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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경북 울진·삼척 산불 때 울진군 금강송면의 금강송 군락지를 지켜낸 임도. /김용재 기자 |
산림청이 임도(林道)를 늘리는 데 급급하다 보니 임도 다수가 부실 시공되고 있고 산사태 위험을 키우고 있다고 감사원이 20일 지적했다. 임도는 삼림 관리와 임산물 운송, 산불 발생 시 소방차 진입 등에 쓰이지만, 산비탈을 깎아 만드는 경우가 많다 보니 적절히 시공되지 않으면 산사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감사원이 이날 공개한 ‘산림 사업 관리·감독 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감사원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전국에 신설된 임도 1531곳 가운데 부실 시공됐을 가능성이 높은 135곳을 점검했다. 그랬더니 103곳(76.3%)이 산림자원법 시행규칙에 따라 세워야 하는 옹벽이나 석축을 세우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산허리를 따라 임도를 내려면 산비탈을 깎아내고, 여기서 나온 흙을 윗면이 평평한 형태로 쌓아올려야 한다. 이 평평한 부분이 임도가 되고, 그 아래쪽에는 기존 산비탈보다 가팔라진 인공 비탈이 생긴다. 이 인공 비탈을 성토사면(흙을 쌓아 만든 비탈)이라 하는데, 성토사면이 쓸려 내려가면 산사태가 일어날 수 있으므로 산림자원법 시행규칙은 성토사면의 너비가 5m가 넘는 경우에는 아래쪽에 옹벽이나 석축을 쌓아 산사태를 막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산림청이 이 규정을 지키지 않아 산사태 위험성이 있는 임도까지 준공 처리를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감사원이 그 이유를 확인해 보니, 임도 시공을 맡은 산림조합 관계자가 ‘성토사면에 풀을 심었으니 괜찮을 것’이라거나 ‘비탈 기울기가 심하지 않아 보인다’고 임의로 판단하고 옹벽·석축 설치를 생략하거나, 산림청이 예산 범위 내에서 임도를 개설해야 한다는 이유로 산사태 위험성을 무시한 경우가 많았다.
일례로, 남부지방산림청은 2022년 산림조합중앙회와 계약해 경북 영덕군에 2.92㎞ 길이 임도를 개설했는데, 성토사면의 길이가 최대 58m나 됐음에도 ‘성토사면을 많이 다졌으니 안전할 것’이라고 임의로 판단하고 옹벽·석축 설치를 생략한 채로 임도를 준공 처리했다. 그러나 이듬해 8월 태풍이 불어오자 곧바로 산사태가 일어나 5000만원 재산 피해가 발생했고, 복구와 석축 설치 공사에 1억3000만원이 들어갔다.
그런데 이 복구·보강 공사를 맡은 것도 산림조합이었다. 임도를 부실 시공해서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로 인해 생긴 일감을 다시 산림조합이 가져간 것이다.
한편, 산비탈의 경사가 너무 급한 곳에 임도를 낼 때에는 산비탈을 깎아 나온 흙을 임도 아래에 쌓아 성토사면을 만들어선 안 되고, 아예 산 바깥으로 빼내야 한다. 원래도 급경사인 곳에 이보다 경사가 심한 성토사면을 만들면 산사태를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사원이 급경사 구간이 전체 구간의 40%가 넘는 임도 38곳을 조사해 보니, 24.282㎞ 중 12.506㎞(51.5%)에 이런 산사태 방지 공법이 적용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15곳은 급경사 구간이 너무 많아서 애초에 임도를 만들어서는 안 되는 곳인데도 무리하게 임도를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산사태 위험을 키우는 임도들이 만들어진 것은, 산림청이 임도를 늘리는 데에만 집중하고 부실 시공 방지 대책은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감사원은 “산림청이 2020년 기준 2만 3207㎞인 임도를 2030년까지 3만4990㎞로 확대하기 위해, 임도 개설 목표를 달성한 지방산림청 등에 포상하는 등 임도 확대를 독려하면서도 임도 부실 시공 방지 대책은 소홀했다”며 “지방산림청 등은 임도 개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는 이유로 당초 예산의 범위를 초과한 옹벽 등 구조물 설치 소요가 발생해도 이를 시공하지 않은 채 임도를 준공 처리했다”고 했다.
산림청이 임도 개설 공사를 관행적으로 산림조합중앙회와 142개 지역산림조합에 맡겨 온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산림조합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전체 임도 공사 3022건 중 2460건(81.4%), 8961억원어치 중 7981억원어치(89.1%)를 수주했다. 이 가운데 7735억원어치(96.9%)는 경쟁 입찰이 아닌 수의 계약이었다. 이 과정에서 산림조합은 공사를 제대로 감독할 현장 대리인이 부족한데도 공사를 수주했고, 부실 공사로 벌점을 받고서도 입찰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아 임도 공사를 계속 수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산림청에 임도 부실 시공 방지 대책과 산사태 위험성이 큰 구간에 대한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또 임도 공사에 대한 공개 경쟁 입찰을 늘리고, 부실 시공 업체에는 입찰 제한 조치 등의 불이익을 주는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라고 요구했다.
[김경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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