 7월 30일 이후 9개월 만. 사직 구장엔 ‘노(老)망주’ 윤성빈의 만개를 응원하기 위해 윤성빈 마킹 유니폼을 든 관중이 대거 들어찼다. 롯데 김태형 감독은 경기 전 “기대가 된다. 점수를 얼마나 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타자와 얼마나 승부를 하러 들어가는지 보겠다”면서 투구 내용만 좋다면 기회를 계속 줄 것이라고 응원했다.

잔뜩 긴장해 상기된 얼굴에 식은땀을 흘리며 마운드에 선 윤성빈. 출발은 우렁찼다. 1회초 LG 1번 타자 박해민을 157㎞ 강속구 3개 헛스윙 삼진. 탄성이 쏟아졌다. 2번 타자 문성주에게 안타를 내줬지만 3번 타자 김현수에게 다시 헛스윙 삼진. 윤성빈을 연호하는 함성이 더 커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1루 주자 문성주가 2루로 도루한 뒤부터 급격히 균형이 무너지며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했다. 홈 관중들은 두 손을 부여잡고 기도하듯 응원했다. ‘성빈아, 제발 5이닝만 던지자’라는 플래카드가 펄럭였지만 무위였다. 1회에 3점을 내주고 간신히 3아웃을 잡았지만, 2회에는 아웃카운트 하나도 잡지 못하고 선두 타자부터 줄줄이 볼넷과 사사구, 안타를 내주며 밀어내기까지 허용, 5실점했다. 밀어내기로 다섯 번째 점수를 준 뒤 모자를 고쳐 쓰는 윤성빈 손이 덜덜 떨리는 모습이 중계 화면에 그대로 잡혔다.


0-6 계속된 무사 만루. 결국 주형광 투수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주 코치는 살짝 웃으면서 “힘드냐”라고 물었다. 웃으며 엉덩이를 톡 쳐주는 주 코치를 뒤로하고 윤성빈은 고개를 푹 숙이며 더그아웃으로 달려 들어갔다. 1이닝 4피안타 7사사구 2탈삼진 9실점. 관중석에선 야유 대신 격려의 박수가 밀려들었다. 끝없는 좌절에도 거대한 잠재력을 놓치지 않고 도전을 이어간 청춘을 응원한 것이다.

경기 후 떨리는 윤성빈의 손을 본 적잖은 야구 팬들이 “도전과 실패 앞에서 벌벌 떨었던 내 청춘도 떠올랐다”며 눈물을 훔쳤단다. “야구 좀 잘한다고 까불다 사고 치는 선수들보다 말썽 없이 묵묵히 야구 한 윤성빈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다”는 응원 글도 이어졌다. 한 야구 팬은 “이제 나이가 들어 야구를 보니 윤성빈의 떨리는 손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은 겪었을 모습이었다”고 했다.

[배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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