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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하지 못하면 민심은 바로 떠난다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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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하지 못하면 민심은 바로 떠난다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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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16일 전북 정읍시 정읍역 앞에서 열린 유세에서 시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16일 전북 정읍시 정읍역 앞에서 열린 유세에서 시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김태규 | 사회부장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은 항우군 토벌에 공을 세운 한신을 숙청 대상으로 삼았다. 그를 장안으로 압송해 곁에 두고 감시하던 유방은 한신에게 “내가 얼마나 많은 군대의 장수가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한신은 “폐하는 10만명을 거느리는 장수에 불과하다”고 했고 “그럼 그대는 어떠한가”라는 질문에 “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다다익선)고 했다. “그대는 어찌 10만명의 장수감에 불과한 나에게 잡혔는가”라는 유방의 질문에 한신은 “폐하는 병사의 장수가 아니라 장수의 장수이기 때문이다. 폐하는 하늘이 만든 것이지 사람의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일견 겸양의 모습을 보이며 주군을 띄워주는 발언 같았지만 유방은 ‘다다익선’이라는 표현에서 한신의 야망과 욕심을 보았고 결국 그를 제거했다.



권력을 가진 이의 선을 넘는 욕망은 이토록 위험하다.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윤석열도 권력 행사의 선을 넘어 장기 독재를 목표로 한 헌법파괴형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헌법재판소는 윤석열의 위헌·위법 행태를 조목조목 짚으며 그를 파면하면서도 “국회는 당파의 이익이 아닌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한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입법 권력의 절제를 강조한 부분이었다. ‘21세기 폭군’을 법의 이름으로 정리했으니 그가 사라진 새 세상에선 ‘자제와 관용’의 정치 문화가 싹트길 바랐다.



그러자 이번엔 대법원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대법원 소부에 배당된 당일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9일 만에 이를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하는 과정에선, 대선을 한달여 앞두고 사법권 행사를 절제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대법원이 후보자에 대해 유죄 판결을 한다고 해서 다수의 유권자들이 지지를 철회할 거라고 믿는 것은 오만입니다. 대법원의 높은 법대에 앉아 지극한 의전에 물들어 자신을 과대평가한 것”(김주옥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이라는 분석이 정확했다. 대법원의 행태를 “너희들이 주권자 같지? 너네들은 내 밑이야”라고 표현(노행남 부산동부지원 부장판사)한 것도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윤석열을 몰아내고 일상으로 돌아간 국민들이 다시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온 뒤에야 이재명 후보 재판은 대선 이후로 미뤄질 수 있었다. 민주당은 현직 대통령의 재판 진행을 정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과 당선 목적 허위사실공표에서 ‘행위’를 삭제해 이 후보에게 면소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공직선거법 개정을 추진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법관·재판연구관에게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고 12·3 내란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수사하겠다는 특검법도 발의했다. 대통령 당선자의 형사 재판 진행을 정지하는 제도만으로 충분한데, 이 후보 보호를 위한 겹겹의 방어막을 치려 한 것이다. 심지어 형사소송법 개정안에서는 ‘무죄, 면소, 형의 면제, 공소기각의 재판을 할 때’는 대통령의 형사 재판을 계속할 수 있게 했다. 이 조항대로라면 현직 대통령 재판은 무죄 결론을 정했을 때만 진행하고 유죄일 때는 진행하지 말라는 얘기가 된다. 황당한 내용이다. 원안에는 없는 내용이었지만 지난 7일 법안소위 심사 과정에서 박균택 민주당 의원의 제안으로 갑자기 삽입됐다. “법원·검찰에 의해서 임의로 대통령 자격을 박탈하는 이런 상황이 헌법 84조(대통령 불소추 특권)의 취지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고 심도 있는 논의 없이 그대로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까지 통과했다. 이 조항이 현실에서 시행된다면 블랙코미디가 될 것이다.



‘다다익선’이 위험한 건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다익선의 세계관에선 절제란 없다. 이재명 후보가 6·3 대선에서 승리하면 입법권까지 갖춘 강력한 정부를 이끌게 된다. 강한 권력과 다다익선의 결합은 재앙이다. 한때 80%가 넘는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문재인·민주당 정부도 ‘내로남불’과 ‘20년 집권론’으로 상징되는 오만한 권력 행사를 거치며 ‘윤석열 검찰 정권’이라는 괴물을 빚어냈다. 절제하지 않으면 바로 떠나는 게 민심이다.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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