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감시체제의 핵심은 최첨단 기술만이 아니다. ‘정보원’을 활용한 전통적 방식의 인적 감시망이 결합해 효과를 극대화한다. 약 200만명으로 추산되는 정규 경찰(공안) 외에 무장 경찰과 사법 관련 방대한 인원이 있다. 트럼프가 거칠게 중국을 때릴수록, 시진핑은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고, ‘외부 세력의 위협과 침투’에 대한 위기의식을 강조하며 내부를 더 강하게 통제할 수 있다. 감시와 애국의 이중주를 통해 시진핑 권력은 더욱 강화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고율 관세를 부과한 뒤 지난 4월12일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소셜미디어 엑스(X)에 올린, ‘미국은 종이호랑이’라고 강조하는 마오쩌둥 어록. 엑스 계정 갈무리 |
5월 초 중국 베이징의 오래된 골목을 걷다가 단골들로 붐비는 정겨운 느낌의 과일 가게를 발견했다. 사진 한장을 찍는 순간 곧바로 주인이 달려왔다.
“왜 사진을 찍냐?” “관광객인데, 분위기가 좋아 보여서….” “청관(도시 관리 공무원)한테 고발하려는 거 아니지?”
평온한 베이징 거리 풍경 뒤의 팽팽한 긴장감이 확 다가왔다. 감시와 고발이 일상이 된 중국의 현실도.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중국 곳곳에 감시의 ‘눈’이 작동 중이다. 중국 전역에 7억대가 넘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는 통계가 있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안면·음성·홍채·동작 인식, 인터넷 검열, 휴대전화 감시 등이 모든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정보를 수집한다. 올해부터 광둥성 선전 등 일부 도시에서는 인공지능 기술을 탑재한 로봇 경찰이 거리 순찰에 투입되었다. 최첨단 기술이 총동원된 공상과학 영화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좀 더 살펴보면 중국 감시체제의 핵심은 최첨단 기술만이 아니다. ‘정보원’을 활용한 전통적 방식의 인적 감시망이 결합해 효과를 극대화한다. 약 200만명으로 추산되는 정규 경찰(공안) 외에 무장경찰과 사법 관련 방대한 인원이 있다. 이 밖에도 민간에서 정보원으로 활동하는 방대한 ‘자원봉사자’ 감시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하철 열차마다, 버스마다 빨간 완장을 찬 보안(감시요원)들이 승객들을 살피고 있다. 거리마다 감시와 고발을 맡은 주민들이 있다. 중국 당국은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2000년대 중반부터 구역을 나눠 해당 지역에서 고용한 정보원들이 이웃의 수상한 움직임을 감시하게 하는 ‘격자망 감시체제’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이런 ‘자원봉사 감시 인력’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베이징 청년보’는 2017년 베이징시에 등록된 치안 관련 ‘자원봉사자’가 85만명에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민신 페이 클레어몬트 매케나 칼리지 교수는 ‘감시병 국가’(The Sentinel State)에서 중국의 감시체제가 첨단기술 장비만으로는 작동하지 않으며, 방대한 규모의 감시 인력이 결합되어 작동하는 매우 “노동집약적인 시스템”이라고 강조한다. 페이 교수는 중국 30여개 지역 정부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중국 인구 14억명 가운데 0.73~1.1%인 약 1500만명이 정보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추산한다. 중국의 ‘국내 안보’ 예산은 2010년 처음으로 국방예산을 넘어서 주목받았는데,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에는 더욱 급속도로 늘어 2018년에는 국방예산보다 20%나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후에는 관련 통계가 정확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중국 베이징의 시내버스마다 붉은 완장을 찬 치안 담당자가 탑승해 승객들의 동태를 지켜본다. 베이징/박민희 선임기자 |
최첨단 경제와 군사력의 ‘부국강병’의 꿈을 실현하고 있는 중국은 왜 이토록 불안해하며, 사회를 통제해야 할까. 시진핑 주석이 2012년 말 집권한 직후에는 불평등과 부패에 대한 분노의 여론을 우려하면서, 정치적 분열을 틈타 공산당 통치에 비판적인 ‘서구 사상’이 침투하고, 미국 등 외부세력이 이를 이용해 중국공산당의 통치를 전복시키려 한다는 위기의식이 강조되었다. 그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대응이 2014년에 발표된 ‘총체적 국가안보관’인데, 중국공산당의 통치와 유지를 의미하는 ‘정치 안보’를 최상위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체제 안정과 이념 수호, 과학 기술, 농업, 에너지·식량 안보, 경제·문화 등 모든 것이 안보 문제로 규정되었다. ‘안보를 철저히 하기 위해’ 당은 중국인의 일상을 통제해야 하고, 모든 개인과 기업, 단체도 국가 안보에 책임을 지고 위협을 감시·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
2017~2018년 무렵 미국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중국을 본격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하자, 시진핑 주석은 미국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중국의 부상을 억누르려 할 것이란 위기감을 강조하는 한편 ‘미국이 쇠락하고 중국이 떠오르는’(東昇西降) 역사적 기회도 오고 있다는 뜻을 함축한 ‘백년 만의 대전환’ 담론을 2017년 12월 처음 내놨다. 이후 2022년 10월 20차 당대회에서 ‘미국과 대결하는 시기’라는 정세 판단을 분명히 했다.
