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Cover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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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中東有石油, 中國有稀土).”
1992년 1월, 중국의 개혁·개방을 진두지휘하던 덩샤오핑은 네이멍구 자치구 바오터우(包頭) 지역을 방문해 이런 말을 남겼다. 특히 바오터우는 중국 최대 희토류 매장지인 바얀오보 광산이 있는 곳으로, 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이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때부터 33년 흐른 현재,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하면서 희귀한 흙, 희토류가 미국의 급소가 됐다. 희토류는 반도체뿐 아니라 액정표시장치(LCD), 발광다이오드(LED), 태양전지와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 제조업 핵심 분야에 두루 쓰인다. 그런데 중국이 지난달 4일 수출을 통제한 중(重)희토류(사마륨·가돌리늄·루테튬·스칸듐·터븀·디스프로슘·이트륨)는 사실상 중국이 독점 공급하는 자원이라 미국은 특히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WEEKLY BIZ와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분석한 결과, 물질을 구성하는 118가지 기본 요소를 나타낸 원소 주기율표상에서 중국이 주요 생산 국가인 원소는 총 30종에 이른다. 주요 정제국(14곳)까지 포괄해 주요 공급 국가(주요 생산국이거나 정제국)인 원소를 따져보니 총 34종이었다. 세계 육지 면적의 7.5%,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7% 남짓한 비율을 차지한 중국이 원소 세계에선 약 30%의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는 셈이다. 중국이 ‘주기율표의 제국’으로 군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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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성규 |
◇‘관세 포커 게임’에서 중국이 가진 牌
무기화된 희토류의 위력은 특히 중국 열세로 보였던 미·중 패권 경쟁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지난달 중국 정부가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겠다고 하자, 백악관은 약 열흘 만에 중국의 희토류 등 핵심 자원에 대한 가격 조작, 자의적 수출 제한, 공급망 지배력 악용을 우려해 국가 안보상 광범위한 조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기드온 라흐만 수석 외교 칼럼니스트는 최근 ‘시진핑이 트럼프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이유’란 칼럼에서 “트럼프는 중국과 벌이는 ‘관세 포커 게임’에서 훨씬 약한 패를 들고 있다. 트럼프가 이를 받아들일 때까지 시간을 끌수록 미국은 더 큰 손해를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고는 그 주장의 주요 근거 중 하나로 희토류를 들었다.
희토류란 주기율표상에서 원자번호 57번인 란타넘(La)에서 71번인 루테튬(Lu)까지 란타넘족 원소 15종에 스칸듐(Sc), 이트륨(Y)을 포함한 원소 17종을 뜻한다. 희토류는 사실 자연에 풍부하게 존재한다. 대표적 희토류 중 하나인 네오디뮴은 구리보다도 흔할 정도다. 그러나 순수하면서 고농도로 매장된 경우가 드물고, 다른 광물과 섞여 있어 분리·정제가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희귀하다고 한다. 희토류는 우리 주변 온갖 물품에 다양하게 쓰인다. 일례로 네오디뮴은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 전기차 모터, 풍력 터빈 발전기 등을 만들 때 쓰는 강력한 영구 자석의 필수 재료다. 전기차 80% 이상에 대당 1.6㎏의 네오디뮴을 포함한 영구 자석 모터가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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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성규 |
미국은 희토류에 더해 국가 경제·안보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수급 차질 위험성이 큰 원료나 광물 자원까지 총 50종을 ‘핵심 광물’로 분류한다. 예컨대 테슬라 모델3에 단 용량 55.4kWh짜리 배터리를 뜯어보면 6㎏의 리튬(Li), 42㎏의 니켈(Ni), 8㎏의 코발트(Co), 8㎏의 알루미늄(Al), 55㎏의 흑연과 17㎏의 구리(Cu) 등 각종 핵심 광물이 들어 있다. 오늘날 반도체, 전기차, 첨단 무기와 같은 하이테크 제품의 부가가치는 단순한 공학 기술력보다 귀하고 전략적인 원자재 확보 여부에 좌우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美, 중국 고위험군 광물 의존도 66%
미국의 문제는 이런 전략 자원 대부분을 자국에서 생산하지 못하는 데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 산하 국립광물정보센터(NMIC)가 미국 제조업과 국가 안보에 핵심적인 비(非)연료 광물 54종을 대상으로 공급 위험도를 분석했더니, 중국 의존도가 특히 심각하다고 분석됐다. 공급 위험도는 공급 차질 가능성, 무역 의존도, 경제적 취약성 등 세 요소를 종합해 산출했다. 그 결과, 전체 분석 대상 광물 중 36종이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특히 이 36종 가운데 24종의 주요 생산국은 중국이었다. 고위험군 광물의 중국 의존도가 66%에 이른다는 뜻이다.
중국산 광물 자원에 의존하는 미국의 현실은 수치보다 내용이 더 심각할 수 있다. 미 국방부는 제공권 장악의 핵심인 F-35 전투기를 한 대 만들려면 각종 부품에 희토류가 약 400㎏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신예 이지스인 알레이버크급 구축함(DDG-51)엔 희토류 2400㎏, 버지니아급 핵잠수함엔 희토류 4200㎏이 들어간다.
