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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 또다른 타이틀 '헤다 가블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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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 또다른 타이틀 '헤다 가블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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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다 가블러 이영애 / 사진=LG아트센터 제공

헤다 가블러 이영애 / 사진=LG아트센터 제공


[스포츠투데이 임시령 기자] '헤다 가블러' 속 이영애의 얼굴은 새롭다. 우아하지만 차갑고, 완벽하지만 비극적이다. 32년 만에 무대에 오른 이영애에게 새로운 타이틀이 추가되는 순간이다.

세계적인 극작가 헨리크 입센이 쓴 원작 희곡 '헤다 가블러'는 억압된 시대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한 여성의 내면을 집요하고 섬세하게 파고든 고전 명작이다. 리처드 이어의 각색으로 현대적으로 재탄생했다.

이영애가 32년 만에 선택한 연극이기도 하다. '헤다 가블러'란 타이틀을 갖고 싶다는 욕망, 배우로서 다양한 면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은 그를 움직였다.

"''헤다 가블러'란 작품을 예전부터 관심 있어했어요. 연극을 하게 되면 이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타이밍이 잘 맞았죠. 출산과 육아, 또다른 사회생활을 통해서 삶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생긴 지금 50대가 헤다를 그리기에 적절했다고 생각해요".

작품은 주인공 헤다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헤다는 지적이지만, 차갑고 예민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충동적인 결혼 후 답답한 일상, 지루함, 비틀린 욕망을 못 이겨 스스로 파멸에 이르는 비극을, 이영애는 오롯이 그려냈다.

이영애는 그런 헤다 가블러에 이끌렸다. 그는 "저와 비슷한 이미지가 있거나, CF에서 생각하는 이미지로 연기하면 재밌지가 않다"며 "120년 전 관습, 결혼에서 도망가는 입장을 그리는 건 요즘 시대와 대척점에 있다. 여자라는 것을 떠나 현재 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많겠냐. 심리상담하는 분이 이 연극을 보고 '헤다 같은 환자가 많이 있다'라더라. 겉으로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일지라도 그 속엔 조금이나마 헤다가 있지 않나 싶다. 이것을 연극적인 면에서 풀어보고 싶어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헤다라는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원본의 완역본도 함께 공부한 그다. 120년 전 입센이 어떤 생각을 갖고 지문을 썼을지, 온전한 그 사람의 생각을 알고 싶었단다. 이영애는 "'헤다'는 120년 전만 해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여자였다. 저는 강하고 센 여자라기보다는 예민하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구석에 있을법한 헤다를 그리고 싶었다.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마저도 우리 사회에 있는 사람 아닐까. 헤다는 백프로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사람이란 게 그렇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럴 수 있겠다'는 장치적 요소들을 현대적으로 가미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헤다를 표현하는데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원작에서 강렬함의 크기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겠더라. 제가 그리고 싶은 헤다는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지만 그 안에 어두운 욕망을 갖고 있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영애는 헤다라는 인물을 통해 그간 보여주지 못했던 다양한 감정, 표정을 과감히 펼쳤다. 고풍스러운 우아함이 주위를 감싸고, 강렬함은 가랑비처럼 천천히 스며들었다. 파괴적이고 강렬한 헤다는 이영애만의 분위기를 만나 재탄생했다.


3개월 동안 연습하고, 고뇌하고, 노력하며 헤다를 만들어나간 이영애다. 그는 "행복한 짐이다. 힘들지만, 몇 배 고통의 선물이다. 첫 공연에선 대사 틀리지 말고 주어진 매뉴얼대로만 하려고 했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것을 많이 내보이지 못해 아쉬움이 큰데, 지금은 제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고 있다. 무대 위에서 즐기면서 꺼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헤다 가블러'를 통해 연극의 매력을 느꼈다며 "배우로서 3배, 4배 재밌는 경험을 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배우고 반성도 됐다. 다른 작품은 무엇을 하든 더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온전히 관객들과 심리 게임을 할 수 있는 그런 밀도 있는 공간에서 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며 눈을 빛냈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요. 대사 잃어버리는 꿈, 관객이 나가는 꿈까지 꿀 정도였죠. 연극 베테랑 배우들 사이에서 내가 잘 버틸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 속에서 이겨나가면서 깨우치고 공부가 되고, 무대 위에서 희열을 느끼고 있어 행복해요. 연극하는 이영애가 아닌 헤다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헤다를 해석하고 또 해석하며 갈고닦고 있습니다".

한편, 이영애 주연 '헤다 가블러'는 LG아트센터 서울에서 6월 8일까지 공연을 올린다.

[스포츠투데이 임시령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