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 플랫폼(Meta Platforms)이 라마 4 베헤모스(Llama 4 Behemoth) 공개 시점을 제차 연기했다. 당초 이 모델은 2025년 4월 개최된 메타의 첫 번째 AI 개발자 컨퍼런스인 ‘라마 컨퍼런스(Llama Conference)’에서 데뷔할 계획이었으나 6월로 한 차례 연기된 데 이어, 현재는 가을 또는 그 이후로 다시 미뤄졌다.
월스트리트저널(The Wall Street Journal)은 메타가 베헤모스를 출시해도 될 만큼 충분한 성능 향상이 이뤄졌는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부 직원들은 이전 버전보다 개선 폭이 미미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등 메타 내부에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고 알려졌다.
라마 4 베헤모스 출시 연기는 단순히 메타의 일정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이는 AI 업계 전체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가장 강력한 AI 모델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파라미터 수를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실제 활용도와 효율성, 현실 세계에서의 성능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레이하운드리서치(Greyhound Research)의 수석 애널리스트 겸 CEO 산치트 비르 고기아는 이번 상황을 단순한 일정 차질이 아닌, “무작정 스케일을 키우는 방식에서 벗어나, 제어 가능하고 유연한 AI 모델로의 전환이라는 더 큰 흐름을 반영한다”라고 해석했다.
고기아는 출시를 연기하는 이유를 메타가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보도에서 “용량 제약”이라는 표현이 언급된 점을 들어 인프라, 사용성, 실제 배포 과정에서의 압박이 크다는 사실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라마 4 베헤모스는 어떤 모델인가?
베헤모스는 메타의 라마 시리즈에 단순히 추가된 모델이 아니다. 이 모델은 라마 4 시리즈의 핵심이자 ‘정점’으로 설계됐다. 메타는 베헤모스를 라마 스카우트(Llama Scout)와 매버릭(Maverick)처럼 더 작고 민첩한 모델들을 훈련하기 위한 ‘교사 모델(teacher model)’로 개발 중이다. 앞서 메타는 이 모델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LLM”이라고 자평하며 강력한 AI 역량을 가진 차세대 모델로 소개한 바 있다.
기술적으로 베헤모스는 성능과 효율성을 동시에 극대화하기 위해 설계된 ‘MoE(Mixture-of-Experts)’ 아키텍처 기반으로 구축됐다. 이 모델은 총 2조 개의 파라미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추론 시에는 이 중 2,880억 개가 활성화되는 구조다. 이는 현재의 AI 기준으로도 압도적인 규모다.
베헤모스가 특히 주목받았던 이유는 iRoPE(interleaved Rotary Position Embedding)라는 아키텍처를 채택했다는 점이다. 이 구조 덕분에 모델은 최대 1,000만 토큰에 달하는 장문의 컨텍스트 윈도우를 처리할 수 있다. 이는 이론적으로 베헤모스가 대화나 데이터 작업 중 기존 모델보다 훨씬 더 많은 맥락 정보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론이 현실에서 항상 매끄럽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고기아는 “메타의 베헤모스 출시 연기는 규모 확장 우선 전략에서 배포 우선 전략으로 전환하는 시장 흐름과 맞닿아 있다. 기업이 직업 제어할 수 있는 공개 LLM과 SLM이 이 같은 재편의 중심이며, 신뢰할 수 이는 엔터프라이즈 AI의 미래를 구성할 핵심 요소”라고 말했다.
베헤모스, 기대만큼의 성과 못 보여
2025년 4월 처음 미리보기 형태로 공개됐을 당시, 베헤모스는 메타가 오픈AI의 GPT-4.5, 앤트로픽의 클로드 3.5 및 3.7, 구글의 제미나이 1.5 및 2.5 시리즈 등 AI 모델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경쟁사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모델로 소개됐다.
