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IFRS17 후폭풍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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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도입 1년 만에 '규제 급선회'…자본압박에 보험사 '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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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 K-ICS(지급여력비율) 변동 추이/그래픽=이지혜 |
새로운 회계기준(IFRS17) 도입 이후 금융당국의 급격한 규제 변화로 보험업계가 흔들리고 있다. 지급여력비율(K-ICS·킥스) 하락과 자본 확충 부담이 겹치면서 업계 전반에 위기감이 높다.
1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IFRS17은 원칙 중심 회계기준으로 계리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 없이 보험사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진다. 보험사들은 자체적으로 가정을 세워 재무제표에 반영해왔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은 IFRS17 도입 1년 만인 지난해 보험사들이 이를 활용해 실적을 과도하게 부풀리고 있다고 판단해 계리 가정을 변경하고 그 해 연말 결산부터 즉시 반영토록 했다.
문제는 이러한 급작스러운 규제 전환이 자산건전성 지표에 직격탄이 됐다는 점이다. 이미 시장금리 하락으로 지급여력비율(K-ICS) 하락 요인이 누적된 가운데, 계리 가정까지 보수적으로 바뀌며 보험사의 부채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자료=각사, 올해 1분기 주요 보험사 자본 조달 규모, 월별 보험사 자본성증권 발행 규모/그래픽=이지혜 |
킥스는 가용자본을 요구자본으로 나눠 계산하는데 부채가 늘어나면 순자산이 줄어 가용자본은 감소하고 보험 리스크가 커져 요구자본은 증가해 지급여력비율이 이중으로 하락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보험사들은 중소형·대형을 막론하고 지난해에만 8조7000억 원 규모의 자본성 증권을 발행했다. 연간 이자비용만도 1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본 조달 비용 증가는 결국 보험료 인상 등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다. 자본 확충 압박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주요 보험사들은 연초부터 수천억 원대의 자본성 증권 발행 계획을 줄줄이 공시하며 킥스 유지를 위해 돈을 쏟아붓고 있다.
중소형사의 타격은 더욱 크다. 자금 조달 능력이 부족한 데다 계리 가정 변경으로 부채가 급증하면서 시장 신뢰 저하까지 겹친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금융당국은 자본의 질까지 규제하겠다고 나서면서 기존 자본 확충 수단인 후순위채, 신종자본증권 활용도 쉽지 않아졌다.
업계는 당국의 갑작스러운 규제 변화에 깊은 우려를 나타낸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2021년 IFRS17 도입에 맞춰 상품 포트폴리오와 시스템을 정비하며 대대적인 준비를 해왔지만, 도입도 2년이 늦어지고 이후에도 규제가 계속 바뀌면서 전략 수립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기회비용과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IFRS17 도입 2년 전부터 계리 가정 가이드라인을 당국에 요청했지만 회계 취지에 맞게 자율성을 인정하겠다는 입장에서 갑자기 급선회했다는 하소연도 이어진다.
일각에서는 외국계 보험사들의 '엑소더스'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미 푸르덴셜생명, ING생명, PCA생명 등 주요 외국계 보험사가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으며 현재 남아 있는 외국계 보험사들도 규제 리스크와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매각을 고려 중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또 다른 관계자는 "규제 방향성이 자주 바뀌는 탓에 장기적 자금조달이나 경영전략을 수립하기 어렵다"며 "자본력이 약한 중소형 보험사는 생존마저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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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마다 실력 다른데 같은 시험지, 차별적인 규제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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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투자비용 처리 방식 비교/그래픽=최헌정 |
전문가들은 국내 보험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차별적인 규제와 관리·감독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디지털·중소형사 등 보험사별 특징과 위험에 맞는 자산건전성 규제 도입이 필수로 꼽힌다.
1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재 IFRS17과 킥스는 보험사의 규모나 사업 특성과 관계없이 일괄 적용된다. 대형사든 소형사든, 대면채널 중심이든 비대면 기반이든 동일한 자본 규제를 적용받는다. 그러나 실상은 신생 디지털 보험사일수록 규제의 불합리성을 체감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IT 투자에 대한 자본 반영 방식이다. 디지털 보험사는 초기부터 시스템 구축과 데이터 인프라 확보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야 하지만 킥스는 IT 투자를 자산으로 보지 않고 즉시 비용으로 처리한다. 이로 인해 자본이 급감하고 지급여력비율이 낮아져 신사업 추진이 제약받는다. 실제로 보험사의 인슈어테크 직접 투자는 급감했다. 지난해 투자금은 약 150억원으로 전년(2500억원) 대비 94%나 줄었다.
