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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지현 연세대 교수, 커티스 후텐하우어 미국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교수, 권순경 경상국립대 교수, 니코스 키피디스 미국 에너지부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및 공동유전체연구소 마이크로바이옴 데이터과학 그룹장./연세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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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바이옴(공생미생물) 기반 치료는 향후 개인의 장내 환경에 따라 균주를 조합해 투여하는 방식으로 진화할 것이다.”
지난달 25일 커티스 후텐하우어(Curtis Huttenhower) 미국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Live Biotherapeutic Product, LBP)가 단순 가능성의 영역을 넘어 실제 의료 현장에 도입되는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서울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열린 ‘계산분자생물학 연구–마이크로바이옴(RECOMB–Microbiome) 2025 서울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미생물 군집과 이들이 만드는 다양한 대사물질들을 말한다. 사람의 장내 환경뿐 아니라 면역과 대사, 심지어 뇌 기능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차세대 바이오 혁신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다양한 질환과 연관관계가 잇따라 밝혀지면서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해 질병을 예방, 진단, 치료하는 연구도 덩달아 가속화되고 있다.
후텐하우어 교수는 “향후 10년 내에는 질병 특성이나 개인의 장내 미생물 환경에 맞춘 맞춤형 미생물 치료제가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거쳐 등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간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는 범용적으로 설계된 미생물 조합을 기반으로 했다. 따라서 특정 질환에 대한 효과는 있었지만, 왜 작용하는지 메커니즘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특정 균주가 어떤 방식으로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지, 약물 대사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조금씩 밝혀지면서, 맞춤형 LBP로의 전환이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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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장에서 공생하는 다양한 미생물들이 컬러로 표현된 현미경 사진./Eye of Science |
후텐하우어 교수는 “암 면역요법처럼 메커니즘을 토대로 정밀 설계한 마이크로바이옴 치료법이 가능해질 거라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임상시험에서 실패한 저분자 형태의 약물 중 일부는 마이크로바이옴과의 예기치 않은 상호작용 때문일 수도 있다”며 “앞으로 마이크로바이옴과 약물 반응의 상관관계를 정밀하게 반영한 치료 설계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마이크로바이옴이 질병 진단에도 활용될 수 있다고 했다. 후텐하우어 교수는 “미생물 군집의 구성 변화는 암, 당뇨, 자가면역질환 등의 조기 신호로도 활용될 수 있다”며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진단은 아직 상용화 수준이 낮고 투자도 적어 저평가되지만, 메커니즘이 명확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니코스 키피디스(Nikos Kyrpides)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공동유전체연구소 마이크로바이옴 데이터과학그룹장 역시 “마이크로바이옴은 약물 반응을 예측하고 환자군을 분류하는 정밀 진단 도구로 성장할 수 있다”며 “건강 패러다임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고 설명했다.
그는 “2030년까지 지금 있는 일자리의 80%가 사라진다고 하는데, 마이크로바이옴 분야도 완전히 새로운 접근이 5년 안에 등장할 것”이라며 “항생제로 병원균을 죽이기보다 미생물 군집을 복원해 병원균을 자연스럽게 제거하는 방식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은 이 흐름에서 뒤처질 위험이 크다. 이날 콘퍼런스의 공동위원장을 맡은 김지현 연세대 교수는 “국내에서는 응용 중심 연구 위주로 추진됐고, 장기적 코호트(집단) 기반 빅데이터가 없다”며 “한국인은 식단과 유전적 배경, 생활 환경이 서구와 달라 국내 인구 기반의 미생물 정보 축적이 시급하다”고 했다. 코호트 연구는 수십년간 특정 인구 집단을 추적해 미생물 구성과 질병의 상관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핵심 기반이다.
분석 기술과 인력도 과제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생물학뿐 아니라 인공지능(AI), 생태계 모델링, 통계 해석 능력이 필수인 융합 분야지만, 국내 전문 인력은 부족한 상태다. 김 교수는 “마이크로바이옴은 미래 의료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마이크로바이옴 시대에 대비하려면 한국도 기초 데이터와 분석 인프라부터 다시 다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홍아름 기자(arhon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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