각 모델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다. 오픈AI의 GPT-4 터보(GPT-4 Turbo)는 논리적 추론과 코드 생성에서 강력한 성능을 유지하고 있으며, 앤트로픽의 클로드 3.5 소네트(Claude 3.5 Sonnet)는 성능과 비용의 균형, 그리고 운영 효율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구글의 제미나이 프로 1.5(Gemini Pro 1.5)는 멀티모달 작업 처리 능력과 엔터프라이즈 툴과의 통합성에서 두드러진 경쟁력을 보인다.
이에 비해 베헤모스는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ematics) 계열 벤치마크와 초장문 처리 과제에서 강한 성능을 보였지만, 상업용 및 엔터프라이즈급 벤치마크 전반에서는 뚜렷한 우위를 입증하지 못한 상태다. 이 같은 모호한 성과가 메타가 공개 출시를 주저하게 된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고기아는 이번 상황이 “더 크면 더 좋은가?”라는 AI 업계의 핵심 논쟁을 다시 불붙이고 있다고 언급했다. 최근 기업 고객 사이에서는 복잡한 인프라와 긴 도입 기간을 요구하는 초거대 기반 모델보다 통제할 수 있고 통합이 쉬우며, ROI가 명확한 SLM(Small Language Model)과 직접 제어할 수 있는 공개 LLM에 대한 선호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AI 산업의 변화를 보여주는 신호탄
베헤모스 출시 연기는 AI 산업이 향하고 있는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23년과 2024년 대부분의 화두는 ‘누가 더 큰 모델을 만들 수 있는가’에 집중됐지만, 모델의 규모가 커질수록 추가된 파라미터에 따른 성능 향상 효과가 점차 둔화하기 시작했다.
이제 AI 전문가와 실무자 사이에서는 더 똑똑한 아키텍처 설계, 도메인 특화 전략, 배포 효율성이 새로운 성공의 기준으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메타가 선보인 소형 모델 스카우트와 매버릭도 이런 흐름을 뒷받침한다. 실제로 많은 사용자가 이들 모델이 특정 용도에 더 실용적이고 미세 조정도 수월하다고 평가했다.
여기에는 재무적 부담과 지속가능성 문제도 존재한다. 베헤모스와 같은 초거대 모델을 학습하고 실행하려면 방대한 연산 자원과 에너지, 그리고 정밀한 최적화 작업이 필수적이다. 메타처럼 인프라가 탄탄한 기업조차도 이 같은 규모의 모델을 운영하는 데 있어 비용, 응답 지연, 안정성 등 다양한 운영상 상충 요소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또한 이번 출시 연기는 단순히 메타라는 한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AI 도입에 관해 훨씬 더 근본적인 선택의 갈림길에 직면했음을 보여준다.
이제 기업은 무작정 큰 모델을 좇기보다는 통제 가능성, 규제 대응 준비, 설명 가능성을 갖춘 모델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고기아는 “사용성, 거버넌스, 현실 적용 가능성은 특히 금융, 헬스케어, 공공 분야처럼 규제가 엄격한 산업에서 AI 도입을 결정하는 핵심 기준이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베헤모스 출시 연기는 오히려 라마 4 스카우트처럼 오픈 웨이트 기반의 배포 친화적 모델, 또는 기업 워크플로우에 최적화된 서드파티 솔루션의 도입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제 선택의 기준은 단순한 성능 경쟁이 아니라, AI 역량을 어떻게 특정 비즈니스 목표에 정밀하게 맞출 수 있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실패라기보다는 일시적 멈춤
메타의 출시 연기는 실패라기보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일시적 멈춤으로 봐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 결정은 메타가 과장된 기대보다 안정성과 실질적 영향력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베헤모스는 강력한 AI 도구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있지만,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성능 일관성, 확장성, 엔터프라이즈 통합 역량이라는 핵심 영역에서 입증된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고기아는 “모델 규모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새로운 기준이 부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몇 달간 메타가 베헤모스를 정교하게 다듬고 AI 산업 전반이 ‘배포 중심 시대’로 진입함에 따라, 한 가지는 분명해지고 있다. 업계는 이제 AI 과시의 시대를 넘어, 실제로 적용할 수 있고 책임감 있는 AI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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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ana Swain editor@it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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