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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때문에 친중하는 연예인들… 대만 “더는 안 봐준다”

조선일보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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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때문에 친중하는 연예인들… 대만 “더는 안 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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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드라마 출연료 대만 6배 달해
배우·가수 등 中 눈치 보기 급급
中이 ‘대만 포위’ 훈련 하는데도
‘中은 오직 하나’ ‘우리 중국인’ 발언

한때 대만에서 ‘국민 여동생’으로 불렸던 배우 겸 방송인 어우양나나(25)는 지난 11일 중국 장시성 지안시 문화관광 홍보대사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식에서 “이곳이 대만 시의원이었던 아버지의 고향”이라면서 “여기에 올 때마다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어우양나나는 여섯 살 때 첼로를 시작해 열세 살에 미국 커티스 음악원에 들어간 ‘첼로 신동’이었고, ‘베이징 러브스토리’란 중국 본토 제작 드라마로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그래픽=박상훈

그래픽=박상훈


그에 대한 대만인들의 시선이 차가워지기 시작한 것은 노골적인 친중(親中) 행보를 보이면서다. 2019년 페이스북에 “나는 중국인”이라고 썼고, 지난 3월엔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왕이 중국 외교부장(장관)의 말을 인용해 “유엔에서 대만 지역을 지칭하는 유일한 명칭은 ‘중국 대만성(省)’”이라고 썼다. 대만은 중국 영토의 일부라는 중국 입장을 홍보한 것이다. 작년 10월 중국 인민해방군이 대만섬 포위 훈련인 ‘연합검’ 군사훈련을 개시하자 “중국은 오직 하나”라고 소셜미디어에 썼다.

어우양나나는 중국 무력 통일 정책에 협조한 혐의로 대만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대만 연예인 20여 명 중 한 명으로 알려졌다. 지난 15일 대만의 중국 담당 기구 대륙위원회는 입법원(국회) 외교·국방위원회에서 대만 연예인들의 친중국 행보를 국가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중국이 대만인의 대적관과 경계 태세를 누그러뜨리려는 은밀한 공작의 일환으로 대만 연예인들을 대거 동원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면서 단속에 나선 것이다. 대만의 대중국 교류 관련 법규는 “대만인은 대만을 겨냥한 중국의 통일 전선 선전을 지지하거나 협조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최고 50만 대만달러(약 23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대만 정부가 이렇게 나선 것은 대만 연예인들의 친중 행보가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반중(反中) 성향이 강하고 독립을 추구하는 민진당이 2016년부터 장기 집권 중인데도 연예인들의 친중 행보는 거침없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가수 겸 배우 장사오한(43)은 차이잉원 총통 시절인 2020년 중국 국경절 행사에 참여하는가 하면, 2021년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 행사에도 참석했다. 지난 3월 중국 소셜미디어에 왕이의 말을 인용해 ‘대만필귀(臺灣必歸·대만은 반드시 중국으로 돌아온다)‘라는 문구를 적은 연예인 중에는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여주인공 배우 천옌시(41), 톱 배우 자오유팅(41), 아나운서 출신의 MC 허우페이천(48) 등이 있다. 차이잉원보다 더 강한 반중 성향을 드러낸 라이칭더 총통 집권 뒤에도 이런 흐름은 변함이 없었다.

그가 취임하던 지난해 5월 대만의 인기 록밴드 메이데이의 베이징 콘서트에서는 메인 보컬 아신이 “베이징에 오면 ‘우리 중국인’은 꼭 오리구이를 먹는다”고 말했다. 같은 달 중국 장시성 난창에서 콘서트를 가진 대만 최고 인기 여자 가수 차이이린은 “우리 중국 난창이 가장 열정이 넘칩니다. 맞죠?”라고 외쳤다.


대만 연예인들이 이 같은 행보는 ‘먹고사는 문제’와도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애국심으로 외면하기엔 중국은 너무 큰 시장이기 때문이다. 우선 중국 본토의 드라마 출연료는 대만보다 최대 6배 수준이다. 예컨대 대만 배우 우치룽은 중국에서 드라마 한 회당 약 50만위안(약 9600만원)을 받는데, 대만 몸값은 8만위안에 그친다. 세계 영화 시장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은 연간 800편 이상의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최근 부쩍 불거지고 있는 남성 연예인들의 병역 기피 논란도 중국 활동 지속을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많다. 대만 남성들은 병역 의무가 있으며 복무 기간은 1년이다. 그런데 최근 양안(중국과 대만)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대만 연예인들이 입대하면 중국에 밉보여 향후 중국 활동을 포기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이는 연예인 병역 기피 사건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올해 초 ‘대만인의 첫사랑’이라는 별명을 가진 배우 왕다루(33)의 병역 기피 사건이다. 대만 자유시보는 또 지난 15일 검찰이 허위 진단서로 병역을 기피한 혐의로 연예인 9명을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왕다루와 이번에 체포된 연예인들 모두 중국 활동이 차질을 빚을 것을 우려해 군 입대를 피해 가려 했다고 알려졌다.


대만 정부도 현실적 상황을 고려해 한때 연예인들의 친중 행보에 유화적 태도를 취했다. 라이칭더는 지난해 “대만의 문화 종사자들이 ‘타인’의 지붕 아래에서 압력을 받을 때마다 매우 슬펐다”며 “우리는 그들에게 이해와 배려를 베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집권 민진당도 “예술인 친구들이 정치적 압박 때문에 그런 발언을 했다고 믿는다”며 유화적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올 들어 태도가 180도 바뀌는 양상이다. 라이칭더는 지난 3월 “관련 당국은 대만 연예인들에게 중국에서 활동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을 제공해야 하며, 국가의 존엄성을 해치는 관련 발언이나 행동의 조사 범위도 명확히 해야 한다”며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대만을 침공한다는 가상 상황을 그린 10부작 대만 드라마 ‘제로 데이(零日攻擊·영일공격)’ 포스터. /인스타그램

중국 인민해방군이 대만을 침공한다는 가상 상황을 그린 10부작 대만 드라마 ‘제로 데이(零日攻擊·영일공격)’ 포스터. /인스타그램


대만은 보다 적극적인 대응 조치도 강구하고 있다. ‘중국의 대만 침공’이라는 민감하고도 파격적인 주제를 다룬 10부작 대만 드라마 ‘제로 데이’ 제작을 정부 예산으로 지원해 방영을 앞두고 있다. 지난 13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진행된 ’2025 민주주의 서밋’ 때 시사회가 열려 차이잉원 전 총통도 참석했다. 드라마는 차기 총통 선거가 있을 2028년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작비 2억5921만 대만달러(약 119억원) 중 절반 가까운 1억1301만 대만달러(약 52억원)를 정부가 지원했다. 공개된 예고편에는 타이베이 총통실과 대만 군함 등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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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벌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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