마오쩌둥 시대에 중국의 대외 정세에 대한 인식은 ‘미국·소련과의 대결’이었다. 1978년 말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과의 화해(데탕트)를 바탕으로 더 이상 중국이 외부와 대결할 필요 없이 평화로운 정세를 맞이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시진핑 시대 중국은 덩샤오핑의 정세 인식에서 멀어지고, 마오쩌둥 시대와 비슷하게 미국의 위협에 맞서야 한다는 새로운 정세 판단에 따라 ‘신시대’로 나아간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미국에 맞서는 데 마오쩌둥의 어록과 전략을 활용하는 것은 그런 정세 인식 변화의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2018년을 기점으로 미국과의 대결에서 시진핑 주석을 비롯해 중국 당정 간부들이 미국을 ‘종이호랑이(紙老虎)’로 비유했던 마오의 어록을 되살리고, 미국에 열세인 중국이 힘을 쌓으며 장기전을 벌여 승리한다는 ‘지구전론’,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연대해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야 한다는 ‘제3세계론’ 등 마오의 전략이 강조된다.
마오쩌둥은 1946년부터 1975년까지 여러차례 미국을 ‘종이호랑이’라고 불렀다. 특히 한국전쟁 시기에 미군이 무적이 아니며 핵무기 사용 위협을 감히 실행에 옮기지 못할 것이고, 중국이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강조하려 쓴 용어다. 수십년 만에 이 용어가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등장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동안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8년이었다. 이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앞두고 미-중 긴장이 높아지던 2022년 8월에도 당시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미국은 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려워할 게 없는 종이호랑이다. 종이호랑이는 비바람을 견디지 못한다”고 한 마오쩌둥의 어록(1956년 7월 중남미 인사들과의 대담)을 소셜미디어 엑스(X)에 올렸다.
중국이 ‘항미원조’(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도운 전쟁)라고 부르는 한국전쟁은 명확한 승자가 없이 수많은 이들의 목숨만 희생된 채 교착 상태로 끝났다. 하지만 시진핑 시대 들어 중국의 공식 서사에서 ‘항미원조’ 전쟁은 중국이 객관적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제국주의’ 미국을 격퇴하고 중국을 위협으로부터 지켜낸 “정의의 전쟁”으로 다시 소환되었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가난했던 중국이 ‘탁월한 전략가’ 마오쩌둥의 지도 아래 미국에 ‘승리’했다면, 이제 세계 2위의 국가로 올라선 중국이 시진핑 주석의 ‘전략’에 따라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서사가 만들어졌다.
