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식의 단편소설 <칼리스토 법정의 역전극>에서 상대편 변호사 마금희는 변론 도중 재판 내용과 동떨어진 자료들을 이것저것 언급하며 그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횡설수설을 반복한다. 우주 최강의 승률을 자랑하는 변호사라더니 이 무슨 엉뚱한 행동인가 싶지만, 심지어 “그렇게 나 자신에게 되뇌네, 기억이 나지 않아. 잊고 싶어” 노래까지 부르며 변론을 마무리하는 동안 인공지능이 예측한 ‘우리 편’의 승소 확률은 뚝뚝 떨어진다.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다. 새로운 증거를 내놓은 것도 아니고 변론이 그럴듯했던 것도 아닌데 왜 우리의 승소 확률이 낮아진 것일까. 눈치 빠른 우리 주인공이 내뱉은 한마디. “마금희, 이 양반이 어뷰징을 걸었네.”
목성의 위성 칼리스토에 자리 잡은 이 법정에서는 로봇 판사가 재판을 주재한다. 로봇 판사라면 마금희의 막강한 영향력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한 판결을 내려줄 것이라 기대하며 이곳 법정을 선택한 참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판결문을 학습한 인공지능은 콩 심은 데 콩, 팥 심은 데 팥을 내놓을 뿐이다. 그동안 범죄를 저지른 수많은 권력자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변명을 내세우며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갔다. 로봇 판사는 이런 판결들로 학습했기에 그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문장만으로도 피고인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과연 우주 최강의 변호사다운 어뷰징 전략이다.
무릎을 치면서 유쾌하게 읽었던 소설이었는데, 이제는 다시 읽어도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소설 바깥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뷰징 사례들이 소설의 상상력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만든 탓이다.
목성의 위성 칼리스토에 자리 잡은 이 법정에서는 로봇 판사가 재판을 주재한다. 로봇 판사라면 마금희의 막강한 영향력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한 판결을 내려줄 것이라 기대하며 이곳 법정을 선택한 참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판결문을 학습한 인공지능은 콩 심은 데 콩, 팥 심은 데 팥을 내놓을 뿐이다. 그동안 범죄를 저지른 수많은 권력자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변명을 내세우며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갔다. 로봇 판사는 이런 판결들로 학습했기에 그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문장만으로도 피고인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과연 우주 최강의 변호사다운 어뷰징 전략이다.
무릎을 치면서 유쾌하게 읽었던 소설이었는데, 이제는 다시 읽어도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소설 바깥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뷰징 사례들이 소설의 상상력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만든 탓이다.
법원은 그 전에 없었고 그 후에도 아직 적용된 바 없는, 구속기간 산정에 대한 전무후무의 1인 맞춤형 법 해석을 통해 내란 수괴를 풀어주었고 검찰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잘못된 해석이다, 관행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다른 수감자들의 석방 요구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같은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법원과 검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는 화창한 봄날에 개와 산책하고 맛집에서 보리밥을 즐기는 자유로운 범죄자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어디 이뿐이랴. 대법원은 유력한 야당 정치인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9일 만에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고 뭐가 그리 급한지 통지문을 직접 인편으로 전달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빠른 재판 진행, 통지문 직접 전달이 가능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사법 왕국을 다스리는 고관대작들께서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구나. 그동안 산재, 전세 사기, 여러 사회적 참사 피해자들이 오랜 법적 절차에 시달리며 보냈던 고통의 세월은 다 뭐였단 말인가.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질서정연한 사회’란 단순히 정의의 원칙이 잘 지켜지는 사회가 아니라 다른 사람도 모두 동일한 정의의 원칙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모든 이가 인정하는 사회, 그리고 사회의 기본제도가 이러한 원칙을 충족시키며 이 사실 또한 사람들이 널리 알고 있는 사회라고 했다. 타인들과 사회제도가 정의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나 홀로 정의의 원칙을 따르고 규칙을 지킬 이유는 없다. 정의의 실제 작동만큼이나 정의가 작동한다는 사회구성원들의 신뢰가 중요하며, 이것이 사라졌을 때 자기충족적 예언이 되어 사회질서는 급속히 무너진다. 최근 사법 엘리트들의 어뷰징이 초래한 여파는 단지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에만 그치지 않는다.
온라인 기사 댓글 창에서는 이럴 바에야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에게 재판을 맡기자는 의견이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불공정한 판례를 쌓아온 이들 덕분에, 칼리스토 법정에서처럼 그 결과를 낙관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소설에서처럼 우리도 어뷰징 기술로 맞대응을 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것 자체가 일련의 셀프 어뷰징 사건들이 가져온 크나큰 해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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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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