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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저물녘에 비로소 보이는 삶의 아름다움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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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저물녘에 비로소 보이는 삶의 아름다움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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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인의 유고 시집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가 그의 1주기(5월22일)를 앞두고 출간되었다. 사진은 2008년 5월 자신의 시로 잘 알려진 남한강 목계나루에서 경부대운하 건설에 반대하는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 일행과 만나 환담을 나누는 시인의 모습.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신경림 시인의 유고 시집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가 그의 1주기(5월22일)를 앞두고 출간되었다. 사진은 2008년 5월 자신의 시로 잘 알려진 남한강 목계나루에서 경부대운하 건설에 반대하는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 일행과 만나 환담을 나누는 시인의 모습.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지난해 세상을 뜬 신경림 시인의 1주기(5월22일)를 앞두고 고인의 미출간 시들을 모은 유고 시집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가 출간되었다. 몇몇 추모시와 기념시를 제하면, 대체로 2014년에 낸 생전 마지막 시집 ‘사진관집 이층’ 이후 쓴 작품들이 묶였다.



이 시집의 시편들이 쓰인 무렵은 시인의 80대 10년에 해당하고, 그 시기는 노년의 완숙함과 함께 어쩔 수 없는 쇠락을 그림자처럼 거느려야 했던 날들이기도 하다. 그 점을 반영하듯 시집에는 병실이 배경이거나 미구에 닥칠 죽음을 연습하는 듯한 작품들이 적지 않다.



“강을 하나 건너면서 어깨에 진 것 벗어놓고/ 산 하나 넘어서면서 손에 든 것 버리고/ 이제 나는 빈손, 가볍게 손을 털다가/ 깨어나니 간호사가 주사액을 갈고 있다”(‘둔주(遁走)’ 부분)



도망쳐 달아나거나 목적지 없이 여기저기 배회한다는 뜻을 제목 삼은 이 시에서 시인은 병원 침대에 누워 환상과 현실을 오가고 있다. 환상 속에서 그는 길을 걷는 나그네가 되어 어깨에 진 짐이며 손에 든 물건이며를 하나씩 버리고 한껏 자유로워지는데, 환상에서 깨어 보니 현실은 간호사가 주사액을 갈고 있는 병실이다. 시인이 환상 속에서 걷는, 자유를 향한 길이란 죽음으로 가는 여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병상에서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시편들로 ‘들국화’ ‘병중(病中)’ 같은 작품들이 있다. ‘들국화’에서는 문병 온 벗들이 꽃병에 꽂아 둔 들국화에 촉발된 상상의 여정이 고향 마을의 신작로와 주막집, 정미소, 수수밭 등으로 이어지다가 “간호사가 혈압을 재고 나가는 소리에 눈이 뜨인다.” ‘병중’은 저승에서 만난 부모님과 안부를 주고받으며 눈에 눈물도 맺히는 순간 “할아버지, 하고 손녀딸이 부르는 소리”에 의식이 돌아오는 상황을 그렸다.



‘길’이라는 제목의 시집을 내기도 한 신경림은 ‘길의 시인’이라 불릴 정도로 길과 여행을 자주 노래했다. 이번 시집에 실린 작품 ‘다시 길로’는 자신의 삶에서 길이 지니는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길을 통하여 세상으로 나왔고/ 길을 통하여 사람들과 만났다/ 빛과 그림자를 보았고/ 눈물과 한숨을 익혔다/ 길을 통하여 빛보다 그늘이/ 더 빛난다는 것을 배웠고/ 사람들보다 더 많은 별들이/ 사람들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다시 길로’ 부분)



앞서 인용한 ‘둔주’에서도 보았다시피, 길의 시인 신경림에게는 죽음조차도 하나의 여행으로 인식된다. “여권도 항공권도 없는 여행을 떠날 거야”(‘비대면 시대의 여행’)라거나 “저 길 끝에 어머니가 사시는 동네가 있을 것 같다// 아득하고 멀다”(월야 2’) 같은 구절들에서 시인은 죽음이라는 여행을 기약하거나 예견한다. 지상의 여행에 견주면 멀고 아득하기만 한 그 여행길에서는 그런데 잃는 것에 못지않게 얻는 것도 많다는 사실을 특기할 만하다. 무엇을 얻는다는 말일까.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l 신경림 지음, 창비, 1만3000원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l 신경림 지음, 창비, 1만3000원


