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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이 온다고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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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이 온다고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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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대구 중구 남산동에서 유권자들이 제21대 대통령 선거 벽보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5일 대구 중구 남산동에서 유권자들이 제21대 대통령 선거 벽보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복지국가재구조화연구센터장



차기 정부에 대한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윤석열 정부가 자행한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폭정과 만행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대통령의 부인은 고가의 명품백과 목걸이 수수 의혹을 불렀고, 곧게 뻗어가야 할 고속도로는 사사로운 이해에 따라 휘어질 뻔했다. 채 상병의 죽음은 은폐되었고 언로는 막혔으며 대통령과 배우자는 법 위에 군림했다. 급기야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시민이 피와 땀으로 일군 민주주의를 압살하려고 했다. 뻔뻔스러운 거짓말과 궤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도 반성하지 않고 원로 정치인 흉내를 내고 있다. 누구의 말처럼 그 입 좀 다물었으면 좋겠다.



여기저기서 희망 섞인 말들이 들려온다. “이제 뭔가 달라질 거야.” “적어도 지금보단 나아지겠지.” 나아질 것이다. 적어도 윤석열식 기괴한 일은 겪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러나 지난 30년을 돌아보면 정권교체에 대한 높은 기대는 예외 없이 실망으로 끝났다. 해방 이후 첫번째 평화적 정권교체는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넘어서 한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길을 열었다. 그러나 민주당 정부 10년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는 더 불평등해지고,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부가 세습되는 사회가 되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보수 정부도 다르지 않았다. 아니, 더 심각했다. 민주당 정부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비난했지만, 보수 정부 9년 동안 성장률은 더 낮아졌고 민생은 더 힘들어졌다. 국민은 불의한 보수 정부를 탄핵했고 민주당 정부에 다시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부동산과 불공정으로 대표되는 실정으로 민주당은 집권 5년 만에 ‘손바닥에 왕(王) 자’를 그려 넣은 윤석열에게 정권을 넘겼다.



하지만 이 모든 책임이 대통령과 집권 세력에게만 있는 것일까? 유권자의 책임은 없나? 정당과 정치인은 본능적으로 표가 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표가 되지 않으면, 정당과 정치인은 그 일을 하지 않는다. 정권교체로 새로 들어섰던 정부가 국민의 기대와 달리 불평등 완화와 같은 근본적 개혁을 하지 못했다면, 국민이 그 근본적 개혁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북유럽과 같은 복지국가를 바라면서, 증세와 같은 시민의 책임을 회피하는 유권자가 다수인 사회에서, 경쟁을 제일의 가치로 삼고 각자도생이 신념이 된 사회에서 정권교체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국내외 기관들은 올해 한국의 성장률을 0.8%로 전망했다. 유력 대선 후보들이 경제 살리기를 전면에 내세운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누가 집권하든 저성장 국면에 진입한 한국 경제가 3%, 5%의 성장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 0%대의 성장률을 단기간에 3%, 5%로 높이는 기적의 묘약은 없다. 만약 차기 정부가 유권자의 즉자적 기대에 부응해 단기적으로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편다면, 이는 한국 경제가 직면한 위기를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국민은 언젠가 그 비용을 고스란히 치러야 한다.



차기 정부에 대한 기대를 낮춰야 한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세상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그렇게 바뀔 것이었다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세상은 이미 바뀌었을 것이다. 정권교체가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기가 되길 원한다면, 유권자는 차기 정부가 성과를 낼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한다. 차기 정부가 국가의 장기적인 비전과 전략을 보여준다면, 적어도 10년, 20년 뒤를 보고 차기 정부를 평가할 수도 있어야 한다. 차기 정부의 정책이 당장은 입에 쓰지만 중장기적으로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살리는 정책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매서운 채찍도 필요하다. 차기 정부가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펼치는 선심성 정책은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분명한 중장기적 국가 비전과 전략도 없이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는 포퓰리즘 정치에는 더 매서운 채찍을 가해야 한다.



이번 정권교체는 달라야 한다. 차기 정부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내란을 부정했던 세력에게 또다시 나라를 맡길 순 없다. 그리고 그 책임은 다음 대통령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절반의 책임은 국민에게도 있다. 지난 30년처럼 정권교체가 엄청난 기대로 시작해 실망으로 끝나는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우리 모두의 인내와 채찍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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