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보다 임박한 'AI 특이점'
지식권력에 대한 대중의 불신
시험권력의 대안도 찾아내야
지식권력에 대한 대중의 불신
시험권력의 대안도 찾아내야
AI를 업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직장의 모습을 그려달라는 주문에 챗GPT가 생성한 이미지. 챗GPT 캡처 |
학교에 복귀한 후 기획하고 있는 책이 있는데, 인공지능(AI)에게 책 제목을 알려주고 목차를 잡아보게 하였다. 놀랍게도 절반 정도의 일치를 보였다. 내가 이전에 썼던 논문이나 발표를 AI가 검색하고 답을 내놓는 알고리즘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AI 작동체계가 그러하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거사(?)를 꾸미다가 들킨 것 같아서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AI가 어디까지 갈 수 있으려나 궁금하다. 미국 사례지만, AI 능력이 변호사 시험과 의사 자격시험의 평균점을 넘어섰다고 한다. 대표적 전문직 자격시험의 답안을 순식간에 제출할 수 있는 지식과 추론 능력을 이미 갖고 있으니, AI가 인간 능력을 추월하는 특이점(singularity)이 예측보다 더 빨리 올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넷이 대중화됐던 것이 1990년대 중반쯤이니 벌써 한 세대 전이다. 당시 가장 곤혹스러워했던 직업군이 교수, 의사 등 전문직이었다. 지식 독점이 전보다 쉽게 깨졌고, 하얀 가운의 권위도 달라졌다. 미리 관련 지식을 검색하고 온 환자와 학생들 앞에 당당히 서려고 전문직들은 더 공부해야 했고 더 겸손해져야 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거짓 지식을 추려내는 일도 동시에 해야 했다. 물론 일반인들은 오랜 기간 교육받은 전문가의 벽을 넘지는 못했고, 지금도 자격증의 위엄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지식의 공유와 쉬운 접근은 사회를 더 활기차게 하고 지식의 진화를 용이하게 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었다. 동(東)에서 서(西)로 종이책 제조기술이 전수됐던 사건이 르네상스의 기반이 되었고,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이후 종교 혁명이 전개됐던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작년 12월 '아닌 밤에 홍두깨' 같았던 계엄이 있었고, 이후에 많은 사람들의 법지식이 갑자기 늘었다. 일반인들의 법지식이 늘수록 판결에 대한 갑론을박이 생겨났고, 시험 봐서 그 자리에 오른 권력에 대한 의구심도 늘어났다. 어려운 시험을 거쳤기에 아예 다른 세상 사람들로 생각했던 시험 권력에 대한 신뢰에도 균열이 가는 듯하다. 30여 년 전 의사들 앞에서 다른 진단(?)을 거리낌 없이 내놓기 시작했던 환자들처럼 법관 판결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늘었다. 사람들이 의사의 오진을 의심했듯이 오판에 대한 의문 역시 논리적으로 표출되는 것을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다.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기술의 진보에 따라서 지식권력과 시험권력은 계속 도전을 받게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가장 반칙이 많았던 월드컵 축구는 가장 최근 대회라고 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반칙 횟수가 늘어나는 것이다. 축구 선수들의 반칙이 계속해서 많아졌다기보다는 보는 눈이 많아지고 부정을 잡아내는 기술이 더 정확해진 것이 이유일 것이다. AI가 가져오고 있는 기술 진보가 탈권위 사회로의 이행을 더 빠르게 할 것 같다. 전문직들의 스트레스도 가중될 것이다. 지식권력 혹은 시험권력의 쇠퇴는 불가피하겠지만, 이를 대체할 권력의 발굴 혹은 시스템 설계가 용이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결국 권력에 대한 정확하고 지속적인 감시와 겸손한 권력의 사용이 답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어떻게 하면 권력을 겸손하게 사용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했는데, 그런 고민을 숙고할 때가 이제는 온 것 같다.
김세용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전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