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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소름이 돋을 정도… 전력은 약해졌지만, 팀 전체가 똘똘 뭉쳐 만들어낸 우승” [아본단자 인터뷰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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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소름이 돋을 정도… 전력은 약해졌지만, 팀 전체가 똘똘 뭉쳐 만들어낸 우승” [아본단자 인터뷰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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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누군가 본 기자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 한다는 알림이 휴대폰에 떴다. 확인해보니 그 아이디는 ‘marcelloabbondanza’. 2024~2025 V리그 여자부 흥국생명의 통합우승을 이끌고 떠난 마르첼로 아본단자(이탈리아) 감독의 인스타그램 계정이었다. 그때만 해도 “이 양반이 나를 왜 팔로우했지?”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본단자 감독의 에이전시 대표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본단자 감독이 KYK 인비테이셔널 행사를 위해 한국에 오는데, 기자님과 인터뷰를 하고 싶어 해요. 시즌을 마치고 이탈리아 매체와의 몇 차례 인터뷰가 한국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와전된 게 있어서 해명하고 싶대요.”

보통 기자와 선수, 감독 간의 인터뷰는 기자가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본단자 감독이 V리그에서 있는 동안 비판적인 논조의 기사나 칼럼을 쓰기도 했지만, 2024~2025시즌을 앞두고 흥국생명의 상하이 전지훈련 풀기자로 참여하면서 나름 친분을 쌓기도 했다. 아본단자 감독과 본 기자의 관계를 굳이 정의하라면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너무 가깝지도 않은, 너무 멀지도 않은) 정도다.



이 정도 관계인 나를 콕 집어 인터뷰를? 이런 상황이 맞물리자 아본단자 감독의 인터뷰 역제의가 퍽 흥미로웠다. 아본단자 감독이 흥국생명의 사령탑을 맡고 세 시즌 동안 드라마 같은 일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그 세 시즌을 정리하는 인터뷰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KYK 인비테이셔널의 첫날 일정이 치러지기 전인 지난 17일 오후 숙소인 서울 강서구 메이필드 호텔에서 아본단자 감독을 만나 그간의 소회와 V리그와 한국 여자배구에 대한 제언 등을 들어봤다.

아본단자 감독은 지난달 8일 챔피언결정전 5차전을 마치고 곧바로 출국했다. 튀르키예리그 페네르바체의 사령탑을 맡게 됐기 때문이다. 페네르바체를 이끌고 챔프전까진 올랐지만, 패하며 한 시즌 두 번 우승에는 실패했다. 한 달여가 지나 다시 한국을 찾은 느낌을 묻자 “기분 좋다. 집에 온 느낌이기도 하다”라고 입을 뗀 뒤 “흥국생명의 홈구장인 삼산월드체육관이 여기에서 가까워서 선수단 숙소를 항상 이곳, 메이필드 호텔을 썼었다. 경기 전 호텔에서 해왔던 루틴도 그렇고, 사람들도, 모든 게 친숙하다. 게다가 오늘 일정이 열리는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챔피언결정전 우승했던 좋은 기억이 있어서 이래저래 기분이 좋다”라고 말했다.


챔피언결정전 우승 당시 큰 기쁨과 감격을 가감 없이 표현했던 아본단자 감독이다. 그도 그럴 것이 1,2차전을 모두 잡아내고 3차전도 1,2세트를 승리해 우승에 딱 한 세트를 남겨놓고 승부가 뒤집혔다. 3,4차전을 모두 2-3으로 패하면서 또 한 번 ‘리버스 스윕’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게다가 5차전도 1,2세트를 먼저 따내고도 3,4세트를 접전 끝에 내주며 5세트 혈투 끝에 힘겹게 우승했다.

한 달 넘게 지난 지금, 조금은 더 냉정한 마음으로 그때를 돌아봐 달라고 하자 아본단자 감독은 털이 난 팔뚝을 내보이며 “만져보라. 소름이 돋아있지 않는가. 그때 그 순간을 지금 생각해보 모골이 송연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아찔하다. 절대 냉정해질 수 없다”라면서 “지난 시즌은 제 선택으로 선수단을 갈아엎고 치른 시즌이었다. 김연경, 김수지를 제외하면 주전 선수 면면이 대부분 바뀌지 않았나. 게다가 챔피언결정전 5차전 5세트에 코트에는 부진했던 정윤주 대신 김다은, 부상당한 신연경 대신 도수빈 등 주전이 아닌 백업 선수들이 여럿 있었다. 우리가 함께 하면서 해왔던 모든 것들을 쥐어짜내서 만든 우승이었다. 팀으로 만든 우승이라 여러 면에서 큰 의미가 있었던 우승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아본단자 감독이 소름 돋는 게 충분히 이해가 갈 정도로, 이번 챔피언결정전 우승 전까지 드라마틱한 패배를 많이 당했다. 시즌 도중 부임했던 2022~2023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선 1,2차전을 먼저 잡고도 도로공사에 3,4,5차전을 내주며 사상 초유 리버스 스윕의 ‘희생양’이 됐다. 2023~2024시즌엔 승점 1 차이로 챔피언결정전 직행 티켓을 놓쳤고, 플레이오프 혈투를 치르고 가까스로 챔피언결정전에 올랐으나 현대건설에 3경기 모두 풀세트 접전 끝에 패하며 3전 전패로 또 다시 준우승에 그쳤다. 부임 후 연속으로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에 그쳤던 것에 대해 묻자 “매 시즌마다 정말 아쉬웠다. 정말 아깝게 져서 더 아쉽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일부 포지션이 승부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세 번째 시즌인 2024~2025시즌에야 내가 원하는 팀의 상에 가깝게 선수단을 꾸려서 치를 수 있었다. 사실 이전 두 시즌에 비해 팀 전력은 약해진 것 같기도 하지만, 내가 구현하고 싶었던 조직력이나 시스템을 가장 잘 만들었던 것 같다. 팀 전체가 똘똘 뭉쳐 만들어낸 우승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아본단자 감독은 2022~2023, 2023~2024시즌 챔피언결정전 이후 패장 인터뷰에서 듣기에 따라서 선수 탓을 하는듯한 뉘앙스의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본 기자도 이에 대하 비판적인 칼럼을 쓰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묻자 아본단자 감독은 “그렇게 나쁜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만, 확실하게 말하고 넘어가고 싶다. 감독으로서 선수들에게 책임감과 성장을 위한 동기를 부여해주고픈 마음에 남긴 인터뷰였다. 평소 내 지론은 너무 선수들을 과잉보호할 경우 성장이 더디다고 생각한다. 선수 탓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더라도 내 입장에선 선수들의 성장을 위한 발언이었다”하면서 “아울러 그런 부정적인 뉘앙스의 인터뷰를 남긴 이유 중에는 일부 선수들은 기본적인 요구를 잘 듣지 못한 측면도 있었다. 감독으로서 좀 화가 났었던 것도 사실이다”이라고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메이필드 호텔=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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