희토류 공급 부족은 트럼프가 부흥시키겠다는 미국의 제조업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미·중 갈등 여파로 미국이 희토류를 수입하지 못하면 미국 제조업 생산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첨단 기술 경쟁의 최전선에 있는 인공지능(AI) 분야에도 희토류 파장이 미칠 수 있다. AI의 연산력을 뒷받침하는 반도체 산업은 특정 희토류 의존도가 특히 높다. 란타넘(La), 이트륨(Y), 스칸듐(Sc)과 같은 희토류는 반도체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물질로 꼽힌다. 이 원소들은 전기 전도성, 절연 특성, 가스 감지 능력 등을 통해 반도체 장치의 처리 속도와 정밀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희토류 공급 부족으로 특수 반도체가 제대로 생산되지 못하면 미국이 주도하는 AI 기술 개발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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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성규 |
◇30년 ‘희토류 공정’의 결과
그렇다면 희토류는 어떻게 중국이 독점하게 됐을까. 우선 중국 땅에 많이 묻혀 있다. USGS 자료(2023년 기준)를 보면 중국의 희토류 매장량은 4400만t으로 전 세계에서 압도적 1위다. 베트남(2200만t), 브라질(2100만t)의 두 배를 웃돈다. 생산량으로 따져도 압도적이다. 지난해 중국의 희토류 생산량(추정치)은 27만t으로, 전 세계 생산량(39만t)의 약 70%를 차지한다. 미국(4만5000t)의 6배 수준이다. 제련·정제 등을 통한 가공량에서 중국의 점유율은 전 세계의 90%를 넘긴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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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의균 |
이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서 ‘붉은 공급망’을 확장하는 과정은 선진국이 제조 경쟁력을 잃어가는 과정과 맞물려 돌아갔다. 완성형 제조업 밸류체인(value chain·기업 활동에서 부가가치가 생성되는 과정)을 구축하고자 하는 중국의 집념은 원자재 조달에서부터 드러났다. 일찌감치 핵심 광물의 미래 가치와 중요성을 깨달은 중국은 자국에서 생산하는 광물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정책을 꾸준히 시행했다. 중국 당국은 1991년 ‘국가 보호성 채굴 광종(鑛種)으로 지정하는 것에 관한 통지’를 통해 텅스텐(W), 주석(Sn), 안티모니(Sb) 등의 주요 광물을 국가가 관리하고, 그 자원의 제련·가공·판매·수출에 관련한 허가제를 도입해 주요 광물에 대한 통제권을 틀어쥐었다.
중국이 전략 자원의 공급망 우위를 차지한 건 광물 채굴과 제련·정제 산업이 다량의 오염 물질을 수반하는 강도 높은 노동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실제로 2010년대 초 중국 장시성 룽난현의 희토류 채굴 업체 밀집 지역은 희토류가 흘러나와 하천이 시커멓게 변하고, 이 물로 지은 밥이 검은색으로 변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하버드 인터내셔널 리뷰에 따르면 희토류 1t을 생산할 때마다 13㎏의 먼지, 9600~1만2000㎥의 폐가스, 1t의 방사성 잔류물을 포함한 2000여t의 유해 폐기물이 생성된다. 저임금과 과로, 각종 유해 물질을 무방비로 다뤄야 하는 열악한 노동 환경도 심각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1970년대까지는 미국, 호주 등 서방 국가들이 희토류를 포함한 광물 자원의 생산과 공급을 장악했다. 하지만 정제 과정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환경오염 때문에 1980년대부터 서방 국가들의 희토류 생산은 퇴조한다. 미국에서도 많은 희토류 광산이 폐쇄됐다. 이즈음 중국은 값싼 노동력과 느슨한 환경 규제에 힘입어 자연스럽게 희토류 생산부터 제조에 이르기까지 독과점적 공급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중국의 칼날, 미국의 방패
2010년 9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일본 순시선은 중국 어선을 나포했다. 영유권 분쟁이 벌어지던 지역에서 중국 어선이 조업하자 영해 침범으로 간주했다. 일본은 선장까지 감금했다. 중국 정부는 강하게 항의하며 그간 갈고닦은 칼을 꺼내 들었다. 바로 희토류다. 중국은 어부 석방을 요구하며 희토류 일본 수출을 완전히 끊었다. 희토류 공급이 끊기자 일본은 단 3일 만에 중국인 어부를 풀어줬다. ‘희토류 무기화’가 얼마나 효율적인지 국제사회에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베이징은 이후 전략 자원의 공급망 우위를 적극 무기화했다. 2022년 중국 국무원의 ‘희토류 및 기타 광물 산업 외국인 투자 금지 조치’ 시행, 2023년 흑연, 갈륨(Ga), 저마늄(Ge) 등의 전략 물자 금수 조치는 미·중 경쟁에서 중국이 손에 넣은 ‘초크 포인트(choke point·조임목)’였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미국은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광산에서 자석까지(Mine-to-Magnet)’ 전략이 대표적이다. 전략 무기 생산에 차질을 우려한 미국 국방부는 지난해 국가 방위산업 전략을 통해 2027년까지 미국 국방에 필요한 자원을 공급할 수 있는 공급망 구축을 목표로 투자를 진행 중이다. 한때 환경 문제와 재정 악화로 폐쇄됐던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 패스(Mountain Pass) 광산에서 나온 희토류를 가공해 영구 자석을 자체 생산하는 식이다. 그러나 당장 수요를 충족하기엔 역부족이다.
중국을 제외하고 미국 홀로 혹은 미국과 동맹국들로만 이뤄진 안정적 광물 공급망을 갖추는 일은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 든다. 중국을 제외한 나라끼리 견고한 공급망을 구축하려면 10~15년 이상은 걸릴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기술의 미래는 중국의 전략 자원에 저당 잡혀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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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익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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