위험계수 산정 방식도 중소형사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소형 보험사는 고정비용이 작고 사업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킥스는 이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 합산비율을 적용한다. 이로 인해 손해율 변동성이 크지 않더라도 과도한 위험계수가 산출되고 이에 따라 불필요하게 많은 자본을 쌓아야 한다.
법인세 분산효과 적용에서도 소형사는 소외된다. 이 제도는 최근 3년간 흑자를 기록한 회사에만 적용되며 설립 초기 손실이 불가피한 신생사는 감세 효과를 자본에서 전혀 반영받지 못한다.
반면 해외 주요국은 시장의 다양성 확보와 소비자의 선택권 확대를 위해 보험사 규모와 사업 복잡도, 리스크 수준 등을 감안해 차등 규제를 운영하고 있다. 유럽은 IFRS17을 적용하면서도 소형사는 소형 규제라는 비례성 원칙을 강화하기 위해 '소형단순보험회사' 개념을 도입해 보고·평가·자본요건을 완화하고 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은 차등 규제 적용으로 인해 수백 개의 보험사가 공존하고 있다.
일본은 외국계 보험사가 일본 시장에 진입할 때 일정 기간 동안 자본비율 규제를 유예하거나 완화해준다. 우리나라 금융당국도 인터넷전문은행인 토스뱅크에 대해서는 국제자본규제 기준인 바젤Ⅲ 적용을 3년간 유예하고 바젤Ⅰ 기준을 적용해준 바 있다. 바젤Ⅰ은 기본자본비율, 보통주자본비율 없이 총자본비율 8%만 충족하면 돼 초기 자본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다.
노건엽 보험연구원 금융제도연구실장은 "국내 보험업계는 실력이 각기 다른 학생에게 똑같은 시험지를 주고 같은 정답을 요구하는 구조"라며 "새로 진입하는 소형 보험사에 대해서는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자본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과도한 자본확충 압박은 캐롯손해보험, 교보디지털플래닛과 같은 사태를 반복시킬 수 있다"며 "보험사 규모, 디지털 전략, 영업 방식 등에 따라 감독 기준을 세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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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 역대급 실적인데… "배당 못줘", 주주만 피해보는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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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배당 확정 상장 보험사/그래픽=이지혜 |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11개 상장 보험사 중에서 올해 배당을 확정한 회사는 4곳이다. 삼성화재는 주당 1만9000원을 배당금으로 지급한다. 지난해 1만6000원에서 18.8% 증가했다. 삼성생명도 주당 4500원을 배당한다. 역대 최고 수준의 배당이며 2018년(2000원)의 2배가 넘는다. DB손해보험도 주당 6800원 배당을 실시했다.
대다수 보험사는 지난해 호실적에도 올해 배당하지 못했다. 해약환급금 준비금 적립 부담이 증가하면서 배당 가능 이익이 줄어서다. 해약환급금 준비금은 새 회계기준(IFRS17)이 도입되며 생긴 회계 계정과목이다. 보험 해약이 일시에 일어날 수 있다고 가정하고 보험사가 계약자에게 보험금을 돌려주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돈이다.
해당 준비금은 상법상 주주 배당 가능 이익을 차감해 배당을 제한한다. 계약자 보호를 위한다는 취지의 제도가 배당을 확대한다는 밸류업 정책과 반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화생명은 지난해 별도 재무제표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인 720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그러나 새 회계제도(IFRS17)에 맞춰 보장성 상품 판매를 늘리자 해약환급금 준비금 적립 부담이 늘었고, 이에 배당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화손해보험도 지난해 3823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31.5% 증가하면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한화손보는 지난해 5년 만에 배당을 재개했지만 올해 다시 중단했다.
지난해 1조307억원의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현대해상도 23년 만에 배당을 하지 못했다. 역시 해약환급금 준비금 적립이 늘면서 배당 가능 이익이 소진된 게 원인이었다.
IFRS17은 보험 계약에서 얻을 미래의 계약서비스마진(CSM)를 분할해서 인식한다. 보험사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다. 보험사들은 CSM 확보에 유리한 장기 보장성 보험을 많이 판매했고, 이 과정에서 해약환급금 준비금 적립 부담도 늘었다.
주주들은 배당을 못 받았지만 보험사 CEO들은 역대 최대 실적에 따라 10억원대 연봉을 타갔다. 지난해 조용일·이성재 현대해상 각자대표는 각각 14억·11억원의 보수를 받았다. 연봉 절반 이상이 성과급이었다. 여승주 한화생명 부회장 연봉은 별도 상여금 없이도 15억2500만원에 달했다.
업계는 해약환급금 준비금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신계약이 이뤄지면 해약환급금 준비금도 계속 늘어나는 구조라 배당 제한 이슈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연구용역 등을 통해 업계와 당국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배규민 기자 bkm@mt.co.kr 이창섭 기자 thrivingfir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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