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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검찰 연락받았나요?” 물은 호텔 직원에 보이스피싱 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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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검찰 연락받았나요?” 물은 호텔 직원에 보이스피싱 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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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전 근무 중이던 정아무개(30)씨는 ‘당신의 계좌가 성매매에 사용돼 피의자로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검찰 직원이라 밝힌 상대는 오후 2시까지 금융감독원(금감원)으로 가면 계좌 추적을 통해 혐의를 벗을 수 있다며 정씨를 유인했다. 보이스피싱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지만 금감원으로 오라는 말에 점점 그의 말을 믿게 됐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그는 정씨에게 휴대전화를 새로 구입해 특정 앱을 설치하라고 했고, 약속한 시각에 정씨가 금융감독원에 도착하지 못하자 구속 수사까지 언급했다. 그는 불안해하는 정씨에게 “구치소 대신 조용한 곳에서 수사하려는 것이니 안심하라”며 주변 호텔에 방을 잡으라고 지시했다. 이후 “검찰 협조 요청을 받았다”는 경찰 사칭 전화까지 이어지자 정씨는 다급히 서울 서초구 신라스테이 호텔을 찾았다.



보이스피싱의 마수로부터 정씨를 구한 건 호텔 직원이었다. 호텔 직원은 아무 방이나 달라는 정씨 요구를 의심스럽게 여기곤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검찰 연락받고 오셨어요?” “휴대전화를 새로 사라고 하던가요?” 이어지는 호텔 직원의 질문에 정씨는 그제야 이 모든 게 보이스피싱이라는 것을 알아챘고, 이날 바로 경찰서를 찾았다.



최근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을 사칭해 피해자를 호텔로 유인해 외부와 단절시킨 뒤 돈을 뜯어내는 보이스피싱 수법이 유행하고 있다. 고립된 피해자에게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대출을 받아서 국고 계좌로 돈을 넣어야 한다고 속여 거액을 가로채는 방식이다. 경찰은 호텔 유인형 보이스피싱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며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씨의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은 신라스테이 2년차 사원 유지성씨는 15일 “호텔을 찾은 고객이 불안해 보여 회사에서 받은 관련 교육과 이전에 발생한 사례 등을 떠올려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은 것 같다고 안내했다”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고 고객분이 큰 피해를 보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호텔 쪽은 비슷한 수법에 당해 호텔을 찾는 이들이 최근 들어 한 달에 한 명꼴로 나타난다고 밝혔다. 경찰은 범행이 피해자가 위치한 근처 호텔을 지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서울 강남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유사한 범행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피해로 이어진 사례도 적지 않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달 11일 강남의 한 비즈니스호텔을 검찰 안전가옥이라고 속여 40대 여성 ㄱ씨를 유인한 뒤 6천여만원을 뜯어낸 보이스피싱 일당을 추적 중이다. 이들은 ㄱ씨 계좌가 고액 사건 대포통장으로 사용됐다며 약식 조사를 검찰 안전가옥인 비즈니스호텔 객실에서 진행하겠다며 ㄱ씨를 유인했다. 보이스피싱 일당은 ㄱ씨에게 지정계좌로 돈을 입금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속이고 공기계 휴대폰으로 대출까지 받아 송금하도록 했다.



경찰은 보이스피싱 일당이 피해자를 호텔로 유인하는 이유로 ‘피해자 고립’을 꼽았다. 경찰 관계자는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해 피해자가 자신들의 말만 듣도록 하기 위한 보이스피싱 수법”이라며 “범행 과정이 모두 비대면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추적도 힘들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나영 기자 ny3790@hani.co.kr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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