“흙먼지에 싸여 지나온 마을/ 멀리 와 돌아보니 그곳이 복사꽃밭이었다”



시집 맨 앞에 실린 ‘고추잠자리’의 도입부다. 범상한 여행시 같지만, 삶과 죽음과 노년에 관한 은유적 통찰로 읽는 게 좋겠다. 삶이란 그 한복판을 지나는 이에게는 흙먼지투성이이거나 진창길로 인식되기 십상일지라도, 그 힘겹고 어지러운 과정을 다 지나친 뒤에 돌아보면 무릉도원과 같은 유토피아더라는 깨달음을 이 시는 건넨다.



기왕이면 흙먼지와 진창길 한가운데에서 그런 깨달음을 얻는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홍진(紅塵)과 이토(泥土) 속에서나마 도화(桃花)의 황홀함을 만끽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깨달음은 하필 뒤늦게 찾아온다는 데에 세상사의 어려움과 미묘함이 있다. 노년이 되어서야, 심지어는 죽음을 코앞에 두고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꽃 뒤에 숨어 보이지 않던 꽃이 보인다./ 길에 가려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인다.// 나무와 산과 마을이 서서히 지워지면서/ 새로 드러나는 모양들./ 눈이 부시다./ 어두워오는 해 질 녘.// 노래가 들린다. 큰 노래에 묻혀 들리지 않던./ 사람에 가려 보이지 않던 사람이 보인다.”(‘해 질 녘’ 전문)



‘고추잠자리’에 이어지는 이 시의 배경은 하루가 저물어 가는 황혼 무렵. 한낮의 양광이 흐릿해지고 어둠과 그늘이 빛이 있던 자리를 채우는 이 시간대를 삶의 끝자락에 대한 비유로 이해하는 독법은 매우 자연스럽다. 밝고 환한 빛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어둑발이 내린 뒤에 오히려 더 잘 보인다는 역설이 오묘하다. 저물어 가는 시간대에는 귀 또한 새롭게 열리는 것인지, 낮 동안 듣지 못했던 노래를 새겨 듣게 된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 노래는 아마도 작은 소리의 노래일 터이고, 그에 기대어 다시 생각해 보면 대낮의 빛 속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의 정체가 좀 더 분명해진다. 크고 화려한 꽃이 아니라 작고 소박한 꽃, 번듯한 신작로가 아니라 호젓한 소로, 잘났다며 설치는 사람이 아니라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저물녘에야 비로소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것. 작고 소외된 것들에 눈길을 주었던 시인의 평생 시업이 도달한 결론이다.



“멀리서 바라보는 산동네는 아름답다/(…)/ 밤이면 창문마다 별들이 매달리겠지/ 새벽이면 기우뚱 마을 뒤로 초승달이 지고//(…)// 들어가 걸어보면 산동네는 더 아름답다/ 멀리서도 아름답고 가까이서도 아름답다”(‘멀리서도 가까이서도’ 부분)



여기서는 빛과 어둠의 대비가 원근의 대비로 바뀌었다. 산동네를 멀리서 바라보며 아름답다 느끼는 것이 풍경으로서 관조의 대상으로 삼는 태도라면, 가까이 들어가 그 아름다움을 직접 확인하는 일은 대상과의 일체화이자 적극적 참여와 실천 행위라 할 것이다. 삶은, 살아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시집의 주제가 그로부터 이끌려 나온다. 죽음을 앞둔 시인이 살아 있는 자들에게 남긴 선언이다.



2008년 2월 한겨레와 인터뷰하는 신경림 시인. 한겨레 자료사진

2008년 2월 한겨레와 인터뷰하는 신경림 시인. 한겨레 자료사진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붉은 노을 동무해 지는 해가 아름답다/ 아직 살아 있어, 오직 살아 있어 아름답다/ 머지않아 가마득히 사라질 것이어서 더 아름답다/ 살아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부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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