4월2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터무니없이 높은 관세를 부과하며 ‘무역전쟁’의 신호탄을 다시 쏜 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엑스에 잇따라 마오쩌둥의 동영상과 ‘종이호랑이’를 언급한 연설을 올린 것은 예정된 수순이다. 마오 대변인이 처음 올린 것은 한국전쟁 막바지였던 1953년 2월7일 마오쩌둥이 “이 전쟁이 얼마나 오래가든지 우리는 싸울 것이고 완전한 승리를 거둘 것이다”라고 한 연설이다. 며칠 뒤에는 “미국이 일부 국가들을 위협해 우리와 거래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그들의 허풍을 믿지 말라”는 ‘종이호랑이’론을 마오의 사진과 함께 올렸다. 1964년 ‘파나마 인민의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정의로운 애국 투쟁을 지지하다’라는 연설인데,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파나마 운하’를 미국이 다시 차지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는 것을 겨냥했다.
중국 광둥성 선전시 공안이 로봇 경찰과 함께 거리를 순찰하는 장면. CGTN 틱톡 동영상 갈무리 |
트럼프 대통령은 기세등등하게 관세전쟁을 시작했지만 첫 협상은 그동안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며 여러 카드를 준비해온 중국의 ‘판정승’으로 볼 수 있다. 90일 유예기간이 끝난 뒤 트럼프가 다시 관세를 급격하게 높이며 중국을 위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트럼프의 약점들을 확인했다. 트럼프는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물가 급등과 경제 침체를 우려하는 지지층을 달래야 하고, 시장과 여론의 반발,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 등에도 밀렸다.
중국 온라인은 ‘승리의 환호성’으로 가득하다. 애국주의의 선봉장 역할을 해온 후시진 전 환구시보 편집장은 “중국의 큰 승리”라는 글을 웨이보에 올렸고, 샤오훙수(인스타그램처럼 사진·동영상을 많이 올리는 소셜미디어)에는 “미국이 한국전쟁 이후 똑같은 상대에게 얻어맞아 3·8선 이남으로 밀려났다. (…)미국 제국주의는 종이호랑이다” 같은 내용이 무척 많다.
중국 당국이 이런 쪽으로 여론전을 펼치는 측면도 있지만, ‘트럼프의 불합리한 괴롭힘에 끝까지 맞서 싸운다’는 중국 정부의 강경한 태도가 다수 중국인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가 이야기를 나눈 허난성 정저우 출신의 한 노동자는 “미국 관세 때문에 많은 공장이 문을 닫고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있다고 한다”면서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정부가 미국의 부당한 조치에 정당하게 보복하고 제대로 싸우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한 외교전문가는 “2018년 트럼프 1기 때는 중국의 전략에 이견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95% 이상이 지지한다. 단결된 중국은 미국이 어떻게 때려도 이길 수 있다”고 했다.
세계가 미국과 중국의 관세 ‘휴전’ 발표에 온통 집중하고 있던 지난 12일 중국 국무원이 ‘신시대의 국가 안보 백서’를 내놓은 의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핵심 내용은 “‘외부 세력’이 중국의 국경과 국경 지역 및 주변 지역의 안보에 점점 더 위협을 가하고 있고, 지정학적 환경이 악화되고 있다”는 경고이고, “‘정치적 안보’가 보장되지 않으면 중국은 필연적으로 분열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말할 수 없게 된다”고 강조한다. 관세협상이 어떻게 되든 미국과 서방 진영의 중국에 대한 위협은 계속될 것이니, 안보 의식을 강화하고 공산당을 중심으로 단결해 대결의 고삐를 늦추면 안 된다는 강한 메시지다.
중국과 미국 모두에서 서로 타협할 수 없다는 강경론이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가 거칠게 중국을 때릴수록, 시진핑은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고, ‘외부 세력의 위협과 침투’에 대한 위기의식을 강조하며 내부를 더 강하게 통제할 수 있다. 감시와 애국의 이중주를 통해 시진핑 권력은 더욱 강화된다. 트럼프가 중국을 얕보며 실수를 반복할수록 시진핑은 ‘마오를 넘어서는 전략가’의 면모를 과시할 수 있다. 미중은 이렇게 ‘총성 없는 전쟁’으로 점점 깊이 들어서고 있다.
박민희 |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2007~2008년 중국 인민대학교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통일외교팀장,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세계와 외교에 대해 취재하고 쓰고 있다. ‘중국 딜레마’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보이지 않는 중국’ ‘롱게임’ 등의 책을 번역했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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