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VP로 우뚝 선 허일영 "조상현 감독님은 피곤한 스타일"

챔프전 7차전 14점으로 친정팀 SK에 비수
각기 다른 세 팀에서 정상 서며 '우승 청부사' 등극
"지금은 내 농구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

창원 LG의 허일영이 17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24~25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7차전 서울 SK와 경기를 마치고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뒤 환호하고 있다. 뉴스1

"플레이오프(PO) 때는 감독님이 뭐라고 하든 (슛을) 막 던져야죠."

2024~25 프로농구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MVP) 허일영이 기분 좋은 수상 소감을 전했다.

허일영은 17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24~25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7차전에서 3점슛 4방을 포함해 14점을 올리며 62-58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팀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끈 그는 기자단 투표 80표 중 32표를 얻어 타마요(23표)와 마레이(22표)를 제치고 PO MVP에 뽑혔다.

경기 후 만난 그는 "상을 처음 받아본다. 신인왕 때도 공동 수상이었고, 상금도 반반 나눴다. 3점슛 1등 했을 때는 상이 없어졌다. 이번에도 전혀 욕심을 내지 않았다"며 "다만 너무 이기고 싶었다. 유독 감이 좋았다. (3점 슛을) 더 던질 찬스가 있었는데도 참다가 1, 2개 들어갔을 때 안 막길래 더욱 자신 있게 던졌다. 그게 우승의 원동력이 아니었나 생각한다"며 정상등극과 MVP 수상 소감을 동시에 밝혔다.

챔프전의 주인공이 된 허일영이지만, 올 시즌 내내 마음 고생도 많았다. 7일 열린 챔프전 2차전 수훈선수 인터뷰 때 우승 뒤 그간의 속앓이를 털어놓겠다고 했을 정도다. 그는 "(직전 시즌까지 몸담았던 SK가) '노인즈' 얘기를 들으면서 6강에서 떨어졌고, 나이가 많은 선수들이 나갔다. 그런데 난 원래 SK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 그 팀에서 마무리를 해야겠다 생각했다"고 운을 뗐다.

허일영이 2024~25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을 확정한 후 기뻐하고 있다. 뉴스1

그러나 그의 생각과 달리 허일영은 자유계약(FA)신분으로 LG로 이적했다. 그는 "생각지도 않은 이야기를 들어서 심란했다. 함께 우승, 준우승을 했던 팀이었는데 (잔류하지 못해) 아쉬웠다"며 "결국 스스로 증명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LG에 와서도 조상현 감독님이 나이가 들었다고 계속 안 쓰더라"고 정규리그 당시를 돌아봤다.

서운함이 쌓였지만, 그는 결국 스스로 변하는 길을 택했다. 허일영은 "내가 잘하는 걸 보여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며 "감독님을 찾아가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눴고, 결국 내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놨다.

스스로 "데뷔 후 늘 조연이었다"고 밝힌 그는 "우승을 했는데 무슨 이야기든 못하겠나"라고 말하며 미소 지은 뒤 조상현 감독과의 일화를 더 소개했다. 허일영은 "감독님이 걱정이 너무 많으시다. 그만 걱정하시라고 한 번씩 짜증을 낼 때도 있다. 피곤하신 스타일"이라며 웃었다. 이어 "대신 어린 선수들에게 '코트에서만은 집중하자'고 했다"며 베테랑으로서 팀의 중심을 잡은 비결을 전했다.

허일영이 우승 후 그물을 자르고 있다. 연합뉴스

허일영은 서로 다른 3개의 팀에서 정상을 밟은 '반지 수집가'이기도 하다. 그는 세 번의 우승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당연히 지금이 가장 소중하다. 지금은 내 농구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라며 주연으로 우뚝 선 이번 우승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